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라고 이름을 짓고 나니 유튜브에서 하루종일 압둘알리 과로사의 동영상만 찾아보며 낄낄대던 나날이 떠오른다. 먼 옛날처럼 말하지만 요즘이다. 오늘도 그랬다. 낄낄댔다는 저 표현도 상당히 나에게는 의미가 깊은데 예전에는 정말 웃긴걸 보지 않는 이상 혼자서 인터넷을 보면서 실제로 소리를 내서 웃는 일은 정말 드물었다. 그런데 요즘은 웃음이 헤퍼진건지 유튜브를 보다가도 실제로 친구에게 말을 걸 듯이 푸훗- 터지면서 낄낄대는 모습을 보이면서 스스로가 놀라곤 한다.

그동안 나는 기를 쓰고 스스로를 ‘극작가’입니다, 혹은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라고 말해왔다. 사실 하는 일이라고는 전혀 없는데도 말이지. 글을 써야 작가라면 나는 작가지, 근데 1년에 1편만 쓰는데 내가 매일매일 한 글자씩 쓰는 것도 아니고 글쓰는 날이 아닌 날들은 나는 작가가 아닌가? 아니면 내가 글을 쓰더라도 그 글이 작품으로 올라가지 않고 스스로의 노트에만 남으면 그것도 작가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므로 작가라면 레아 세이두랑 동성 결혼하겠다며 되도 않는 시나리오를 써서 프로포즈 하겠다며 열심히 하루에도 몇글자씩 쓰고 있는 저기 내 사촌동생도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일지. 그리고 프리랜서라기엔 프리한 나날이 1년에 거의 360일 정도 되는데 이걸 프리랜서라고 봐야 하는 건지. 사당역 지하철 입구에서 매일 새로 빤 듯한 체크 남방과 나도 한 켤레도 없는 고어텍스 등산화를 신고 엎드려서 구걸하는 거지 아저씨도 1년에 5일 이상은 일이 있는 날일 것만 같은데.

내가 정말로 ‘극작가’ 혹은 ‘프리랜서 작가’ 일까?

올해 초에 연극을 진짜로 제작, 기획, 투자, 연출, 작가를 하면서 오랜만에 ‘작가’행세를 공식적으로 할 수 있어 좋았긴 했지만, 두 번 다시 그런 짓거리는 하고 싶지 않은 나는 앞으로도 내가 쓴 글이 공연으로 올라가지 않는 나날이 상당히 많을 것 같은데 나는 계속해서 ‘작가’라고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고로 내년부터는 어떻게든 취업을 해서 극작과는 별개로 안정적인 돈벌이를 성취하겠다는 개인적인 목표를 세움으로써, 나는 맘편히 올해를 스스로 ‘백수’ 라고 칭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백수라고 칭하는 게, 20살 이후 처음인 듯 싶다. 사실 20살 이후로는 백수인 적이 없었다. 대학생이었고, 군인이었고, 동시녹음 마이크 맨이었고, 다시 대학생이었다가, 휴학생 겸 아르바이트생이었고, 여행객이었다가, 졸업하면서 기어이 뭣 때문인지 하는 일도 없이 ‘프리랜서 극작가’로 살다가, 그 짐을 드디어 내려놓게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내 입으로 ‘나는 백수입니다’고 당당하게 외치며 살아가게 되니, 어느새 나는 고삐가 풀려버렸다. 근근히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한 달에 30만원이나마 내가 버는 것을 다행이지만 상당히 치욕스레 여기고, 이 나이 먹어가면서도 용돈 및 생활비를 받아 쓰는 것을 수치스레 여겼으며(벼룩의 간을 빼먹는 건 아니고 사실 타 쓸 수 있는 경제력의 집안이기는 하다, 이 나이 먹고 타 쓰는 게 좀 그래서 그렇지), 아직도 자립을 못 한 게 부끄러워 얼른 나가 살아야겠다며 나가 살 돈도 없는 주제에 피터팬에 들어가서 원룸이나 알아보는 인간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일말의 죄책감도 거짓말처럼 모조리 사라진 것이었다.

