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나가면 대부분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예상치 않은 기회에 최근 몇 년간 프랑스,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 미국을 여행하다 보니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유럽은 파리, 런던, 로마를 중심으로 한달 정도 머물렀고 미국은 서부쪽을 한달 정도 머물렀기에 그 나라의 모든 면을 알 수는 없었다.

또, 분명 각 나라와 도시의 매력은 특별함이 있었다. 파리는 도시 전체가 그림 같았고, 로마에서는 서기 100년도 안되던 시기에 이런 문명이 있었다는 것이 굉장히 놀라웠다.

학창시절 미국과 유럽 주요 국가들은 ‘선진국’이고,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을 벗어나 ‘중진국’에 이르렀다고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선진국에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라고 했다.

대학 때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한국인의 ‘냄비근성’이었다. 이슈가 있을 때는 냄비 뚜껑이 열릴 것처럼 끓어오르다가 시간이 지나면 차갑게 식어버린다는 의미였다. 어떤 일을 겪을 때마다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어’, ‘시민의식이 부족하다’는 진단도 많았다.

그렇기에 ‘선진국’인줄 알았던 나라를 방문할 때 기대가 컸다. 하지만, ‘선진국’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선진국을 가르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크게 시민의식과 생활여건, 경제력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90년대 초반까지는 노상방뇨가 흠이 아니었지만 경범죄 처벌이 강화된 후 길에서 소변을 보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하지만 파리, 로마, 런던 등 각 나라의 수도에서 너무 쉽게 노상방뇨를 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문화유산을 보존이 최우선 가치이다 보니 정작 시민의 편의나 권리는 제한되는 경우도 많았다. 파리의 인도는 한사람이 지나가면 반대쪽 사람은 차도쪽으로 비켜야 할 정도로 좁았고, 건물도 워낙 오래되다 보니 난방이나 수도 쪽이 취약했다. 그럼에도 저렴하지 않다는 것이 또 다른 충격.

지하철에서는 휴대폰이 터지지 않으니 멀뚱멀뚱 광고판을 보고 있어야 했고, 해가 지면 왠지 모를 두려움 때문에 숙소 밖을 다니기 어려웠다. 미국에서는 생존을 위해 어둡기 전에 서둘러 숙소로 가야 했다.

여행 후 지인들은 여행이 어땠는지 궁금해했다. 한달씩이나 유럽, 미국을 다녀온 것을 부러워 하는 사람도 많았다.

다만, ‘우리나라가 훨씬 선진국’이라는 내 여행 후기는 많은 공감을 얻지 못했다.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말도 아니었고, 내가 유별난 애국자여서도 아니었다. 아름답고 볼거리도 많은 곳이었지만, ‘이곳에서 이런 불편을 감수하며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내 대답은 단연코 ‘No’였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그야말로 온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를 하면서 한국의 코로나 대응을 높이 평가하고, 백신 개발에 협력하자는 이야기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2개국의 정상과 통화하면서 코로나 대응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를 원하는 각국 정상이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모두가 한국의 대응을 배우려 하고, 한국의 장비를 앞다퉈 도입하려 한다. 적어도 코로나에 대해서만큼은 한국이 표준이 되고 있다.

동시에 콧대 높은 유럽 국가들이 한국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한 변호사가 한국의 코로나 대응은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범한 것이기에 프랑스는 절대 그 길을 가서는 안된다는 칼럼을 게재한 것은 일종의 열등감의 분출이다.

 

‘언젠가 선진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선진국 대우를 받는 것이 익숙지 않을 수 있다. 선진국은 다른 나라가 참고할 수 있는 기준과 표준을 제시한다. 그만큼 지켜보는 나라가 많다는 의미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 맞다. 우리도 이제 그렇게 인식하며 살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