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연극을 안 본다. 글도 잘 안 쓴다. 책도 잘 안 읽힌다.

사실 창작에 관련된 모든 작업을 거의 손을 놓다시피 했다. 별달리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4월에 한 연극의 후유증이 이렇게나 깊고 오래가고 있구나 싶을 뿐이다. 참 할 때도 끝났을 때도 어지간히 힘들었는데,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도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나.

전문적으로 글쓰기와 창작을 배우기 시작한 게 2006년이니까, 햇수로는 13년을 하고 14년차가 됐다. 외부 공모전에 작품이 당선되서 어떻게 보면 데뷔라고 할까, 그렇게 된지는 2012년부터니까 7년이 됐고 8년차가 됐다. 중간치로 보자면 뭐가 됐든 경력 10년차가 됐다는 건데,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기술이나 배울 걸 그랬나.

글쓰기와 창작은 정말 글쓰기와 창작 말고는 다른 데 쓸 데가 정말 한 군데도 없다. 그게 가장 문제다. 4차 산업 혁명이니 뭐니 막 언론이 자기들도 모를 헛소리들을 막 써 제끼기 시작했을 무렵에 ‘미래에 없어지지 않을 직업 순위’ 따위가 오르내렸는데 그 1위가 대망의 ‘작가, 창작자’ 였다. 근데 얼마전에는 또 AI가 예술 창작의 영역에도 드디어 들어섰다면서 ‘미래에 없어질 직업 순위’ 1위에 ‘작가, 창작자’가 이름을 올렸대? 야이 씨- 하나만 해라 하나만 응? 제발. 없어진다는거야 만다는거야. 그리고 아직 없어질 사람은 생각도 안하고 있는데 뭘 지들이 없어지니 마니하고 앉았는걸까.

물론 미래에 AI가 정해진 프로그래밍대로 훌륭하게 이야기를 창작해내고 작품으로써 써서 마무리해낼 거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들이 옛 클래식 작가들의 문체까지도 완벽하게 모방해낼 수 있으리라는 데도 이견이 없다. 그들이 마침내 AI 본연의 오롯이 ‘순수한 창작’의 영역에 들어서리라는 데도 이견이 없다.

근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우리한테는 그저 해마다 지금도 한국에서만 1만명 이상 쏟아지고 있는 예술대학 졸업생들마냥 경쟁자가 더 늘어나는 것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남이사 잘 쓰거나 말거나… 내가 내 작품 쓰겠다는데… 로봇이 작품 쓰면 나는 작품도 못 쓰게 되나…

어쨌거나 문득 다시 또 2012년에 데뷔하고 나서 연극이 지겨워져서 한 몇 년 연극 생각도 안하고, 연극이랑 좀 멀리 떨어져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처럼, 요양을 생각중이고 실제로도 요양중이다. 근데 그때랑은 약간 처지가 다른게, 그때는 후반이긴 했지만 그래도 20대였어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할 수가 있었다. 지금은 나이가 어느덧 한국 나이로 32세. 아- 한국나이도 진짜 뭐 같다고 느낀다. 유럽가면 30세가 되는데 왜 여기선 32세인걸까. 그렇다고 32살 먹었다고 나이 대접을 해주기를 하나, 어디가면 막내라서 커피나 타는 신세인데 또 뭘 그렇게 인생 훈계들은 해들대는지.

안그래도 얼마전에는 동네에 딱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만큼 시급을 주는 카페 아르바이트가 있어서 지원서를 넣었는데, 정말 광탈을 했다. 뭐 그러려니, 그럴수 있지, 그런데도 너무 맘에 들었던 아르바이트여서 계속 아쉬움을 남기다가, 어느 날 친구와 동네 산책을 하다가 바로 그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어쩌다보니 사장님과도 말문을 트게 돼서 이런저런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아 맞다, 저 여기 카페에 아르바이트 지원서 넣었는데 그만 떨어졌지 뭐에요’ 하면서 하하호호- 농담을 던졌는데, 갑자기 사장님 표정이 민망하게 싹 굳으면서 ‘죄송합니다’ 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었다. 아니 나는 그냥 웃자고 던진 자학 개그였는데 그렇게 나오시면… 그와중에 또 ‘혹시 몇 살이세요?’ 라고까지 물어보시길래 32세라고 했더니 사장님이 ‘아… 제가 저보다 나이가 많은 아르바이트생은 좀…’ 이러시는 것이었다.

