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냥 죽어버릴까, 라고 친구가 얘기했을때 지랄마, 라는 대답이 1초만에 나왔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내가 친구 어깨죽지를 붙들고 죽어버릴까, 라고 얘기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한바탕 울고나니 다음날 현타가 쎄게 와서 친구 연락은 다 씹어버렸다. 누구 앞에서 만취하는 건 너무 싫고, 취해서 나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건 더 싫은데, 눈물콧물 짜면서 필름도 일부 끊겨버렸으니 친구가 괜찮냐고 걱정을 하는 연락인데도 받을수가 없었다.

쪽팔려서 그래 쪽팔려서, 속으로 뇌까리면서, 집에만 처박혀지냈다. 충동적으로 오래전 헤어진 여자친구, 그러니까 뭐라 그래야돼, 전여친이라고 하기엔 너무 전이라서 전여친이라고 하기도 좀 죄송해지는 그런 관계의, 그러나 가끔 만나서 하룻밤은 보내면서 뭔가 찝찝한 애틋함을 공유하며 섹스하고 헤어지던, 파트너라고 하기도 죄송한, 아무튼 죄송한 분이랑 만나기로 하고 부산으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했다.

부산으로 가는 KTX 를 예매했다, 고 쿨하고 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것도 특실로. 예전에 대전으로 가는 KTX를 타고 졸다가 내릴 곳을 놓쳐서 동대구역까지 스트레이트 300km 로 꽂아버렸을 때, 웃으며 비웃는 건 아니라던 화장이 짙었던 여자 승무원이 동대구에서 대전으로 가는 KTX 특실을 끊어줬을때 그 짧은 시간 다리를 쭉 뻗고 누워서 갈 수 있었을 때 더 즐겼어야 했어.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으로 고속버스도 아니고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예약했다. 그때까진 뿌듯함을 느꼈다. 이 정도면 아주 적당한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버스는 멀미를 하고 기차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프리미엄이라잖아. 팔걸이도 하나씩 주고 180도에 가깝게 누울 수 있대잖아. KTX 특실도 그거는 안됐었다고. 아닌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렇게 생각을 했다. 아침에 길이 막혀서 택시를 타고 남부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5분이 늦어서 프리미엄 고속버스가 출발한 광경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열이 받을대로 받아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아마 터미널 창구 직원이 봤다면 내 턱에 힘줄이 세갈래 다섯갈래로 갈라지는 걸 보고 어디 교황이라도 몰래 죽이고 도망치는 암살자라고 생각했을테지만, 그럴일은 없었다 창구 직원은 고개를 모니터에 처박고 자기 할말만 싸구려 마이크로 증폭시켜서 내보냈으니까, 내가 부산가는 프리미엄 고속버스 다음걸로 예약해주세요, 라고 하니까 그건 6시간 지나서 있어요 고객님, 이라고 하는 바람에 난생 처음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탈 기회는 저멀리 날아가 버리고, 우등고속을 예약했다.

공복에 버스탈 뻔 했는데 잘됐다 잘됐어, 메데타시 메데타시, 속으로 일본 옛날 이야기 속 훈도시만 걸치고 해피엔딩으로 어떻게든 매조지 짓는 북치는 할아버지를 억지로 빙의시키면서 터미널 분식집으로 가서 참치 김밥에 라면을 시켰다. 분명히 참치 김밥에 라면만 먹으려고 했다. 시키고서 5분이 지났는데 아직 라면도 참치 김밥도 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짜증이 폭발해서 분식집 이모에게 외쳤다.

이모 여기 떡볶이 맵게 1인분이랑 모듬튀김 추가요, 아 오뎅도 하나.

그거 총각이 다 먹게?

네.

어이구 총각이 안 그렇게 생겨서 잘 먹네.

아니 왜 갑자기 생긴거 가지고 뭐라고 해요, 라고 엄청 눈알을 부라리면서 뭐라고 하려고 하던 찰나에 분식집 이모는 쿨하게 라면과 참치김밥을 스테인리스 접이식 테이블 위에다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나는 이모에게 부라리려던 눈을 깔고 대신에 아가리를 쫙 벌려서 라면을 면발 통째로 들이붓듯 입안으로 때려넣었다. 한입 쫙 후루룩 빨아먹으면서 면치기를 한 이후에는 참치김밥 크게 썰어놓은 한덩이를 라면국물에 푹 담갔다가 입안으로 직행했다. 매운 라면 국물이 흰 쌀밥과 마요네즈 먹은 차가운 참치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정말 자-극적인 존맛탱맛이 혀를 감싸고 입 전체를 감싸돌았다.

