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이후의 삶

올해 1월에 판교의 한 온라인커머스 회사에 입사했다가 주말 부부, 현실적인 여건 등을 이유로 3개월 만에 퇴사한 경험이 있다. 겨우 3개월 근무 중 무려 1개월을 재택근무로 보냈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창궐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국내에 전파된 것이 설 직후였고, 때마침 주말을 맞이해 부산의 신혼집에 있던 나는 그대로 재택근무를 하다가 퇴사 절차를 밟았던 것이다. 그동안 뉴스에선 자영업자들의 곡소리, 항공사의 재정난과 임금 삭감, 각 업계에서 무급 휴가를 무기한으로 실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산에서 미 해군과 관련된 서비스 사업을 하는 친구도 잠정적인 휴업을 선언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불과 2개월 만에 아시아 일대를 초토화시켰고, 반년 만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한여름에도 선크림보다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었고, 음식점 입구에는 방향제보다 손 소독제가 먼저 비치되어 있다. 한국 가톨릭은 236년 만에 처음으로 미사를 중단했고, 기독교와 불교도 나름의 방식으로 현장 종교 활동을 제한했다. 각종 서비스업, 관광업, 여행업, 항공사 등등의 산업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지만 온라인 기반 비즈니스와 배달, 택배 산업은 전에 없는 호황을 맞았고 공교육조차 온라인으로 학기를 이끌어가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급습이 불과 3개월 만에 퇴사한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경제, 종교, 정치 전반에 유례없는 영향을 미친 것이다.

  • 과거의 언택트와 2020년의 언택트

2019년에 라이프 트렌드 개념 중 하나로 언급되었던 언택트(Untact)가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재조명받은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사람과의 직접 접촉 없는 소비’를 뜻하는 언택트라는 용어는 2019년에 등장했지만 사실 우리는 예전부터 ‘언택트 라이프’를 추구해왔다. 각종 자판기와 증명서 자동 발급기, 무인 택배함, 드라이브 스루, 키오스크, TV 홈쇼핑 등 기술 발전과 함께 우리 사회는 언택트한 방식을 늘려왔다. 일반적으로는 실제 접촉, 컨택트(Contact)로 인해 쌓이는 관계 스트레스와 점점 만연해가는 개인주의, 여성이나 노약자들이 느끼는 사회적 불안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즉, 언택트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수십 년간 찬찬히 추구하고 구축해왔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과거의 언택트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재조명받으며 급부상한 2020년의 언택트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과거의 언택트가 ‘실체 없는 불편, 불안’을 단절하기 위해서였다면, 2020년의 언택트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명확하고도 치명적인 실체를 단절하기 위해 강조된다. 때문에 과거에는 컨택트와 언택트가 어느 정도 비슷한 층위에서의 2가지 선택지였다면, 지금은 언택트가 우선순위에 자리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컨택트 상황에서도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살뜰히 챙겨야 하는 상황은, 확실히 과거에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코로나19 사태를 티핑 포인트로, 전 세계는 단 6개월 만에 언택트의 시대로 들어섰다. 조금 더 거창하게 말해 패러다임이 변화했다고 봐도 좋겠다.

  •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 정치, 경제, 심지어는 종교까지도 사실상 비즈니스라는 초석 위에서 작동한다.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19 사태가 하루빨리 종식되어 다시 이전의 평온한 상태로 돌아가길 바란다. 소위 ‘비즈니스 애즈 유주얼(business as usual)’을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들은 일관적으로 예측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의 저자인 최재붕 교수는 디지털 문명은 이미 정해진 미래이며 따라서 변화를 회피하거나 거스르기보다 미래에 걸맞은 표준을 다시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표준이란 개인의 상식이나 행동 양식 외에도 국가 정책이나 기업 경영, 비즈니스 원칙 등을 모두 포함한다. 예를 들어 전통 시장의 소상공인들이 ‘우리는 동네 장사하는 건데 뭐, 직접 와서 조금 더 얹어주는 정(情)이 있는 거지.’라는 기존의 상식 대신 누구나 모바일을 통해 온라인 유통 채널을 구축해둔 사회라면, 코로나19 사태처럼 갑작스러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자영업자들의 위기 대처 수준이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자영업자 개개인의 상식과 노력 외에도 온라인 유통 채널 구축을 위한 지원 정책도 같은 층위에서 ‘디지털 문명’의 표준을 위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은 지난 40여 년간 자본주의 문명을 떠받치던 4개의 구조인 ‘지구화, 도시화, 금융화, 생태위기’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무너졌다고 지적한다. 심지어는 지구화와 도시화, 금융화라는 3가지 구조가 결과적으로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 지구적 전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즉, 기존의 구조에 대한 성찰과 수정이 필수적이며 당연히 그 이후의 사회는 여러모로 코로나19 사태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리하면, 비즈니스 관점에서 코로나19 사태를 ‘잠시 앓는 열병’ 정도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비유했을 때, 코로나19 사태는 유기체의 면역 체계 자체를 바꾸는 치명적인 현상이며 이후에는 새로운 상태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책임이 따른다고 볼 수 있다.

  • 초연결 시대의 미덕, 온택트

‘접촉, 연결’이라는 뜻의 컨택트와 비교되는 언택트는 얼핏 ‘단절, 고립’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Isolation이나 Disconnection 대신 굳이 언택트라는 신조어를 사용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 시대의 언택트란 ‘불필요하고 불안한 것’을 단절하면서도 동시에 늘 서로 연결되어 있길 바라는 욕구를 표현한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사태는 우리가 서로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사건이자(그 연결 때문에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으니), 심지어 이런 시기에도 우리가 얼마나 서로 필요하고 연결되어야 하는 존재들인지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다.

최근에는 언택트에서 더욱 발전한 온택트(Ontact)를 강조한다. 비대면, 비접촉이 핵심이었던 언택트와 달리 온택트는 온라인을 통한 외부와의 ‘연결(On)’이 핵심이다. 사실 이마저도 아주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다양한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즐기고 있으며, 여러 사람과의 소통도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온택트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언어와 현실은 서로 영향을 미치는데, 언어가 현실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제 온택트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명과 자연을 통해 인문학적인 영감을 전하는 이화여대 에코과학부의 최재천 석좌교수는 바이러스를 종식하고 예방할 수 있는 화학 백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행동 백신’과 ‘생태 백신’이라고 얘기한다. 바이러스의 창궐 주기는 앞으로 더욱 짧아질 가능성이 높은데, 현실적으로 백신 개발에는 최소 1년, 보통 2~3년이 소요된다. 화학 백신만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삼기에는 개발 기간 동안 많은 피해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생활화와 같은 ‘행동 백신’과 자연의 유해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에 전파되지 않도록 하는 ‘생태 백신’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행동 백신이라는 개념은 비즈니스 관점에서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무작정 견디며 ‘결국 모두 나아질 것’이라는 미래의 백신에 의존하지 않고,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비즈니스적 행동 백신’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온택트는 사회가 던진 ‘행동 백신의 포뮬러’와도 같다. 비즈니스의 원칙 중 하나를 쉬운 문장으로 풀어내자면 ‘고객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일 테다. 코로나19로 인해 고객의 삶이 바뀌어버린 요즘, 그들이 ‘원하는 것’이나 ‘원하는 때’보다 핵심적인 건 바로 ‘원하는 방식’이다. 온택트야말로 지금 가장 유용한 방식이며, 앞으로도 초연결 시대의 미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