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더라.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아주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한 말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최근 미국 패션계에 부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바람, 혹은 완벽하고 마른 몸매의 모델들을 대체해서 현실적이고 평범한 일반인의 몸매를 가진 모델을 기용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질문에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패션은 현실이 아닌 환상(Fantasy)을 팔아먹는 산업이다. 그렇기에 아이러니하지만 진짜 현실에서는 뚱뚱한 모델이 입은 옷보다 마른 모델이 입은 옷이 더 잘 팔린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에 대해서 부정적인 편이 아니다. 내 친누나가 대한민국 1호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니까. 나는 대중들이 누나에게 보내는 시선을 아주 잘 느낄 수 있었다. 누나는 이 땅의 업계 1호이기 때문에 항상 개척자의 포지션에 있었다. 가뜩이나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반발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데,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라는 말도 개념조차도 없던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갑자기 나타난 이 존재에 대해서 편협한 미의 기준을 가지고 대중들이 물어뜯는 것은 당연한 절차였고, 당연하게도 무척이나 거셌다.

내가 직접적으로 관여할 일은 아니었기에 그저 관조적으로 바라볼 뿐이었지만, 내가 가장 의아했던 것은 어째서 플러스 사이즈 모델에게 일반 모델의 기준을 들이대는 건지 였다. 그러나 그러다가 곧 깨닳았다. 이건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단계에 머물러있구나. 플러스 사이즈란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고, 존재해선 안된다고 부정하는 단계. 아마 러시아에서 동성애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불법인 동시에 폭력으로 진압되고,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를 언급하는 즉시 온가족이 어딘가로 끌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처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보통 한국처럼 보수적인 풍토가 강한 곳에서 새로운 문물이 받아들여지고 뿌리내리려면, 폭력적인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 내가 말하는 건 원주민들이 신문물을 폭력적으로 탄압하는 것이 아니다. 역으로 신문물이 폭력적으로 밀고 들어와 원주민들의 풍속을 개박살낸뒤에야 후대에 아무렇지 않게 정착하는 것이었다. 시집가던 여자의 뺨에 붙이던 연지곤지가 원래 원나라의 풍습이란 건 역사시간에 배워서 다들 잘 알 것이다. 고려가 원나라에게 개작살이 났기 때문에 우리는 1000년이 넘는 시간 뒤에 아무렇지 않게 ‘연지곤지? 그거 우리나라 전통 혼례때 쓰는 거 아니야? 요즘 같은 시대에 그거 뭐 하면 어떻고 안하면 어때?’ 같은 단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금 비약이 심한 것 같다면 미국 드라마를 보다가 신발 신은 채로 집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가 자기 방안으로 들어가서 여전히 신발을 벗지 않은 채 침대위로 점프하는 장면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함을 외쳤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같은 현대문명 사회를 살고 있는데도 그것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거꾸로 그들에게 우리는 방안에서 신발을 벗고 다녀야 돼, 라고 하면 처음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윽! 발이랑 양말이 완전히 땀에 절어서 더러운데 어떻게 그래!’ 관점의 차이란 이렇게 다양하고 또 서로에게 상이한 것이다.

나는 다양성을 참 좋아한다. 자연은 항상 다양한 시도를 하고, 다양성은 자연의 풍요로움의 원천이며, 인류 문명 사회에서도 다양성은 문화를 활짝 꽃피우는 씨앗이요 촉매제이다. 나의 누나가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란 문화를 한국에 들여오고, 본인이 스스로 활동을 하고, 또 그 뒤로 몇 명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나오고 이제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라는 개념과 말이 정착을 하게 되면서, 나는 한국 패션 산업계가 더 다양성이 풍부해졌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니라고 아무리 용을 써도, 결국 그동안 패션 산업계가 외면했던 평범한 한국인들, 또는 빅 사이즈를 입는 한국인들에 대한 고려가 그 뒤로 점차 생겨났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다양성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만일 나의 누나가 ‘앞으로 모든 모델은 플러스 사이즈를 제외하고 금지해야 한다’ 고 했다면 어땠을까? 그걸 다양성으로 볼 수 있었을까? 누나는 그런 짓은 당연히 하지 않았다.

최근에 디즈니에서 <인어공주>의 주인공으로 흑인을 캐스팅한 것을 발표하며 인터넷이 폭발했다. 인종차별주의적 발언들이 오고가는 동시에, 이제 디즈니가 행하는 그놈의 PC갑질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말들이 이어지고, 반대편에서는 니들이 PC타령을 하는데 이건 PC와는 무관하며 너네가 하는 건 다 인종차별의 빻은 소리다, 라는 반박을 하며 한바탕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다.

전적으로 어느 한쪽의 말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태의 원인은 생각보다 훨씬 전부터 이어져왔고, 생각보다 더 많은 세심하게 살펴봐야만 하는 지점들이 있다.