진짜 맛있는데 뭔가 저속한 리액션을 하면서 먹어야 맛있을 것만 같았다. 어느새 영혼만은 노가다 십장 아저씨가 되어 라면에 김밥을 섭취하고 있을 무렵 떡볶이에 튀김과 오뎅이 나왔다. 오뎅국물을 뜨끈하게 들이키고 오뎅을 꼬치에서 분리하여 떡볶이에 담그면서 ‘에이 젠장 되는거 하나 없네’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미 떡볶이에 오뎅이 기본으로 포함되어서 나온다는 걸 왜 몰랐을까. 그래도 꾸역꾸역 먹겠다고 바삭한 튀김을 그 매콤하고 끈덕끈덕진 빨간 떡볶이 국물에 듬뿍 찍어 바사삭 씹어먹을때는 그때는 행복했다. 맵고 달고 끈덕지고 딱 원하고 상상하던 그맛을 입안에 가득가득 담았던 그 순간에만.

너무 많이 시켜서 결국에 튀김 조금과 떡볶이는 남길수밖에 없었다. 배가 터질것같이 빵빵해진 상황이 오자 이번엔 다른게 걱정이 돼버렸지만. 공복에 갑자기 배터지게 먹고나서 에어컨쐬며 버스타고 6시간 가야 되는데 중간에 화장실 가고싶으면 어떡하지? 모르겠다, 버스시간 다 돼서 그런 고민을 할 새는 없었다. 나는 우등 버스에 올라타서 그냥 곧바로 잠들어버렸다.

죽어버릴까? 그냥 죽어버려야 되는 거 같아 나는. 잠을 청하다가 감았던 두 눈 너머로 어제 내가 뱉고 흩어졌던 관념들이 떠올라서 마음이 불편해 눈을 떴다. 이제 쪽팔림은 없었다. 쪽팔림은 잠깐이고, 내가 내뱉었던 말들이 진심이었어서 불편했다. 진실로 고민 끝에 마음 깊이 묻어두고 하고싶지 않았던 내 고뇌들이라서 싫었다. 입밖에 내고 싶지 않은 말은 끝끝내 입밖에 내지 않는 게 맞다고, 그런 생각을 하며 버스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곧 눈이 부셔서 커튼을 치고 나는 커튼을 바라보았다. 커튼사이로 빛들이 쏟아졌지만, 눈을 감고 있는 것보다는 마음이 덜 무거워서 계속 그러했다.

나는 팀이나 집단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사람들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동시에는 부럽다고도 생각했다. 항상 혼자서 일하고 혼자서 작업하고 혼자서 노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혼자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충족되고 나면 급속도로 외로움이 찾아왔다. 혼자 할 수 있는 건 혼자만 하는 게 좋은거야, 라고 자신을 채찍질했지만 여럿이서 할 수 있는 일을 여럿이서 하는 사람들을 촌스럽다고 굳이 매도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문득 예전에 봤던 다큐멘터리가 생각이 났다. 좋아하는 예술가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예술가의 대학시절부터 함께 했던 동료 예술가의 인터뷰였는데 그게 뇌리에 쟁쟁 울리기 시작했다.

저는 쓰카 상이 천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대학때부터 항상 쓰카 상이 천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쓰카 상이 하자고 하는 작업은 뭐든지간에 영광으로 생각하고 참여했습니다.

압도적이라고 해야 될까, 극단적이라고 해야될까. 그저 한없는 존경과 헌신, 사랑. 그것은 내가 받아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주었던 적은 있었다. 아니 많았다. 그 끝에 돌아오는 것이 배신, 그걸 배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찌됐든 파국이라면, 그것은 내 존경과 헌신과 사랑이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파국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항상 미워하고 탓을 할 그 사람의 문제였을까, 정말 내가 부족해서였을까, 나의 헌신과 존경과 헌신과 사랑이 끝을 모르고 끝까지 뻗어가서 그를 꿰뚫어버릴 정도였다면, 그것은 그대로 내게 돌아올 수 있었을까, 내가 원하던 것을 보고 느끼고 공유할 수 있었을까.

그러다보니 나왔던 이야기 같다.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나은 것 같아. 어차피 이 생에서는 그 답을 찾을 수 없고, 내가 죽어 장례식장 영정사진 앞에서나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보면 되는 거니까, 나는 어차피 죽어 향내나 맡고 있으니 그 광경은 못 보겠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남아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알 수 있겠지, 그거면 된 것이려나.