나가 사는 건 10년은 포기해야 하는 일인 듯해서 혼자 방 얻어서 자취하는 혼자만의 드림라이프는 나이 40먹고 하기로 했다. 용돈 및 생활비는 더 가열차게 뻔뻔하게 얻어 타 쓰겠노라고 혼자 다짐했건만, 그렇게 생각하며 가열차게 살아봤자 평소에 쓰는 지출이래봤자 커피랑 혼밥 식당가서 밥먹는게 최대의 사치라서 더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았다. 그러니 한달에 30만원을 버는 아르바이트는 백수에겐 과분한 노동이 되었다.

뭔가 자학 개그 같은 상태기도 하지만 어찌됐거나 정말로 마음이 편해졌다. 더군다나 백수가 되면서부터 앞에서도 말했듯 마지막 보루를 세운 거나 마찬가지였다. ‘내년부터는 취업’이라는 것. 사실 취업도 누가 시켜줘야 하는 거지만 일단은 생각과 계획 자체를 ‘내년부터 이짓거리는 이제 안녕, 그러니 올해는 이짓거리를 더 열심히!’ 로 잡으면서 어차피 내년부터 일 할거(일을 못하더라도 취업활동을 지속할 것) 올해는 정말 더 하고싶은것들이나 해버리자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대만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이미 앞선 칼럼에서도 밝혔지만, 그건 백수가 되기로 결심하고 행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일찍부터 여행이 가고 싶었고, 다만 구체적으로 어딜가서 뭘하면서 여행을 하고 싶은지가 하나도 안 정해진 상태에서, 일단 특가가 뜬 대만행 비행기표만 질러버린 상황이었지 백수 라이프의 시작을 알리는 것까지는 아니었다.

백수가 되기로 하면서 처음 결정한 건 다름아니라 운동을 배우는 것이었다. 미친소리 같지만 나는 이미 운동을 태극권과 아마추어 레슬링 2종류를 하고 있었고, 만일 아르헨티나 탱고까지 운동으로 치면 이미 3종류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운동을 하나 더 배우기로 한 건 내가 생각해도 제정신은 아닌 짓이었지만, 어쨌거나 평소에 제일 배우고 싶었던 운동이 하나 있었고, 하고 싶은건 질러야된다는 생각이 들자, 그냥 질러버렸다. 심지어 태극권은 주3일, 레슬링은 주말 하루, 탱고는 주3회 수업으로, 사실 그냥 운동을 3개를 한다는 걸 떼놓고 보면 사실 스케줄 상으로는 크게 무리는 없는 일정이었는데, 여기에 주5일짜리 운동을 끼얹어버리니, 하루가 갑자기 너무 바빠지게 되었다.

평소엔 오후 3시 4시까지 취침을 하던 인간이 정오도 되기 전에 일어나서 밥을 챙겨먹고 운동을 갔다가, 다시 또 운동 혹은 탱고 레슨을 가는 스케줄을 소화하다보면, 내가 지금 직업 운동선수인지 아니면 체육대학에서 하루에 수업을 2개씩 듣고있는 인간인지가 헷갈리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운동을 하니 식욕이 늘어나서 먹는것도 늘어났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체육관이 위치한 동네가 신림동 고시촌 앞이다보니 운동이 끝나면 한끼에 5500원짜리 고시부페로 직행해서 큰 접시에 밥과 제육덮밥 토마토 같은 것들을 잔뜩 퍼다가 냉장통에 담긴 매실차를 퍼마시며 미친 듯이 먹어댔다.

사실 이것만 해도 몸이 거의 남아나지 않는 수준으로 바빴다. 근데 왜이렇게 배우고싶은건 많고, 하고싶은것도 많고, 갑자기 만나고 싶은 친구들도 많은지. 이것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이제 주변에 백수라곤 나 혼자밖에 없는 관계로 자기 인생 열심히 사느라 바쁜 나의 친구들은 이제 약속한번 잡기가 힘들게 되었고, 나는 백수생활이 올해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이번에는 탱고 레슨을 주3회에서 주5회로 늘리게 되었다.

