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순한 리뷰’는 제품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체험 한 뒤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FT06 판지오 디오리진 라운드 티셔츠

 

 나는 다 계획이 있었다.  리뷰할 티셔츠니까 고이 걸어두었다가 내일 입어야지, 까지는 완벽했다. 갑자기 방 정리를 하겠다며 가구 배치를 바꾸고 쌩난리를 피우기 전까지는.

무척 더웠다. 먼지 때문에 온 창문 다 열고 작업을 하니 에어컨은 의미도 없고. 뻘뻘 나는 땀에 면 티셔츠가 끈적하게 온 몸을 감아왔다. 에라이, 집어던진 뒤 웃통 벗고 일하다가 화장실에 들렀는데 전신 거울에 저팔계 한 마리가 있더라.

열어둔 창 밖으로 초등학교가 보이는데 그쪽에서도 우리 집 안쪽이 어느 정도 보이는 구조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자라야 할 어린이들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겨줄까 싶어 얼른 아무 옷이나 집어 든 게 바로, 리뷰할 그 티셔츠.

좋더라. 입고 일하는 내내 땀범벅이었는데 바로바로 땀 배출하고 자연바람에 금세 마르더라. 문제는 그 날 종일 일하느라 사진 한 장 못 찍었다는 것. 피곤해 씻고 바로 잠들어서 입었던 티셔츠 빨래를 안 했다는 것. 다행히 방 구조는 흡족스럽게 바꾸었지만.

다음날 오후, 티셔츠를 집어 들었다. 아무리 통풍이 좋다고 해도 진하게 배어 나오는 육수에 하루 종일 절었던 티셔츠인데 좋은 냄새가 날리 없지.

오늘, 지금, 이 시간 아니면 이번 주에 티셔츠 리뷰하러 따로 나갈 스케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계획을 다 짜 놓았던 건데, 어제 대체 왜 이걸 입은 걸까?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대책을 강구한다.

몰라. 일단 빨고 보자.

빨고 짜는데 물기가 별로 안 떨어진다. 그냥 입고 나가면 금세 마를 것 같다.

물에 젖으니 옷 색도 진해지고 주름이 두껍게 처진다.

그래, 이번엔 기안 84식으로 해 보자. 햇볕도 짱짱하겠다 인간 건조대 출동.

출발시간 오후 4시 33분. 흠뻑 젖은 티셔츠 입고서 출발. 버스 타고 서울 갈 거다. 시트에 물 묻으면 민폐니까 엉덩이만 대고 허리 바짝 세워 앉을 생각. 혹시 몰라 작은 수건 한 장 가방에 챙기긴 했다.

집에서 광역버스 정류장까지 대략 도보로 10분 거리. 가면서 사진도 찍고 뭐 그러다 보니 20여분 소요.

 

근데 이게 말이 되나? 다 말랐다. 보송보송이라 해도 될 만큼 완벽히.시계 보니 4시 58분. 겨우 25분 만에.

젖었을 때 약간 남색에 가깝게 진해졌던 옷이 원래 색인 연한 회색톤으로 돌아왔다. 통풍이 엄청 잘 된다는 이야기. 옅은 바람까지 느껴질 만큼 원단이 얇고 촘촘하다.

티셔츠를 주욱 늘려 카메라 렌즈 앞에 댄 채로 사진을 찍어봤다. 렌즈에 옷을 대느라 아랫단을 위로 올린 탓에 거리 한 복판에서 배를 훤히 드러낸 채로. 사람들 안 지나갈 때 후다닥 찍었다.

바로 그 결과물. 모기장이나 사진 효과가 아니다. 옷 사이로 통과해 찍은 풍경. 원단이 엮인 패턴까지 확인할 수 있다. 이 사이로 바람이 쉴 새 없이 드나든다. 빨리 마른 이유가 있었다. 이 정도면 이따 집에 와서 그냥 입고 샤워해도 될 듯. 선풍기 좀 쐬다 보면 금세 마를 테니까. 다시 땀 좀 나면 물에 휙휙 한 담에 입어서 말리고.

그렇게 평생 안 벗어도 되는 티셔츠. 여보, 내 빨래는 내가 할 게를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티셔츠. 이 정도면 거의 스킨이나 마찬가지. 이런 내용으로 광고 만들면 어떨까? 나는 피부를 입는다! 이게 메인 카피. 신이 나서 친구에게 전화해 이 내용을 전달했더니 돌아온 대답.

“한 사람당 평생 한 벌 밖에 못 팔면 회사는 뭘로 먹고사냐?”

맞네. 역시 4년제 나온 사람은 다르다. 빠른 포기와 함께 그래도 미련이 남아 옷자락을 강하게 부여잡는다. 원망스러워 옷을 마구 구기고 당기고 괴롭혔다. 어? 근데 옷을 막 구겼다가 펴도, 당겼다가 놓아도 제 모양으로 제깍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놀라운 신축성이다.  문득 하고 싶은게 생겼다.

 

이렇게 몇 번 했는데 티셔츠는 늘어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바짓가랑이가 터졌을 때 티셔츠를 쭉 내려 충분한 대처가 가능하다. 얼마든지 늘려도 언제나 제 모양을 찾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이러지는 말자. 심할 만큼 잡아 당기지도 말고. 어디까지나 상식선에서. 그래 상식보다 약간 더 여유 있는 정도. 분명한 건 일상생활에서 웬만한 짓으로는 이 티셔츠를 늘어지게 하기 어려우리라.

옷이 다 말랐으니 편하게 버스 탑승. 맘껏 등받이에 기대 한 숨 자며 서울에 도착했다. 빨래에서 건조까지 25분 컷 위엄을 보인 통풍의 왕! 티셔츠와 함께 온 몸으로 바람의 윈드를 느껴본다. 이 티셔츠와 함께라면 언제든지 자유로워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