어쨌든 결론은 나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집단을 만드는 것. 맹목적인 사랑과 존경과 헌신, 나도 못 주고 내가 받지도 못하는 것들로 이루어지는 강력한 유대감과 추진력, 가족과 같은 아니 가족보다도 더 뿌리깊은 때로는 범죄조직과도 같은 폭력적 끈끈함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강력한 힘, 그러니 바랄 수도 없는 것이겠지. 나같이 비판적이고 혼자있는게 함께하는것만큼이나 중요한 사람들이 모여봤자 그 집단은 스트레스로 가득 차니까.

나이가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내 주변엔 이미 나 같은 사람들만 잔뜩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버스 차창 커튼으로 비치는 햇빛에 눈이 아팠다. 마음이 아팠던 건지도. 아프다, 마음이 과연 아픈 걸까. 어렸을 적 한 때 소설 쓰기를 배웠다. 묘사와 서술에 대해서 배웠을 때, 묘사에 꽂혔었다. 서정인의 <강>을 읽으면서 춥다고 말하지 않지만 추움이 느껴지고, 냄새가 난다고 말하지 않지만 꾀죄죄한 땀내가 코를 찌르고, 슬프다고 말하지 않지만 겨울날 냉골방에 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음에도 발바닥이 차가워지는 슬픔을 느끼게 하는 게 좋았었다. 그래서 한동안 일기를 쓰면서는 춥다고도 냄새가 난다고도 슬프다고도 쓰지 않았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 일기를 들춰볼때마다, 나는 참고있는 나 자신이 서글펐다. 추운데 춥다고 말하지 않고, 냄새가 나는데 냄새에 대해 말하지 않고, 슬프면서 슬픔에 대해 말하지 않는, 과거의 자신이.

나는 속으로 힘주어 말했다. 나는 그냥 슬픈거야, 아픈거야, 마음이 아픈거야. 더 이상 아무렇게도 힘들여 공들여 묘사따위 하고 싶지 않아.

부산에 도착해서 무슨 생각이었는지 여봐란듯이 해운대로 가서 바다를 배경으로 셀카를 인스타에 올렸다. 핸드폰이 난리가 났다.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번 연락도 씹어버리면 이 놈이 나에게 더 지랄을 하겠지? 결국 받았으나 받자마자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가득했다. 왜 자기에게 말을 안하고 갔냐면서. 말을하면 이 인간은 나와 같이 부산에 갔을까? 지 싫은건 죽어도 안하는 인간인걸 알고 있는데, 글쎄, 내가 혼자 가겠다고 하는 이 스케줄을 너는 그대로 따라오면서 행복하게 공유할 수 있었을까.

그냥, 그냥 왔어. 혼자. 머리 좀 식히고 싶어서. 사실이었고, 사실이었건만, 나는 사실을 변명처럼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왜 사실로 이 친구를 달래야 하는 걸까.

그래, 그러면 머리 잘 식히고 돌아와라, 나중에 술이나 한잔 하자, 하는 친구의 말이, 무거웠다. 나는 저 바다에 들어가서 그냥 돌아오고 싶지가 않은데, 너에겐 말을 못하겠네. 사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건지도. 내가 지금 당장 죽을처지인데도 너에게는 곧 죽을거라는 걸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는 건 조금 슬프긴 했다.

부산은 도착했어? 친구와 전화를 끊자마자 죄송한 분에게 카톡이 왔다. 그래도 너는 전화로 괴롭히지는 않는구나. 어, 도착했지. 이제 바다고, 바다 구경 좀 하고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잡아놓은 숙소는 어딘지, 숙소 주소를 물어보는 그녀에게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빌라의 호수를 말해주고 비밀번호도 말해줬다. 그러면서 문득 그녀가 샤워후 젖은 머리로 숙소에서 나를 맞이할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도, 정말 아무런 느낌이 들지가 않았다. 상상은 됐는데, 느낌은 없었다. 그녀는 나름대로 내가 멀리까지 갔으므로 그 고마움을 목소리에 담아 표현하려는 듯 했는데, 나는 거기에 호응하지 못했다. 여행에 쩌들어서였을까. 왜때문이었을까.

그 반가움의 목소리가 고마워서, 고마워서라도 어찌됐든 통화를 그대로 끊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말이라도 나오는대로 뱉어야 했어서, 서둘러서 최근의 특이했던 기억이든 추억이든 끄집어냈다.

나 말이야, 처음으로 카페에서 모르는 여자 번호를 따봤어.

