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책인 <통쾌한 희곡의 분석>을 쓴 데이비드 볼 아조씨는 자신의 명저서에서 어린이들의 연극 관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연극을 보러가는 것, 전에 알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보러 가는 것, 극적인 사건이 펼쳐지고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앞으로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해 나갈지 두근두근해하며 지켜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원초적인 즐거움이니, 제발 어린이들과 함께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러갈 때는 제발 먼저 희곡을 읽히거나 어떤 내용인지 말해주지 말라고.

일부분은 동감하지만 2019년 4월달에 몸소 직접 내 이 손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각색한 <핵릿>을 작, 연출, 제작까지 한 입장에서는 반만 동감하는 바이다. 사실 예를 셰익스피어로 들어서 그러한 것인데, 셰익스피어는 영미권에서 태어나 거주하며 자라나고 살아가는 사람들 선에서나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가서 보면 재밌는 거다. 언어만 다른게 아니라 아예 역사 문화가 다른데다가, 현대에 와서 셰익스피어 연극을 직접 공연장에 보러간다는 행위 자체가 그 내용 그대로를 곧이 곧대로 보러가는 게 아니라 어차피 있는 그대로도 아닌 400년 넘게 지나서 현대에 살고있는 연출이 자기식으로 재해석한 것을 보러간다는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러 갈 때 최대한 공부를 할 만큼 하고나서 가서 보는 게 더 재밌는 확실한 방법이다.

사실 현대의 관객이 고전 연극을 보러가는 것은 그런 재미인 것이다. 최소한 고전이라고 칭송받는 연극을 보러가는 것이라면, 제반 사항이나 역사 문화적인 배경까지는 아니더라도 희곡 한번은 읽어보고, 아니면 줄거리라도 한번 곱씹어보고 연극을 보러가는 게 더 ‘재밌는’ 법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건 허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셰익스피어 각색 프로젝트를 시작한 동기이자 목표는, 한국 관객들도 셰익스피어 안 읽고 와서 봐도 재밌을 수 있는 지점까지 끌고가는 것이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학교 다닐 때 셰익스피어를 너무 겉핥기로 지나간 것 같은 부채의식도 있었고, 진지하게 한작품 한작품 뼈에 새기듯이 공부해내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즉 내 나름의 공부기도 했고, 각색자로서의 목표는 ‘자기 이름석자도 쓸줄 모르는 저잣거리 무지렁이 아낙네를 위해 희곡을 쓴다’던 존경하는 옛 극작가의 말을 현실에 실현하는 것이었다. 사실 셰익스피어를 각색할 때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나는 모든 희곡을 쓸 때마다 그것이 목표인 것이다. 무지렁이 저소득층 저학력자 남녀노소 누가 와서 사전지식 없이 극장에 들어오더라도 그저 보고나서 완전히 이해하며 재밌게 즐기고 각자만의 연극을 품에 갖고갈 수 있는 연극.

말이 쉽지 너무나도 이상적인 목표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4월 달의 공연은 작가로서는 슬픈 일도 많았지만 소기의 목표를 조금이나마 어느정도는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자평이 자화자찬이라 부끄럽긴 하지만 객관적이라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한 과찬도 금물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과소평가도 금물이니까.

어찌됐건 긴 이야기의 끝에 하고싶은 말은 연극은 오늘 지금 당장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오늘 지금 당장을 사는 관객들이 현실속에서 겪는 오늘 지금 당장의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지금 당장에 일어난 일이 무엇이냐면, 최근 한 달 사이에 두 번의 청첩장을 받았고, 한 번의 장례식장엘 다녀왔다.

첫 번째 청첩장은 군대에서 같은 소대였던 착한 선임이 줬다. 덕분에 오랜만에, 정말 너무 오랜만에 예비군도 다 끝나가는 마당에 군대 시절 소대 전우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다들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모습에 정말 마음이 따뜻해졌달까. 그리고 군대 전우여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정말 전우애적인 마음으로 각자의 삶을 응원해주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별 생각없이 청첩장이나 받으러 간 나조차도 감동할 지경이었다. 덕분에 낮에 항생제 먹은 것도 깜빡하고 즐거운 기분으로 맥주 한잔 했다가 핑 도는 기분에 식겁을 했지만.

군대 시절, 같이 20대 극초반에, 머리는 빡빡깎고서, 후줄근하고 냄새나는 생활관을 같이 쓰면서, 개고생이란 개고생은 같이 한 그 20대 초반의 까까머리 코흘리개 청년이, 10년도 훌쩍 지나서 결혼을 하겠다며 훤칠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신부의 사진을 보여주는 모습은, 음. 모르겠다. 나만 감동적이었나. 사실 청첩장이나 받고 오랜만에 못보던 전우들 얼굴이나 보러 나간 거였는데, 결혼식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가서 꼭 축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우러났다. 한때 정말 힘든것들을 같이 겪어냈던 사람을 보니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그도 대견하지만, 10년지나 다시 만나 그를 축하하는 내 자신의 인생조차도 같이 대견해지는 기분이었다.

다음 청첩장은 대학시절 같은 동아리를 했던 동생이었다. 사실 대학 다닐때부터 같은 연극 동아리를 하면서 참 많이 같이 친하게도 붙어다니고 몰려다녔던 친구였다. 동생이라기보단 친구같고, 친구같다기보다는 인생의 선배같을 정도로 의젓한 친구라, 나이가 더 많은 형들이 한참 많은데도 개 중에 가장 빨리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놀라는 사람도 없었다. 나 역시 걔라면 일찍 결혼하는 게 이해가 갈 정도로, 이미 생각이나 태도가 참으로 존경스럽고 믿음직한 친구였으니.

