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학창시절,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스밸브 앞에 섰다. 기본이 다섯 번. 아침 출근 전 확인하고, 문을 열고 나가려다 도로 부엌으로 가 확인했다. 마치 밸브로부터 다짐을 받아내듯 꾹꾹 눌러대다가 입술을 앙 다물고 밸브를 노려보았다. 가로로 뉘인 밸브의 모양새를 눈동자 깊숙이 새겨 넣고서야 겨우 집을 나섰다. 그러고도 모자라 출근길 버스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곤 했다. 학교 가기 전 가스 한 번 더 봐라. 내가 제대로 보고 온 지 모르겠다.

 

물론, 퇴근 후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도 가스 밸브의 잠김 상태였다. 만일 내가 라면이라도 끓여먹고 밸브 잠그는 걸 잊기라도 한 날에는 숨 막히는 훈계가 이어졌다. 엄마는 눈 앞에 자식을 두고도 더 귀한 자식 여기듯 가스밸브에 집착했다. 어쩌다 뉴스에 가스사고 소식이라도 나오는 날에는 호들갑이 더 했다. 저 봐라, 저 봐라. 가스 잘 잠그고 다녀야 돼. 가스 잘 잠그고 다녀야 돼. 가스! 가스! 가스! 나중에 군대에서나 외쳐 볼 화생방 구호를 미리부터 지겹도록 들으며 자랐다.

 

생의 저변에는 무수한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는데 엄마는 유독 가스에 집착이 컸다. TV에서 본 것처럼 매주 한번은 밸브에 치약거품을 발라 거품 발생 유무를 확인했고, 가스 점검 나오는 날이면 누구든 꼭 집에 붙어있도록 안달을 냈다. 엄마는 가스에 대해 집안에 폭탄 하나 떠 안고 사는 것과 같다고 했다. 가스 사고는 수습이 안 되는 재해라고. 동시에 예방이 가장 쉬운 재해라고도 했다. 전문가 수준의 점검 없이도 늘 잠금 상태만 체크하면 되는 건데 그게 귀찮아 모든 걸 잃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내겐 시도 때도 없이 밸브를 확인하는 엄마가 더 바보 같아 보였다. 뭐 얼마나 큰 일 난다고.

 

그런데 어른이 된 내가 어느새 엄마를 닮아 있더라. 요리에 취미를 붙이며 주방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내가 수시로 가스 밸브를 확인하게 된 거다. 설거지를 마치고 주방을 말끔히 정리 한 뒤 내 방으로 가면 금새 밸브를 제대로 잠그었는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시 주방에 나가 밸브를 확인하고, 나간 김에 화장실에 들렀다 나오며 다시 한 번 밸브를 보았다.

 

나이 들어 깜빡하는 게 많아진 엄마가 어쩌다 밸브 잠그는 걸 잊는 날에는 꼭 한소리 하고 넘어갔다. 언젠가는 밸브를 열고 외출한 엄마에게 기어이 밸브 사진을 찍어 메시지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는 지구가 무너질 일을 저질렀다는 듯 호들갑으로 반응했다. 다 큰 아들 잔소리가 듣기 싫을 법도 한데 가스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쉽게 자기 잘못 인정하는 법 없는 엄마의 고집도 가스 앞에서는 고분했다.

 

결혼 전 나는 집에 디지털로 된 자동 가스 차단기를 설치했다. 엄마의 건망증이 심해져 갈수록 위험요소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차단기 덕에 한층 안전해진 가스관을 보며 문득 엄마가 위대하게 느껴졌다. 엄마의 강박이 아니었다면 혹여 무슨 일 터지지 않았으리란 법 없잖은가? 사고란 나와 다른 세계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그런 안일함이 인재 발생의 근원일테니. 조심해서 나쁜 것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엄마처럼 오랜 세월 지치지도 않고 꾸준하기란 어렵다. 엄마는 버릇처럼 그것을 해왔다. 몇 십년간 어떤 행동을 빠짐없이 지킨다는 건 확실히 위대한 일이다.

 

엄마는 혹시 모를 일말의 가능성도 소홀히 여기는 분이 아니셨다. 아버지의 일이 잘 안 풀려도, 자식이 실망스런 학업 성과를 나타냈을 때에도 티끌의 가능성을 홀대하지 않았다. 매일 가스 밸브를 점검하듯 매일 가족을 격려하고 위로했다. 약간의 위험에도 벌벌 떨었던 만큼 실낱의 희망에도 온 힘을 다했다. 엄마에겐 가족이 전부였고, 가스밸브 점검은 그런 가족을 지켜내는 절실한 방법 중 하나였을게다. 엄마는 바보가 아니라 가보같은 사람이었다. 뉴스에 보도되는 가스 사고 이야기를 보도로만 접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엄마 덕이다. 가스밸브는 단지 그 하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두루 조심했던 엄마였고 가스가 특히 위험한 요소였기에 더 신경쓴 것 뿐.

이제는 돈 값하는 차단기 덕에 직접 확인할 필요가 실상 없는데도 엄마의 가스 밸브 걱정은 여전하다. 혹시 모를 차단기 오류의 희박한 가능성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0.01%의 확률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