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칸투칸이라는 회사와 일을 한 지 어언 3년이 조금 넘었다. 그 동안 회사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사업체와 함께 일을 했다. 광고에 도움이 될만한 글들을 쓰기도 했고, ’먹고 합시다’ 에서 푸드 칼럼을 쓰기도 했다. 때때로 라이프 칼럼을 쓰기도 했는데, 사실 라이프 칼럼을 쓰면서 나 스스로도 많은 힐링이 되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나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었을 테니까.

3년 전 칸투칸에 글을 기고 하면서 가끔 등장했던 ‘여자친구’는 어느 순간부터 ‘아내’라는 이름으로 내 글에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아내’라 칭했던 그 사람을 ‘전 아내’라고 이야기할 차례인 것 같다.

최근 ‘전 아내’와 꾸준한 대화를 통해 우리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음’을 합의했다. 마치 ‘쇼 미 더 머니’ 심사위원들이 된 마냥 우리가 내린 결론은 ‘더 이상 당신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였기 때문이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나는 수많은 내적 갈등을 겪었다. 그 중 몇 가지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혼이 인생의 엄청난 실패가 될 거라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사실 살면서 크게 실패해 본 적은 없다. 아니 당시에는 큰 실패였겠으나, 시간이 지난 후 지금은 별 것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당시에는 큰 실패’라는 점에 있다. 나의 이혼은 지금 현재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치명적인 실패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시간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내 사랑이 실패했구나’ 라는 패배주의는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모든 잘잘못이 뒤섞이고, 때론 서운한 감정도 들었으며, 또 때로는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를 잡아먹는 시간들이 많아질 수록 내 삶은 점점 피폐해갔다. 겉으론 괜찮은 척 다니고 있어도,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은 하나 둘 나사 빠진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티를 내지 않으려는 나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나무가 말라간다고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사람은 없으니까.

둘째, 이혼이 마치 인생 최대의 불효가 될 거라는 두려움이었다. 큰 실패를 해본 적이 없듯이, 나는 큰 사고를 쳐서 부모님께 속 썩여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법원에서 형사재판을 받아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은 성인이 된 이후였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이 결혼은 안된다는 부모님이 아니었기에, 나와 전 아내는 많은 가족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받은 축하는 비단 나와 전 아내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일부 몫이기도 했다. 자식을 장가보내는 부모님도 축하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만큼은 부모님은 나름 농사지은 자식이 이제 출하되는 광경에 뿌듯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혼’ 이라는 단어는 나를 일종의 ‘불량품’ 으로 전락시킨다. 그것도 A/S가 안되는 완벽한 불량품. 문제는 내 ‘사랑의 실패’가 단순히 나만의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닌, 부모님의 실패로까지 확장되는 듯한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는 것이다. 

 

 

셋째, 그 결과 이혼은 엄청난 자책을 남긴다. 처절할 정도로. 살면서 크게 후회해 본 경험은 많지 않다. 그것도 뼈저리게, 뼈에 사무칠 정도로, 흉통이 올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혼은 모든 화살이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므로, 그것은 뼈에 박힌다. 게다가 독화살 수준이다. 이혼의 과정은 한 사람과의 만남부터 이별까지 모든 전 과정을 돌아보게 한다. 단순히 결혼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연애시절까지 돌이키게 하는데 이 부분이 많이 괴롭다. 상대방에 대한 원망과 나의 잘못이 뒤섞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원망은 앙금처럼 가라앉고 나의 잘못만 둥둥 떠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처음 ‘이혼’이라는 말이 언급될 때마다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다잡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자책의 노예가 되었다. 자책이 자책을 만들고, 그 자책은 또 다른 자책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해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혼은 정말 끔찍하다. 아메리칸 스타일로 쿨하게 헤어지고 싶었으나, 절대 그럴 수 없다. 게다가 귀책사유가 있는 이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사랑’이라고 시작했던 생활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더러워진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살아야 한다. 나의 이혼은 절대 정당하지 않다. 여전히 내게 수많은 귀책사유가 있고, 나는 여전히 많은 자책을 하지만 그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이혼을 결정하는 이유는 바로 그 곳에 있다. 이혼은 불행이 아니라, 또 다른 행복의 시작이다. 나와 전 아내는 서로 행복하기 위해 이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