푸흡-

왜 웃어?

아니, 너가 누구 번호를 딴다는 게 너무 안어울려서.

응, 난생처음이라고 했잖아.

난생 처음이란 말은 안했는데.

그랬나? 아무튼, 난생 처음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어서 번호를 물어보고 싶어서, 그래서 물어봤어.

그래서?

뭐 곧바로 남자친구 있다고 까였어.

깔깔깔.

근데 그 좀 기분나쁘게 있잖아? 혹시 남자친구 있으세-까지 했는데 0.1초만에 네 남자친구 있어요- 라는 말이 나오니까.

깔깔깔.

너무 웃으니까 기분나쁘네.

깔깔 미안.

나 바다 좀 보다가 들어갈게. 먼저 가서 쉬어.

응. 얼른 와. 보고싶어.

그렇게 끊고나서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 진짜 기분나쁘네. 쳐웃는게. 여자 번호 물어볼수도 있고 까일수도 있는거지. 나쁜년. 그 와중에 핸드폰이 자꾸 울려 바라보니 문자였다. 왠 문자? 심지어 아는 번혼데 뭐하는 번호였지? 왜 기억이…

오랜만에 연락하여 안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올해부로…

4년이었나 5년이었나,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오던 곳의 해고통보였다. 진짜 가지가지 한다 가지가지. 라는 생각이 첫 번째, 두 번째는 고마움. 몇 년간 아르바이트를 했는지 사실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일했다. 알량한 재주와 기술로 한달에 30만원이나마 꼬박꼬박 용돈벌이삼아 입금이 되던 고마운 직장이었다. 아르바이트라고는 했지만 근 몇 년간 수입이라고는 그거 하나밖에 없었으니, 나에게는 정말 직장이나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으리라. 부산에 오는 티켓도, 그 돈으로 끊었고, 저 지는 노을 너머로 서핑을 배우고 있는 청춘 남녀들처럼, 내일 낮에 나도 해보리라고 예약한 서핑교육도 그 돈으로 치른 것이었다.

어찌됐든 어떤일이 있었든지간에, 어떤 기분 더러워지는 일이 있었고, 마음 슬퍼지는 일이 있었고, 슬픔을 슬픔이라 말하지 않더라도 발바닥까지 차가워지는 외로움이 사무치는 일들이 있었더라도, 버스를 타고 밥을 먹고 바다에 둥실둥실 떠서 서핑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오늘 해고통보를 당했던 그 직장 덕분이었다.

그러고보니 이날 처음으로 고맙다는 감정이 들었구나. 가장 안좋은 소식이라고 머리로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맙다 고맙다 라는 마음만 계속 들어 어쩐지 울컥했다.

하- 이제 뭐해먹고 살지. 저주받은 세대라서 늙으면 기술도 하나 없고, 요즘 애들은 코딩교육이라도 받는다는데, 이제 앞으로는 정말 적당히라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질 것 같고, 카페에서 번호따려다 까여도 웃으며 다시 툭툭 일어나 다른 여자에게 번호따보겠다고 다가가는 건 더 힘든데 말이야. 본능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실패 끝에 실패한 사람들은 묻혀버리니까, 실패 끝에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따위는 전혀 도움이 안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아마 실패 끝에 실패할 게 어쩐지 뻔할 것 같다는 것을. 다른 여자에게 번호를 물어봐도 아마 다시 0.1초내로 까이리라는 것을. 그게 내 인생 앞으로의 쭉 펼쳐진 하나의 패턴과도 같으리라는 것을.

그래도, 저 멀리 넘실대는 바다의 파도 너머로, 지는 노을 너머로, 해고를 통보한 그 직장이 너무 고마웠다. 이렇게라도 힘들게 여기까지 오게 해줘서 고마워. 그래도 바다에 나가 파도에 몸을 싣는데까지는 도와줬구나. 서핑 선수가 될지, 서핑은 취미로만 끝내고 다시 육지로 나와서 치킨집을 차리든,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만 마시다 혼자 외롭게 무전취식으로 사망을 할지, 미래는 모르는 거지만, 그래, 그래도 여기까지 날 데려와줬구나.

고마워, 고마웠어. 정말로. 진심이야. 할 수만 있다면 더 어떻게 표현을 하고 싶은데, 고맙다고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고마움을 전달할 만한 방법이 그때 내겐 없었다. 고맙다, 고마워. 정말로 고맙다. 나는 그저 마음 속으로 힘주어 진심을 다해서 이야기했다. 다만 그럴 뿐이었다. 오래오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