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생활

고등학교 2학년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새김이’라는 이름의 독서토론 동아리에서 장을 맡고 있었다. 새김이는 2006년 당시 김해의 고등학교 동아리로서는 드물게 3개 학교 연합 동아리였다. 나름 똑 부러지는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나름 든든한 선배님들의 지원도 있는 곳이었다. 그럴듯한 알맹이는 없었지만 태도만큼은 학구적이었다. 2주에 한 번씩 도서관에 모여 책이나 시사에 대해 토론하고, 정해진 코스처럼 유가네로 우르르 몰려가 약간의 닭갈비와 대량의 볶음밥을 먹고, 시내 노래연습장에서 노래를 불렀다.

매년 여름, 대학 선배님들의 주도 하에 다같이 MT를 떠났다. 스무 명이 넘는 남녀 고등학생들이 2박3일 일정으로 떠나는 만큼, 부모님들의 동의를 받는 과정도 빼먹지 않았다. 안내문에는 구구절절 풋풋하고 모범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했으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어른’ 선배님들과 함께 음주가무를 즐기게 될 것임을. 지금 돌이켜 보면 선배라고 해봐야 겨우 스물 몇 살의 대학생들이었지만.

그렇게 우리는 밀양 표충사로 떠났다. 야외 공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저렴한 민박집에 짐을 풀고, 계곡에서 물놀이를 했다. 라면을 끓이고 고기를 굽고 수박을 파먹었다. 조잡하기 짝이 없는 이런저런 게임을 하면서도 즐거웠다. 야밤에는 2인 1조로 짝을 이뤄 공포 산행 체험도 했다. 길목마다 선배님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게 하는 식이었다. 숙소로 돌아와선 소주를 섞은 탄산음료를 나눠 마시며, 역시나 조잡하기 짝이 없는 무서운 이야기를 풀었다.

그뿐이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이튿날이었던 것 같다. 계단식으로 된 표충사 계곡은 층층이 수심이 달랐다. 어떤 곳은 겨우 허벅지에 수면이 찰랑이지만, 또 어떤 곳은 키를 훌쩍 넘겼다. 특히 계곡이기 때문에, 바닥의 지형에 따라 변칙적으로 수심이 깊어지는 지점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묘한 어둠의 수심이 곳곳에 블랙홀처럼 포진하고 있었다.

야트막한 수심에서 서로 물을 튀기며 노는 무리들이 있는 반면, 수영 깨나 할 줄 아는 무리들은 한 층 아래의 깊은 수심에서 다이빙을 하며 놀았다. 나는 수영도 해본 적 없는데 무슨 정신으로 다이빙 무리에 합류했을까. 가슴께까지 오는 수심에서 간간이 잠수나 하며 놀았다. 점심으로 라면 먹으러 오라는 소리에 다들 뭍으로 나간 뒤에도 나는 잠수에 빠져 있었다. 한 번만 더 해봐야지. 너무 시원하다. 한 번 더 해야지.

그러다 발을 헛디뎠는데, 발밑의 자갈들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내 키를 넘기는 수심으로 빨려 들어가버렸다. 순간 당황한 나는 어떻게는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총총 점프만 해대고 헤엄칠 생각을 못했다. 물살이 꽤 세서 가만히 떠있기만 해도 얕은 수심으로 향할 텐데, 그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물에서 뭍까지 길어봐야 5m 안짝 거리였고, 우리 숙소까지도 멀어봐야 50m도 안 되는 거리였는데. 나는 호흡이 달려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로 허우적대기만 했다.

맑은 표충사 계곡물을 1L쯤 마시고, ‘하늘이 노래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질 쯤 어떤 생각이 번뜩였다.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서 나가야 한다. 어차피 물에 떠서 헤엄치지 못할 거면 기어서라도 나가야 한다.

점프하기를 포기하고 나니 수중으로 몸이 가라앉았다. 금세 비탈진 계속 바닥의 자갈과 바위가 손에 잡혔다. 나는 문자 그대로, 그야말로, 바닥을 두 손으로 짚으며 기어서 뭍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계곡 바로 옆 비포장도로 대자로 뻗었다. 차가운 물에 한참을 있었는데도 몸에 열이 나고 두통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코와 입을 총동원해 숨을 들이쉬어도 복부까지 호흡이 내려가질 못했다. 그 와중에도 그런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아무에게도 죽을 뻔했다는 말은 안했다. 어기적어기적 동아리 선후배들이 모여 있는 평상으로 가, 반도 남지 않은 냄비의 라면을 넋이 나간 채로 떠다 먹었다.

익사 직전의 후유증은 꽤 오래 가서, 그날 밤 나는 음주가무를 즐기지 못했다. 초저녁부터 기절하듯 뻗어 잠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끙끙 앓으면서 ‘수영을 배워야 한다. 수영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수심이 얼마나 되든 간에 물 바닥이 보이지 않으면 뒷목이 서늘하고 어깨가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바닥’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다.