순간 머리가 띵 망치로 맞은 듯 했다. 아, 서른 넘어서 아르바이트가 안 구해지는 게 그저 어리고 세상물정 모르는 인력을 선호해서만은 아니구나, 하는 걸 그때서야 깨닳은 것이었다. 자영업자들도 나이가 있는데, 이제는 어느새 ‘부담스러운’ 나이가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눈을 돌렸다. 어디로? 아르바이트에서 취업으로.

해왔던 거라고는 카페 아르바이트, 택배 물류창고 상하차 아르바이트(하루만에 도망침), 닭강정집 아르바이트(닭 잘튀김), 현금호송, 은행 청원경찰, 그리고 이야기 창작해서 글쓰고 연극하는 것 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취업으로 눈을 돌리려니 이것도 좀 많이 건너뛴 감은 없지 않지만, 이제 아르바이트로는 못살겠다, 안되겠다, 하는 판단이 선 것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앞에 얘기했던 아- 기술이나 배울 걸- 로 이야기가 돌아간다. 10년 동안 해온 게 글쓰고 이야기 만드는 일인데, 이걸 활용해서 할만한 취업자리란게 정말 ‘전무’했다. 그러면 이제 내가 할 줄 아는 건 딱 하나밖에 없는데 ‘버는 거 없이 돈만 쓰는’ 것이다. 근데 이건 뭐… 나 말고도 다들 잘하는 거니까… 거기다 뭐 그것도 정말 환상적으로 잘하면 그런걸로도 취업이 된다드만. 뭐 라이프스타일 코디네이팅이라든가 이런 말도 안되는 직업이 실제로 있다는 것처럼… 나야 돈 쓰는 게 뭐 그리 환상적일게 있겠는가 그냥 없는 살림에 버는것도 없이 친구랑 순대국밥에 소주나 한잔 하면서 맨날 돈 쓰는 게 다인데.

그러다가 직종 하나를 찾기는 했다. 바로 게임업계의 게입기획 분야의 ‘게임 시나리오’ 부문. 이건 정말… 대단한 발견이었다. 10년의 경력이 빛을 발휘할 수 있는, 정말 어찌보면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 아니겠는가. 거기다가, 나는 게임도 좋아한다. 어렸을 때 꿈도 ‘게임을 만드는 사람’ 이었을 정도니까. 왜 나는 기술을 배워도 이딴 기술을 배웠을까, 그것도 10년씩이나 하면서 자조하던 찰나에 알게된 게, 그 10년 배운 기술을 그대로 오롯이 써먹을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건, 참 타이밍 좋은 축복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여러 회사들은 알아봤지만 취업에 대한 원서쓰기라든지 본격적인 활동은 하지 않았다. 아직 배에 기름이 차서인지 뭔 이유에서인지는 도무지 알수가 없지만 정말 그저 손이 가지가 않았다.

어쩌면 미련이 남아서일수도 있겠다.

연극이 그렇게 싫고, 지겹고, 이제는 좀 떨어져 있고 싶은데도, 미련이 남아서인지 다 버리고 취업하러 떠나지는 못했던 것일수도. 그 와중에 계속 했던 것은 그냥 평소에 쓰던 작가노트, 아이디어 노트라고 해도 좋을 그 노트를 계속해서 쓰는 것이었다. 심지어 요새 얼마나 글쓰기가 싫냐면 일기도 잘 안쓸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계속 썼던 게 작가노트였으니, 그건 말 그대로 습관이었다.