이제 나는 정말 일주일에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운동, 태극권, 레슬링, 탱고, 4개중에 하나는 반드시 하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거기에 이제 슬슬 여름날씨가 풀려오자 뭔가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두근한게 놀러만 가고 싶어졌다. 여름이 가는 게 괜히 아쉽기만 하고 에어컨을 더 틀고 싶은데 에어컨 안틀어도 선선해지는 날씨가 괜히 원망스럽고… 사실 나는 놀러갈만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지 않다. 내 스케줄은 거의 어지간한 아이돌 연습생 수준의 트레이닝 데이라서, 어디 갈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제 미쳤다고 나는 또 공연을 예매를 하기 시작했다. 마침 또 서울 국제 공연 예술제가 시작을 했으니, 전(?) 연극인이면서 또 백수인 내가 공연 애호가로서 공연을 안 보러 갈 수가 있겠는가. 5작품을 예매하는데 한 15만원 들었나. 아직 공연 시즌은 시작도 안했지만 지금 이 스케줄에 과연 내가 짜놓은 일정대로 공연을 보러갈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심지어 몇몇 날짜에는 친구 결혼식이 겹치는데 오전에 레슬링 갔다가 점심에 결혼식갔다가 저녁에는 공연보러가는 스케줄이 내가 내 핸드폰 달력에 써놓고도 이게 되려나 싶은 수준이었다.

게다가 아르헨티나 탱고 동호회에서는 갑자기 회원들끼리 뭔 바람이 불었는지 군무 공연을 하겠다면서 팀을 짜는데 나는 또 멍 때리고 있다가 덥썩 팀에 들어가게 되고, 이제는 밤에 시간을 쪼개서 따로 연습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연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그냥 비꼬려는 말만은 아닌 것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이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죄책감에 가슴아프기도 했다. 여전히 많이 죽었다고는 해도, 신림동 5500원짜리 고시부페에는 한번 사는 청춘을 다바쳐서 안정적인 삶을 한번 살아보겠다며 이런저런 고시공부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운동을 하러 가는 체육관에도 하도 앉아서 책만 보다보니 허리가 아파 등록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실 어려서부터 별 부족함없이 유복하게 자라온(경제적으로만 그렇다. 가정사를 딱히 자세하게 밝히고 싶진 않지만 그닥 평탄하진 않았다) 나로서는 동시대의 동세대 청년들의 갈등이나 고민이 사실 ‘나자신’이 속한 계급의 문제는 아니었기에 항상 피부로 연대하고 동감하지 못한다는 죄의식 같은 게 도사리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거기에 함몰되어 익사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내가 경제적으로도 한참 어려웠던 시절을 되돌이켜봐도, 나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게 뭔가 좋아하는 것이나 흥미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는 돈과 시간을 바치기를 아까워하지 않았다. 다만 백수인 지금의 내가 그전보다 부채의식이나 죄의식을 덜 느끼는 것은, 실제로 백수가 되면서 더 바쁘고 활기차게 생활하게 된 것과도 무관하지는 않다.

나는 스스로 연극인입네 극작가입네 하며 사는 동안에는 너무나도 일이 없었다. 글은 썼지만 공연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동기부여는 계속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글을 쓰는 시간도 있었고, 책을 보며 연구하는 시간도 많았지만, 사실 그 나머지 시간에는 생산적인 걸 하지 않았다. 그저 걱정과 고민뿐이었다. 이 희곡을 쓰면 이번에는 공연을 할 수 있을까, 다 써놓고도 공연이 안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이제는 완전히 내려놓고서, 심지어 내년에 어차피 취업할거라 거기 고시부페에 앉아 밥먹는 사람들 처지가 곧 내처지가 될 것이 다분한, 아니 사실 이미 거기 같이 앉아서 고시부페에서 밥먹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반은 같은 처지임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제는 거리낌도 없고 그저 하고싶은 걸 마음껏 많이 하고 싶은 나 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하고 싶은걸 마음껏 많이 하고픈 상태라니, 너무 활기차고 행복하고 의욕에 넘치지 않는가. 정말 학교다닐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던것처럼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 무려 한 5년에서 7년만에. 내가 나를 너무 어떤 단어에 가두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내려놓는것만으로도 이렇게 정신적 자유가 찾아오는 건지, 사실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행복하다는 거겠지.

올해까지만 백수일 예정이기 때문에, 누가 뭐라든 당분간은 이 행복을 그저 탐욕스레 즐기려고 한다. 이 행복이 부디 오래오래가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