나도 참 징한 인간인 것이, 그런 일을 겪고도 십수 년 동안 수영을 배우지 않았다. 위험에 대비하기 보다는 위험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길을 택한 것이다. 바다를 가도 허리께에 오는 수심에서 파도를 맞을 뿐, 그 이상을 들어가지 않았다. 워터파크는 질색이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가끔 목욕탕 냉탕에서 익사 위험이 없는 잠영을 즐기는 게 다였다.

그러다 최근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밀양 표충사 계곡에서 익사할 뻔 했던 때로부터 꼬박 13년 만이다. 아름이와 비슷한 레벨로 즐길 만한 운동을 찾다가 수영을 골랐다. 마침 여름이라 시원할 것도 같았다. 평생 수영을 배워본 적도 없고 밀양 표충사에선 고작 5m를 헤엄쳐 나오지 못해 죽을 뻔도 했지만 별로 큰 걱정은 없었다. 동네 수영장 수심은 아무리 깊어봐야 내 키를 넘기지 않을 테고, 또 조금 넘긴다 한들 바닥이 훤히 보이니까. 나의 ‘보이지 않는 바닥’ 트라우마가 적용되지 않는 곳이다. 심지어 약간의 자신감마저 있었다. 아무렴 내가 아름이보다 수영을 못할까.

그런 나의 모든 예상은 수영 강습 첫날부터 물속에 가라앉아버렸다. 우리가 간 수영장은 정해진 날짜에 분반 별로 회원 모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시 모집으로 각자 수준에 맞게 반을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우리 둘은 가장 낮은 초급반이었다. 초급반이라고는 하지만 상시 모집인 탓에 반 내에서도 수영 수준 편차가 심했다. 그 말은 진도가 매우 빠를 수밖에 없다는 뜻. 우리는 물 온도에 적응할 새도 없이 잠수하는 법, 물에 뜨는 법, 발장구 치는 법 등을 속전속결로 배웠다. 아니 배웠다기보다는 그냥 체험해봤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잠수나 발장구는 어떻게든 하겠는데, 나는 물에 뜨는 일이 너무나 어려웠다. 깊은 들숨을 머금고,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고, 온몸에 힘을 빼면 된다길래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야속한 다리는 자꾸만 수영장 바닥을 짚었다. 계속 있어보면 다시 뜨지 않을까 싶어 기다려도 봤지만 물속에서 사선스로 바닥을 짚고 선 채로 버티기만 했다. 아 이거 쉽지가 않네. 아름이는 어떻게 하고 있나 봤더니, 세상에 나는 무슨 대형 공기 인형인 줄 알았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물 위를 유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강습 첫날부터 여태까지 (약 두 달째다.) 내 목표는 물에 뜨기. 그 동안 강습 진도는 장마철 계곡의 유속보다도 빠르게 흘러, 나는 벌써 자유형 양팔 돌리기까지 해내고 있다. ‘하고 있다’가 아니라 ‘해내고 있다’고 말할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여전히 물에 뜨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름이를 비롯한 약 20여명의 여성회원과 나를 포함한 대여섯의 남성회원 중 물에 뜨지 못하는 것은 나 하나뿐이다. (2주 전엔 동지가 있었는데, 그 마저도 물에 뜨기 시작했다.) 뜨지는 못하는데 자유형으로 추진력을 얻으려다 보니 물살을 가르는 팔동작과 수면을 때리는 발장구에 엄청난 근력이 소모된다. 아름이도 거뜬히 해내는 레일을, 나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햄스트링과 엉덩이가 뻐근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해내고 있다.’ 이게 수영인지 웨이트 트레이닝인지 모르겠다.

한 번은 수영 강사님에게 가서 “제가 너무 물에 안 떠가지고..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했더니 배영 자세로 뜨는 걸 해보라고 했다. 그게 더 쉬운 거라고. 평화로운 호숫가에 살포시 내려앉는 나뭇잎이 된 심정으로 눕자마자 시야의 모든 사람들이 수면으로 일그러졌다. 그때 수영 강사님께서 물개 박수를 치며 “오, 잠수함~!”이라고 해주신 덕(!?)에 나만 빼고 모두 다 웃었다.

최근 며칠은 일도 많고 귀찮아서 수영을 안 갔지만, 어쨌든 계속 다녀볼 생각이다. 처음엔 생존 때문이었다. 물에 빠진 누군가를 구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력으로 헤엄쳐 나올 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제는 생활 때문에 수영을 배우러 간다. 이런 여름에 어디든 놀러 가면 만나게 되는 물을 즐기고 싶어서. 당장 12월에 코사무이로 신혼여행을 갈 텐데, 거기까지 가서 발만 담그고 올 수는 없어서.

생존의 수영만큼 절박하진 않지만 삶의 분위기와 질을 높여주는 생활의 수영. 생존을 위해서라면 또 바닥을 짚어서라도 기어 나오면 된다지만, 아무도 그걸 즐거운 생활로 여기진 않을 테니까. 수영이라는 한 분야에서나마 생존이 아닌 생활의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게 뿌듯하다. 그만큼은 여유가 생긴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