작가노트를 처음 쓰기 시작한 건 2011년 부터였다. 지도교수에게 받았던 가르침대로 두껍고, 고급의 재질을 가진, 손이 자주 가고 싶게 만드는 노트를 만들어서, 거기에 한 페이지에 하나의 아이디어만을 적어가는 것. 그리고 하루에 한번, 혹은 일주일에 한번 씩이라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또 새로운 페이지에 아이디어를 적고, 그러면서 적어놨던 아이디어를 다시 읽고 리마인드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가하기도 하고. 반드시 손글씨로 써야만 했던 작가노트. 그 작가노트가 벌써 5권을 꽉 채워서 6권째를 사야 될 정도로 아이디어는 차고 넘쳐 흘렀다. 내가 썼던 모든 희곡들도 다 그 작가노트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작가노트를 정말 의무감으로, 사명감으로, 숙제하듯이 썼었다. 시간이 흐르고보니 주변에 작가노트를 아직도 계속해서 쓰고 있는 사람은 거의 남지가 않았다. 그와중에 남은 극소수의 사람들중에 내가 있었던 것이었고. 작가노트를 쓰던게 2권을 넘어가고 3권째가 되니, 느낌이 좀 달랐다. 그냥 정말 습관이라고 해야될까, 습관도 아니다. 그냥 인생의 한 부분? 라이프 스타일? 아침에 일어나면 눈뜨고 기지개하고 손씻고 밥먹는거랑 똑같은 하나의 ‘일과’가 된 것이었다.

하루의 일상을 열심히 살다가 보면 불현 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무조건 핸드폰에 메모하고, 나중에 집에 와서는 작가노트에 깨알같이 하나하나 옮겨 적는다. 다 옮겨적고 나면 이전에 썼던 작가노트를 하나씩 다 읽어가면서 아이디어를 추가하고, 빼기도 하고, 합치기도 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이루어나간다.

진절머리나게 연극이 싫어서 요양을 하면서 어떻게 잘 놀 궁리만 하고 있던 내가 유일하게 하고 있던 게 바로 이 작가노트 쓰기였다. 그게 좋아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건 그냥 맨날 하는 ‘일상’ 이니까. 그냥 맨날 하는 거니까 하는 거였다. 단순하게 그런 이유가 전부였다. 전부였는데…

희한하게 그렇게 연극이 싫고, 희곡쓰기도 싫고, 희곡을 읽는것도 싫고, 연극을 보러다니는 것도 싫었는데, 작가노트에 아이디어를 쓰다보니까 몇몇 아이디어들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제목도 막 떠올랐다. 좀 지나다보니 몇몇 아이디어가 합쳐지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구상이 되고, 캐릭터들을 만들다보니 이야기 안에서 캐릭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몇몇 아이디어는 장면이 떠오르고 대사들까지 떠오르기 시작했다.

연극이 끝나고 3개월동안, 한거라곤 그거밖에 없고, 어떻게 연극을 좀 멀리할까 생각밖에 안할 정도로 탈진이 왔었는데, 어쩌다보니 3개월만에 내 작가노트에선 또 연극 한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허탈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을 꾸준히 계속해나가고 있는 내 습관이 기특하기도 하고.

20대의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이라면 당연 로버트 맥키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이다. 나를 감동시킨 한 구절을 꼽으라면 당연히 ‘재능이 없으면 어떠한 흥미도 생기지 않는다’ 라는 구절이겠지만, 작가노트를 쓰면서 다시 연극을 만들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이 구절이 다시 떠올랐다. ‘슬럼프를 극복하고 다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게 하는 원동력은 결국 작업 그 자체에 대한 사랑밖에는 없다’.

생각해보니, 연극에 그토록 질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소한 연극의 재료가 되는 희곡을 쓰는 작업은 항상 사랑해왔었다. 그걸 단한번도 싫어한적이 없었다. 내가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나는 그 작업 자체를 항상 사랑했던 것이었다. 그러니 습관처럼 아이디어를 채집하고, 합치고, 세계를 만들고, 캐릭터를 만들고, 장면과 대사를 구성하고, 연극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나 자신이 무얼 사랑하고 있는지를 이번에 새삼 발견하게 된 것 같다. 나는 내가 희곡쓰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해본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는데. 인생이란 자기가 몰랐던 자기자신에 대해 계속 발견해나가는 과정인 것일까. 어쩌면 인생이 아니라 사랑이란게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내 슬럼프는 구원을 받았다. 계속해서 희곡을 쓰고 있다. 연극은 안해도 희곡은 계속 쓸 것 같을 정도로. 다만, 여름이 다가오니 긴 휴가를 좀 계획해야겠다. 잘 놀 궁리는 아직 올해 안에는 유효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