맨처음 내가 인어 공주 사태를 보면서 생각난 건, 아이돌 업계랑 뮤지컬 업계였다. 공통점은 팬덤이 있고 결국 팬덤에 대한 환상 팔이 장사로 먹고 산다는 것이었다.

아이돌 업계를 먼저 살펴보면, 이들은 전형적이라고 해도 좋다. 마른 몸매, 섹슈얼한 옷,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어필과 유혹적인 안무, 규율로서 연애가 금지되고, 파오후 쿰척대는 아저씨들이랑 악수회도 해야한다. 근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다 그게 팬덤에게 팔아먹어야 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팬덤조차도 그것이, 자기가 동경하는 완벽한 자신만의 연인인 아이돌이 사실은 언젠가는 깨질 환상이란 걸 어렴풋이 알고 있다. 다 큰 성인이 그걸 모를 수가 없다. 문제는 그걸 수행하는 아이돌들조차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모르고서 그 업계에 들어왔다면 그거야말로 바보지. 몰랐다면 바보고, 알고도 모른척했다면 더 나쁜 기만 행위이다.

그렇게 해야 팔아먹을 수 있고, 원래 그렇게 장사 해 왔고, 그거 하겠다는 아이돌 애들도 대충 다 알고서 하는 장사다. 그래서 아이돌이 몰래한 연애를 들키거나, 기존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행동을 했을 때,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었다’며 탈덕 선언하고 CD 뿌숴가며 씩씩대는 덕후들이 나오는 것이다. 보통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그정도로 극단적인 덕후, 즉 팬덤에게 비난을 하기 마련이지만, 가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입에 담기도 힘든 욕설을 퍼붓는 걸 보면 씁쓸할 때가 있다. 그 바닥 원래 그런 애들에게 팔아먹으면서 돌아가는 판이고 다들 암묵적으로 동의하면서 가는건데. 거기다가 비록 건강한 방식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그 팬덤의 덕후는 자신이 소비하던 환상에게 배신을 당한건데 말이다.

뮤지컬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뮤지컬은 엄밀히 말해 대중 예술이 아니어서 뮤지컬을 주로 소비하는 뮤지컬 덕후, 소위 뮤덕들의 티켓파워로 거의 반 이상이 돌아간다. 헌데 사실 이 ‘뮤덕’들을 제일 혐오하는 게 아마 뮤지컬 창작자들이랑 업계 관계자들일거다. 다들 대놓고 앞에서 말만 안하고 있지 얘네를 다 싫어할거다. 사실 좋아할래야 좋아할수가 없다. 직원들이 간곡하게 돌아다니면서 제발 사진 찍지 말랬는데도 개무시하면서 맨앞줄에서 배우들 사진 펑펑 찍어대고, 같이 공연한 여배우가 주연 남자배우랑 사진한번 찍어서 SNS 올리면 ‘불여시 같은년이 우리 오빠 꼬시고 친한척한다’면서 테러하고 욕하고, 딱 그 뮤덕들 취향 맞춰서 취향저격한 사실 작품성이나 예술성이랑은 거리가 먼 희한한 작품들 티켓 30번씩 사서 매번 보고 나오면서도 진짜 너무 감동받았다면서 오열을 하면서 로비를 서성거리는 애들 보고 있으면, 과연 누군들 이 팬덤의, 뮤덕들의 덕심을 공감하고 좋아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여론을 조성하고 밀어붙이는 파워도 워낙 쎄서 뮤지컬 하나 보이콧한다 그러면 작품의 흥행에 큰 타격을 주는 건 정말 일도 아니다.

근데, 그렇기 때문에 업계 관계자든 창작자들이건 이들을 앞에서 욕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극단적으로 이서 볼수 있서  취향 맞춰서 작품 만들고 비위 맞추고 살살거린다. 왜? 얘네 지갑으로 돌아가는 판이니까. 얘네 없으면 뮤지컬 업계는 돌아가지가 않으니까. 소비자를 우대해야 되니까. 워낙 파워가 쎄서 한 작품을 망하게도 할 수 있지만, 한 작품을 흥하게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몇 년 주기로 뮤지컬 업계 사람들이 그 불문율을 깨고, 혹은 말실수나 실언으로 앞에서 대놓고 ‘뮤덕’들을 욕했다가 거의 매장에 가깝게 보이콧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솔직한 얘기로다가 이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돌아가는 시장인데 이 사람들을 무시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일까?

인어 공주가 흑인이건 나발이건 사실 그걸 디즈니가 만들지 않았으면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근데 디즈니 팬덤들조차 ‘결과적으로 나와서 직접 봐야 알겠지만서도’ 라는 말을 앞에 덧붙이면서도 일단 성급한 우려와 욕을 박는 이유는, 디즈니가 인어공주를 옛날에도 팬덤에게 팔아왔고 그들이 판건 단순한 ‘인어공주’가 아니라 환상이고 판타지고 추억이기 때문이다. 팬덤이 단순히 피부색만 바뀐다는 말에도 즉각 반응하는건 그 피부색조차 팬덤의 환상과 판타지 그리고 추억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팬덤이 아닌 사람은, 그리고 인어공주를 그냥 인류문화적으로만 소비할 뿐 ‘열광’하지 않는 외부인들은 차분하게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인어공주는 전혀 환상도 판타지도 추억도 아니기에. 그야말로 남의 일이니 속편한 것이다.

