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프로 레슬링을 참 좋아했었다. 그러고보면 칸투칸에 처음 프리랜서 작가로 고용되어서 쓴 글도 프로 레슬링에 관한 글이었다. PLA 라고 프로페셔널 라이브 액션 이라는 인천 지역 프로 레슬링 단체에 관해서였다. 2012년도에 내가 CJ에서 주최하는 Creative Minds 라는 공연 예술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공연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소재가 바로 프로레슬링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냥 이야기를 쓰는 것까지면 크게 상관이 없었는데 이제 공연으로 만들어야 할 때가 되니 이래저래 실질적으로 프로 레슬링을 하는 사람들을 물색하게 되었다. 나는 실제로 공연 때 프로레슬링이 무대에서 보여졌으면 했으니까. 실제로 공연 예산 대부분도 링을 만드는 데 소요되었다. 뭐… 이런저런 가슴아픈 일들이 있었지만 그건 어차피 끝난 일이니 차치하기로 하고.

그때에 만났던 사람이 PLA를 만들어서 이끌고 있었던 김두훈씨였다. 그리고 PLA에서 김두훈씨에게 레슬링을 배우던 대학생 프로레슬러가 있었고. 2012년도니까 7년이 흐른 지금, 김두훈 씨는 PLA 단체를 없앤거나 다름 없이 활동을 정지해버렸고, 당시에 레슬링을 배우던 그 대학생은 통역 준사관으로 직업 군인의 길을 걷더니 당시 사귀던 사람과 결혼까지 하고 지금은 PWS 라는 프로레슬링 단체를 직접 만들어서 운영까지 하고 있다. PWS 약자가 프로 레슬링 소사이어티였다. 지금은 자신이 군 복무하고 있는 평택 지역을 기반으로 간간히 사람들에게 레슬링도 가르치고, 그걸 토대로 흥행도 열고 하는 모양인데 꽤 큰 단체로 자리잡아가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본인이 여러 언어에 능통하다 보니 해외의 유명 레슬러들과의 교류나 섭외도 원활한 모양이고, 젊은데다가 군인이다보니 이래저래 추진력도 있는 모양.

PLA 라는 단체와 PWS 라는 단체는 이런저런 차이점을 보이긴 하는데, 아무래도 단체를 책임지고 이끌어나가는 리더의 성격이나 성향이 크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7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무얼 했느냐.

일단은 휴학을 했다가 여행을 갔다가 복학을 했다가 졸업을 했다가 연극 공연을 했다가 이런저런 운동을 했다가… 7년이란 세월이 생각보다 꽤 길기도 길었다. 마침 얼마전에 일기장을 새로 샀는데 이것이야말로 7년 세월을 응축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게 뭐 그리 큰 사건이냐 싶을 수 있을 테지만 내가 2012년도에 그 프로레슬링 연극 하나를 끝내놓고나서 쓰기 시작한 일기장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일기장 하나를 다 쓰는데 7년이 걸린 것이었다. 일기장의 끝페이지를 채워놓고나서 잠시동안 그 7년이 담긴 책 한권을 보며 무상함에 잠길 정도였으니.

나도 변했지. 많이 변했지. 단체 하나가 없어지고, 단체 하나가 생기는 동안. 굳이 프로 레슬링과의 접점을 찾자면, 그래, 한 달 전에 생활체육으로 레슬링을 시작했다. 프로 레슬링 말고 그냥 레슬링.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아마추어 레슬링 말이다.

