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초조, 우울, 분노. 이 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은 너무나 많다. 인간의 마음과 생각은 지향성을 가지고 있기에 ‘무념무상’이란 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일뿐인 우리는 늘 생각할 거리를 찾아가고,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우리의 기분을 들었다 놨다 한다.

권력이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인간의 생각도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생각과 마음이란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것이 더 강화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래서 일찍이 인도에서는 이러한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주로 ‘명상’ 이라는 체계를 활용해 왔다.

‘명상’은 생각을 멈출 수 있다는 가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생각은 멈출 수도 없고 우리 스스로도 통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것을 관찰함으로써 생각을 객관화하는 과정이다. 생각과 마음은 늘 주관적으로 우리 스스로에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우리는 금세 그 생각의 노예가 된다. 하지만 생각을 객관화 시키게 된다면, 우리는 생각과 마음에 이끌려 다니는 ‘객’이 아니라, 그것을 그저 바라보는 ‘주체’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는 논리다. 

일찍이 글쓴이는 마음훈련을 경험한 적이 있다. 주로 사용했던 방법이 괄호치기 연습이었다. 예컨대, 차를 운전하다가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x발’ 이라고 말을 했다가도, 뒤이어 ‘라고 욕을 하고 싶은 내 자아가 있구나’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처음에는 조금 우스워 보이지만 그 효과는 상당히 놀라웠다. 나도 모르게 문득 문득 떠오르는 부정적인 감정들 뒤에 그것을 주관화 하지 않고 객관화로 전환시킴으로써,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정화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훈련으로 더 나아가서는, 굳이 말을 뱉지 않고 내 생각 그 자체에도 ‘괄호’를 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이상한 논리로 상식을 뒤집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문득 ‘말 같지도 않는 말을 하네’ 라고 생각을 하다가도, 나는 속으로 ‘라고 내가 생각하고 있구나’ 라는 괄호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사람에 대한 분노가 조금은 수그러 들고, 그 분노가 나를 잠식하기도 전에 이미 모든 상황은 종료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아와 감정을 객관화 시키는 작업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그것이 꼭 ‘명상’ 이라는 기법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응용방법으로 우리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다. 

 

 

글쓰기도 이와 같다. 내가 가진 감정들을 종이 위에다가 혹은 컴퓨터 모니터에다가 배출함으로써 내 생각을 제3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작업이다. 이것이 상대방 혹은 타자라는 또다른 대상에게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내 감정을 직접 목도할 수 있는 흔적을 남김으로써,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인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외로움’이나 ‘우울감’이라는 주제의 글을 쓰는 당신 스스로를 관찰해보라. 처음에는 휘갈겨 쓰듯 두서없이 써내려 가겠지만, 어느 시점에선가부터 이 표현이 맞을지, 저 표현이 맞을지 고민하고 있는 당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나선 썼던 단어를 지우고 다른 단어로 대체하거나, 아니면 이때까지 썼던 문장 전체를 날려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작업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인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는 것이라기보다,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객체화하여 관찰한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우리가 자기계발서를 쓸만큼 유용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혹은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통해 소설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글쓰기는 자기 스스로를 ‘수신(修身)’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기를 쓰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사실관계만 써내려가는 글은 사실 판례나 보고서에 가깝다. 이런 글들은 ‘돈벌이’에는 매우 유용하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불행한가. 그렇다면 그 불행을 차지하는 키워드에 대한 글을 써보라. 그와 반대로 행복한가. 행복을 차지하는 단어에 집중해서 글을 써보라.

불행은 치유되고, 행복은 진정될 것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우리를 수직선의 ‘0’에 맞추는 것, 그것이 인간의 가장 평온한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