도벽의 진가

책 <서른이 벌써 어른은 아직>이 출간된 지 꼭 한 달이 지났다. 동분서주 발품을 팔아 홍보를 하고, 요령 없이 인스타그램이니 페이스북에 마구 태그를 걸어댔다. ‘이거 너무 대놓고 홍보하는 거 아닌가, 좀 꼴사납지 않나.’ 싶다가도, ‘작가가 책 홍보하는 게 뭐 어때서.’하는 뻔뻔한 배짱을 손에 꽉 쥐기도 했다.

가족, 지인들의 감사한 구입 소식과 책 한 권을 다 읽기도 전에 쓴, 호평으로 가득한 블로그 포스팅까지. 새삼 인생 헛살지 않았구나, 타고난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인복은 꽤 있구나 싶어 뿌듯했다. 교보문고에서 10명의 독자와 함께 북토크라는 것도 해봤다. 이후로도 2,3건의 북토크와 강연 일정이 잡혔다. 겨우 시작이고, 갈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그렇지만 ‘작가로서의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신기했고, 지금도 신기하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다. 한 달, 어떤 일을 하기엔 너무 길고 또 어떤 일을 해내기엔 너무 짧은 기간. 하지만 적어도 책 몇 페이지쯤은 들춰볼 수 있을 만한 기간. 처음엔 축하 인사쯤으로 덮어두고 책을 샀던 지인들이 이제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너 진짜 예전에 그랬냐. 야, 거기 나오는 D가 내가 아는 그 ○○ 맞지? 너희 아버님이 진짜 글을 쓰셔야 했는데. 그 외 등등.

작가로서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상황이다. 아주 허구의 소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에세이가 기록물이나 보도 기사는 아니어서 가끔 사실관계를 따져 물을 땐 좀 당황스럽다. 같은 상황을 공유하는 서로 간의 기억이 조금 다를 수도 있고, 남들에겐 별 것 아닌 일이 나에게만 각별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 그래도 그런 나의 글 덕분에 자신의 사소한 과거가 문득 재미있는 장면이 될 수 있었다는 말은 뿌듯하고 재미있다. 특히 내 글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된 이들은 꽤 상기된 반응을 보인다. TV 중계 화면 귀퉁이에 우연찮게 등장한 자신을 발견한 기분 같은 걸까.

사실 나는 글감을 구하는 주요 기술로 도벽을 활용하는 편이다. 탐구하고 고민해서 글감을 발굴해내는 대신,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나 소식을 귀담아 듣다가 쓸 만할 글감이 눈에 띄면 훔쳐오는 식이다. ‘얻는다’는 표현대신 ‘훔쳐온다’는 표현을 쓴 건, 당사자들에게 미리 말하지 않고 그렇게 훔쳐온 글감으로 뚝딱 글을 지어버리기 때문이다. 다 짓고 나서 묻는다. 야, 내가 그때 네가 했던 말로 이런 글을 적었는데 괜찮겠냐. 당연히 남의 치부를 들추거나 비난하는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보통은 허락해주는 편이다. 참으로 친절한 도벽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책이 출간되고 지인들이 내 책을 꽤 읽을 만큼 시간이 지나버린 요즘, 나는 나의 도벽 기술을 잃을 상황에 처했다. 내게 글감을 절도 당하던(?) 이들이 이제 나의 도벽을 눈치채버린 것이다.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가 내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이면, 지인 중 하나가 이렇게 말한다. 방금 내가 말한 거, 글로 쓸 거야? 그럼 다음에 출간되는 책에 실리는 건가? 이래서야 훔칠 수가 없다. 들켜버린 도벽은 더 이상 도벽이 아니다. 잠든 고양이를 품에 안듯이 조심스럽게 글감을 훔치려 했는데, 고양이 주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 “그 고양이 데리고 가서 뭐할 건데?”라고 묻는 격이다. 당연히 고양이는 날래게 도망가고, 도둑은 허망하게 서서 맥이 탁 풀린다. 이상하게도, 고양이 주인만 기대감이 부풀어 있는 상황.

이제는 포커페이스를 연습해야할 지경이다. 재잘대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다 훔친 글감이 아무리 탐나는 것이라도 티내지 않도록. 동공 크기마저 조절하는 타짜처럼, 겉으로는 아무 관심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속으로는 이미 글 한 편을 다 지어내는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걸까.

다행스럽게도 글감 말고는 뭘 훔치며 살고 있지는 않다. 뒤집어 말하면 유일한 도벽의 즐거움이 바로 글감 훔치기였는데, 일이 이리 되어버렸다. 몰래 녹음기라도 틀어놔야 하나.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더니, 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도벽의 진가는 들키지 않고 획득해내는 스릴에 있다. 그렇게 훔친 글감으로 맘에 쏙 드는 글을 지었을 때, 그 글을 읽고 도벽의 피해자가 오히려 행복해할 때, 나의 글감 도벽은 빛을 발한다.

흔히 글 쓰는 일을 ‘고독하게 혼자 몰두하는 일’,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삶의 이치나 깨달음을 스스로 파헤치는 일’ 쯤으로 오해한다. 그건 작가라는 직업에 덧씌워진 예술적 환상, 탈속적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느 분야에나 존재하는 천재는 배제하도록 하자.) 하지만 작가가 쓰는 글이란 결국 독자에게 읽히기 위한 글이고, 작가가 글로써 이뤄야 할 과업 중 ‘돈을 버는 것’은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쉽게 말해 작가도 직업인 내지는 노동자의 태도로 글을 쓴다. 또한 그 글이라는 것은 작가의 정신세계 속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그러니 그 ‘세상’에 지인들의 일화나 태도 따위가 포함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같은 현상을 두고도 각자의 글을 써내는 것이 작가라는 작자들이다.

물론 어떤 직장인, 어떤 노동자에게도 도벽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뻔뻔스럽게도 작가에게만은 예외라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내가 바로 앞 문단에서 비판한 예술가적 환상, 탈속적 기대감에 기대어 변명하자면 작가의 도벽이란 거창하게 말해 영감을 얻는 행위가 된다. 당사자의 삶에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아니 오히려 그의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행하는 작가의 도벽이라면 꽤 근사하지 않을까. 게다가 (이미 훔친 뒤이긴 하지만) 훔친 사실을 고백하고, 허락을 구하기까지 하는 친절한 도벽이라면 신사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니 제발, 나의 도벽 징후(!?)를 눈치 채더라도 지인들이 모른 체 해주길 바래본다. 싫은 것이 아니라면,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거라면 더더욱. 혹시 주변에 작가 또는 뭔가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지인이 있다면, 당신의 사소한 일상이 누군가의 영감이 되는 근사한 도벽을 응원해주길 바란다.

도벽이란 애초에 훔치고 싶은 물건이 있어 일어나는 행위다. 누군가가 훔치고 싶을 만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된다는 것. 글감 도벽의 피해자치고는 그런 대로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