뜬금없이 왜 레슬링이냐, 하면, 솔직히 말해서 격투기 쪽 생활 체육에서는 이 레슬링이 요즘 가장 핫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 농담이 아니다. 진짜로 핫하다. 아시다시피 이제 대세는 엘리트 체육이 아니라 생활체육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제 정부에서건 사회에서건 그리고 개인으로서건, 어떤 동이라는 것이 반드시 직업 체육인으로서만 접근할 수 있다면 그건 잘못됐다는 말이다. 더불어서 전 국민이 하나 이상의 운동을 취미로 가질 수 있고, 그것을 평생 영위해 나갈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전 국민이 체육인이 되는 거대한 인재풀을 형성하여 생활체육이나 실업체육인 중에서도 국가대표가 나올 수 있는, 그런 이상적인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중에 왜 레슬링이냐, 하면 이 생활체육 정책에 가장 적극적으로 박차를 가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레슬링이기 때문이다.

이미 레슬링 코리아 라는 대한 생활체육 레슬링 연합회(https://cafe.naver.com/wrestlingkorea) 가 결성되어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상황이고, 누구라도 손쉽게 자기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레슬링 체육관을 찾아가서 운동을 배울 수 있도록 정리가 되어 있다. 나도 이곳의 지속적인 홍보를 통해서 생활체육 레슬링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동영상을 통해 활동 정보와 내용을 알 수 있었고, 이곳을 통해서 현재의 레슬링 체육관에 등록할 수 있었다.

생활체육 레슬링의 장점 이라면 일단 생활체육 초창기이고, 동시에 협회 차원에서 밀어주는 생활체육이기 때문에 코치진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다. 코치분들이 국가대표출신, 혹은 실제 국가대표급의 실력을 가진 분들이고, 그러니 동시에 교육의 수준 역시 높을 수밖에 없다. 동시에 생활체육으로서는 굉장히 저렴한 가격도 매력적이었다. 헬스장만 가도 한 달이면 10만원이 기본이고, 대부분의 무술이나 격투기 도장 역시 한 달 15만원 정도가 거의 대한민국 국룰이 된 현재의 물가인데, 내가 현재 배우고 있는 레슬링팀은 평일반 주말반 따로 운영하긴 하지만 한 달에 6만 9천원이라는 가격으로 운영된다. 국가대표급 코치들에게 전문적으로 티칭을 받을 수 있는데 한 달에 6만 9천원이라는 건… 거의 사회주의 복지 시스템에서나 볼 법한 시스템이었다.

비록 이제 3주차, 그것도 주말반만 나가는 처지긴 하지만, 새로운 운동을 배우고, 새로운 취미 생활을 하나 더 만들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는 재미에 매일 새로운 기분이다.

처음에는 평일반과 주말반을 두고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일단 성격상 운동이란건 매일 해야 된다는 사고방식이 처음 운동을 시작했던 초등학생 이후로 거의 20년간 꽉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모든 운동은 자주 하면 효율이 좋고, 매일 하면 가장 좋은 것이다. 더군다나 같은 가격에 하나는 일주일에 1일, 주말 2타임만 몰아서 들을 수 있고, 하나는 평일 4일을 나와서 운동을 할 수 있는데. 내가 평일 밤에 하는 게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평일반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평일 밤에 이미 태극권과 탱고로 인해 거의 점철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은 내가 직업이 극작가가 아니라 태극권사나 땅게로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그러니 아쉽지만 주말반을 등록할 수밖에 없었다. 주말반도 오전반 오후반이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것까지는 욕심 많은 내가 하나만 선택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평소에도 오전에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는 놈인 주제에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2타임을 내리 듣기로 했다.

그때는 몰랐다. 일주일에 1번만 하는 운동이라서 차라리 다행이었던 것을.

나는 군대를 전역한 이후로는 뛰고 무거운걸 들고 하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었다. 어깨와 무릎 허리가 심각하게 다친 상태였기 때문에 격렬한 운동을 하는 것은 상당히 지양했다. 그렇기 때문에 재활로 태극권을 시작한 거기도 했고. 물론 그 덕분에 몸이 상당히 건강해져서 다시 레슬링을 할 용기가 났던 것도 있었다.