팬덤이 우려를 보내는 것은, 디즈니가 그런 팬덤, 자기 소비자층을 마치 무슨 개돼지 취급하면서 교육하고 계도해야될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한 게 꽤 되었다는 사실에서부터다. 디즈니는 변화와 다양성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해 왔는데, 개중에는 <겨울 왕국> 같은 긍정적 반응을 얻은 성공작도 있었지만, <스타워즈>처럼 시리즈 전체를 말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는 망작도 있었다.

거기다 이런 이슈는 비단 디즈니의 만화에서뿐만 아니라 게임 <배틀필드> 시리즈의 ‘2차 세계 대전 전장에 의수 단 여성이 카타나들고 설치’ 사태, 그리고 <오버워치>가 몇년째 스토리 진행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새로운 이야기라고 푸는 것들이 ‘이번엔 누가 사실 동성애자였습니다’ 따위의 것들이어서 팬덤이 폭발한 것 에서 볼수있듯,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의 서브컬쳐계 전반에 걸쳐서 하나둘씩 축적이 되어 온 상태였다. 즉 팬덤이 ‘저거 또 저렇게 하다가 시리즈 말아먹는 망작 나오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를 보낼만한 역사와 불만의 축적이 꽤 긴 시간동안 이루어져온 것이었다. (실제로 스타워즈 시리즈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말아먹은 수준이니, 팬덤이 느끼는 것은 거의 우려를 넘어선 공포에 이를 수 있다.)

디즈니가 하는 모든 일들이 다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말하고 주창하는 변화와 다양성, 나는 <겨울왕국> 같은 새로운 시리즈나 작품에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본다. 문제는 원래 있던 시리즈를 건드리는 경우인데, 이럴 경우에는 당연히 기존의 팬덤의 반발을 예상했어야 한다. 그리고 아주 점잖은 대처가 필요했다. 헌데 디즈니의 대처는 항상 그랬듯 그런 목소리를 ‘못배운 사람들’취급해 왔다.

디즈니가 <겨울왕국>으로 보여주는 패러다임이 패션 산업에 플러스 사이즈라는 개념을 가져와 다양성을 더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인어공주>에 흑인을 캐스팅하는 것은 어찌보면 누군가에게는 폭력적으로 ‘플러스 사이즈 말고 이제 다 불법’ 이라며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디즈니는 환상과 판타지, 그리고 저작권을 팔아먹으면서 성장해 온 구역질나는 일면을 가진 회사이다. 이들은 앞으로도 쭉 이것들을 팔아먹을 것이다. 그리고 디즈니는 이제 과거의 충성스런 팬덤이 없어도 언제든지 자신의 영화와 창작품을 소비해줄 ‘거대한 일반인’ 소비자층을 지니게 되었다. 마블 어벤저스 시리즈의 전세계적인 대성공이 이를 증명한다. 헌데 그렇다 해서 과거의 자신들이 팔아왔던 환상에 대해서, 누군가가 그 환상의 리메이크에 대해 우려를 고했을 때, 그것을 그저 못배운 사람의 목소리라고 치부하는 것은, 이제 자기네는 그 팬덤 없어도 잘 먹고 잘 살수 있다면서 팽해버리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가 않는다. 과거 자기들의 영광스러웠던, 그리고 누군가에겐 추억이 되어버린, 그리고 누군가에겐 여전히 환상과 판타지의 대상인 자신들의 작품을 난도질 해버리면서 말이다. 나는 여전히 그들이 <스타워즈> 시리즈를 망쳐버린 것에 큰 분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사람들의 반발이, 어느정도 예측가능한 반응이었기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내가 놀라웠던 것은 그 반발에 대한 또다른 반발이었다. 이제는 완전히 진영 논리로 넘어가 개싸움이 된 것으로 보였다. 물론 개중에 무조건 그냥 PC의 물결 자체를 까고 싶어서, 또는 언PC한 것을 까고 싶어서 무작정 까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여전히 나는 본질적으로는 훼손된 환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누가 남의 환상과 판타지, 그리고 추억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일단 아이돌과 결혼을 꿈꾸며 수백만원 어친의 굿즈를 사 모으고 진심을 다해 목청껏 응원하는 아이돌 팬덤도, 무대에 선 배우를 더 많이 만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매 회차 출근하다시피 극장의 객석을 채워가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뮤지컬 덕후들도 욕할 처지가 되지 않는다. 나 역시 나의 환상이 있고, 나는 그것이 훼손되기를 절대로 원치 않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