좀 아이러니하지만 앞서 군대 선임은 워낙에 코흘리개 때, 더군다나 어리숙했던 군대시절에 봤던 친구라 그랬는진 몰라도 대견하고 감동적인 마음이 컸다면, 대학 시절의 동생은 동생인데도 워낙에 이미 잘하고 성실한 모습을 봐서 그런지 이번에도 ‘음 그래 잘 하고 있군 잘 살겠지’ 같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래서 사람은 너무 잘하기만 해도 감동이 덜한 법이고, 너무 잘해주기만 하면 하찮아 보이는, 그런 간사한 마음이 프로그램된 약하디 약한 생물인 것일까.

어찌됐든 그런 걸 다 떠나서 나보다 나이도 어린 새신랑이 둘이나 생기게 되고, 정성스레 쓴 청첩장을 손수 손에서 손으로 건네며 축하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그래, 자랑스럽고 정말 열심히 행복하게 이상적으로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네 세대가 보통 자라면서 보고 겪은 안좋은 것들은 절대 겪지 말고, 아픔과 고통이란 단어 따위는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보람과 성취만을 가져가는 남은 여생이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진심으로 그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랬다.

물론 그정도로 오글거리는 말을 벅차게 현장에서 막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성격이 영적이진 않은 편이라. 알아줬으면 하는 것 뿐이지. 알아주지 않더라도 진심으로 그들이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전, 이 글을 쓰는 오늘, 나는 장례식장엘 다녀왔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호회 지인분의 어머님께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셨다. 평소에 심각한 지병이 있는 것도 아니었건만, 새벽에 자다가 갑작스레 그렇게 되시었으니,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주변 사람들도 당황함과 황망함에 깜짝 놀랐다. 다들 비통하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고, 나 역시 정말 놀란 마음을 진정할 길도 없이 무조건 시간을 내서 늦게라도 빈소에 조문을 하고 왔다.

어른, 어른이라는 모호한 말을 쓴다고 한들 내가 정말 어른인게 맞는지 고민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어른이 된 뒤에 갔던 대부분의 장례식장에서는 상주들은 항상 의젓하고 경건하게, 오히려 침울해하는 조문객들을 위로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지인분도 물론 그러하셨으나, 갑작스럽게 닥친 일에 대한 허망함과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셔서, 내 마음 역시 너무나도 슬펐다.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을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었을까. 사실은 이렇게 지면상으로 그분의 일화를 불러내는 것조차 죄송스러워진다. 내가 무엇이라고.

다시 연극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공연을 하고 나서, 지인의 지인이 낀, 뭔가 불편하고도 이상한 사적인 술자리에서 원치 않는 비공식 관객과의 대화같은 것이 진행되었다. 질문을 준 분은 연극에 무지한 분이었고, 뭔가 궁금한 게 있으셨고, 그리고 그분의 물음에 내 대답은 맘에 들지 않으셨던 모양이었다. 그분은왜 창작자가 자기 작품에 대해 성실하게 답변하지 않느냐 따위의 훈계같은 것을 나에게 했었고, 나는 그날 안그래도 별로 좋지 않았던 기분이 더 안좋아져서 받아치며 설왕설래 했던 기억이 난다.

최종적으로 나는 그분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연극은 관객이 보는 그 순간 존재하는 것이지, 다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의응답 하면서 존재하는 게 아니다. 만약 내 연극을 보면서 생긴 궁금증이 끝끝내 풀리지 않고 굳이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만족스러운 답변을 받아야만 해결되는 거라면, 그건 그 자체로 그냥 내가 연극을 못 만든거다. 당신이 자꾸 만족을 못하니 내가 연극을 못만들어서 죄송하다.

그때 그분은 내가 이렇게 얘기하니까 ‘에이 뭐 그렇게까지 얘기를’ 이러면서 파장 분위기로 몰고갔다. 기분이 안좋은건 안좋은거지만 솔직한, 연극에 대한 내 평생의 진심이기도 했다. 연극 보고 니안에 생긴 연극을 그냥 너가 존중하면 되지 뭘또 굳이 만든 사람 붙잡고 정답이 뭐냐고 물어보는 것은 무엇일까. 차라리 너 연극 그부분 너무 구렸어, 내 마음이 팍 상해부러쓰, 라고 말을 해줬다면 속이 시원했을 텐데. 언제부터 ‘연극 잘 봤구요, 그런데…’ 하면서 자기 안의 연극을 훼손하는 게 지적인 연극 애호가들의 행위가 되었던 것일까.

현재를 사는 게 연극이다보니, 현재에 어떤 일이 벌어지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 사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어려운 게 바로 그것이다. 현재의 나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현재의 벌어지는 고통들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사람들이 과거로 역사로 미래로 공상으로 빠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장례식에서도 너무 아팠다. 사실 나는 올 한해가 전반적으로 다 아픈 나날들이었다. 청첩장과 장례식 이야기를 했지만, 내가 최근에 감정이 상해서 연락을 끊고 평생 안보겠다고 한 사람의 모친상을 나는 다녀온 적이 있다. 문득 생각이 들었던 것이 내가 장례식에 와준 것은 그에게는 고마웠을지 몰라도 결국 현재의 나는 그에게 다른 모습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나도 결국 현재가 중요했던 것인데, 어쩌면 현재의 모습을 서로 회피하고 과거의 모습에 기대를 걸고 있던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나부터 오늘의 내 인생을 잘 살아야겠다.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네. 더 답이 없는 건 어떻게 해야 그거 잘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단 거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