배우러 간 첫날부터 무지하게 뛰기 시작했다. 물론 학교 운동장 트랙을 도는 걸로 생각하면 한바퀴에서 두바퀴나 돌았을까? 작은 레슬링 체육관의 매트 주변을 뛰는 거니까 그렇게 힘들다고 할 건 없었지만, 나는 원래도 오래달리기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었고, 뭣보다 지난 10년간은 뛰는 운동을 딱히 해본 적이 없었다. 금방 숨이 턱끝까지 올라차기 시작했다. 다행히 코치님은 ‘힘들면 쉬엄쉬엄 하세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계셨다. 아마 다치는걸 방지하기 위함이었으리라. 무엇보다 무리해서까지 할 필요가 없는 정말 ‘생활체육’이니까.

뛰고, 사람을 들고, 돌고, 그리고 남들은 기술 연습을 할 때 나는 첫날이었기 때문에 기초적인 태클 공부를 했다. 익숙치 않은 자세를 잡고, 태클을 들어가면서는 무릎을 꿇고, 바닥을 쓸 듯이 기어다니고, 밀었다가 당기는 연습을 하고, 그리고 10년만에 사람들에게 기술을 받아주면서 매트에 낙법을 쳐 보고.

일단 낙법을 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기술 연습때는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서로 땀흘리고, 열심히 잡아주고, 잡아가면서 주말 3시간의 운동이 후딱 지나갔다.

오랜만에 하는 유산소와 근력운동 덕분이었는지, 이후로는 오전에 더 잘 일어날 수 있게 됐다. 그 왜 처음에는 너무 근육통이 강해서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지는 현상 있지 않은가. 그게 2주일차가 넘어가고 3주일차를 넘어가니, 심폐지구력의 원뜻인 심장과 폐의 기능이 정말로 향상되는 기분이었다. 원래 이정도로 호흡을 할 수 있었구나, 원래 이정도로 내 몸이 움직여도 견뎌낼 수 있었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3주차가 넘어가면서 이제는 업어치기, 더블렉 태클, 싱글렉 아웃사이드 태클, 싱글렉 인사이드 태클, 안다리 태클, 안아띄우기 등 다양한 기술을 배워가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 잘 들어가지 못했거나, 상대방에게 타이밍을 못 맞춰서 들어갈 수 있는 기술을 걸지 못한 장면 같은건 꿈에서도 나올 정도로 안타까울 정도다. 어지간히 운동이 재밌긴 한가보다.

이제 다가오는 주말이면 4주차가 됐는데, 한달만 하고 고마 다른 거나 알아볼까 하던 생각이 많이 바뀌는 중이다. 아마 꾸준히 계속 하지 않을까. 그리고 운동이라면 모름지기 반드시 매일 강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일주일에 한번, 그저 땀흘리고 사람들이랑 웃으면서 악수하고 헤어지고, 가끔은 근손실 걱정없이 맥주도 한잔 기울이며 하는 게, 생활체육이 더 삶이 즐겁더라. 10년전에 유도를 하던 때와는 또 다른, 그런 사회인으로서의 재미가 있었다.

PLA 의 약자는 프로페셔널 라이브 액션 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김두훈 씨는 프로페셔널함에 대한 사명감이 굉장히 강한 편이었다. 기준점도 높았고 자존심도 굉장했었다. 흥행에 돈을 받지 않았던 이유도 돈을 받기 민망한 퀄리티라는 이유였었다. PWS 의 경우는 뒤에 소사이어티가 붙는다. 활발하게 수련생들을 받고, 생활체육 수준의, 어찌보면 남들이 보기엔 놀이라고 봐도 무방할 수준의 운동을 꾸준히 해나간다.

프로페셔널한 지점과 생활체육의 지점은 지향하는 바가 같지가 않다. 그러나 누구나 프로가 될수는 없지만, 누구나 생활인은 될 수가 있다. 올해 처음 새로 시작한 또하나의 도전이, 또 즐거운 삶의 한 페이지로 열리고 있음에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