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젊다는 건 언제까지일까?

젊음[명사] 젊은 상태 또는 기억. 딱 28살 3개월 까지.

뭐 요딴식으로 정의하기엔 뭔가 억울하잖아.

“마냥 젊은 줄 알지.”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버릇처럼 밤을 새우고 험하게 몸을 굴리고 무모한 일을 꿈이랍시고 우겨대고 어긋나고 방황하고 삐딱하고 무엇보다 천성이 한량이라 허송세월 하는 나에게.

“젊은 시절 금방 간다! 눈 깜빡하면 서른이다! 아차 싶으면 마흔이다!”

나이란 게 서서히 다독이며 다가오는 게 아니라 늘 구석에 숨어 있다가 왁! 하고 사람을 놀라게 한다고, 깜짝 놀라서 아이쿠야 하면 벌써 세 발로 걸을 때라고.

그런데 나는 사람이 마냥 젊을 것 같다.

가령, 삼십 대 초반의 직장인 k군이 있다. k군은 회사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 애인이 있어 결혼은 해야겠고 남의 집 귀한 딸 모셔오자니 전세라도 하나 번듯한 게 있어야겠다. 아, 근데 집값은 계속 오르고 돈은 모이질 않고 카드 청구서만 쌓여가고 요전에 집안 문제로 대출받은 건 아직 갚을 엄두도 안 나고.

k군은 어느 날 단골 포장마차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신세 한탄을 한다. k군의 푸념을 한참 듣던 사십 대 중반의 포장마차 주인은 k군을 다독이며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힘을 내게. 자넨 아직 젊지 않은가.”

k군은 포장마차 주인의 말에 조금이나마 위로받은 듯 그래요, 전 아직 젊으니까요 , 씩씩하게 소리친다. 그런 k군을 바라보는 포장마차 주인 L 씨의 눈빛에 연민과 흐뭇함이 서려있다.

L 씨는 일 년 전까지만 해도 괜찮은 중소기업을 운영했다. 하지만 거센 불황의 바람에 회사는 지푸라기로 지은 집처럼 한순간에 내려앉고 말았다. 사장님에서 빚쟁이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L 씨는 가진 재산을 모두 팔아 일부 빚을 청산했지만 아직 수억이 빚이 남아있었다 사장님은 포장마차 주인으로 사모님은 식당집 아줌마가 되었다. 유학 보낸 새끼들도 모두 불러들였다. 빚쟁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포장마차에 처들어왔다. 그런 L 씨가 자살을 시도한 건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의사는 말했다.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어요. 버리기엔 아직 젊습니다.”

의사는 수많은 사람을 보아왔는데 L 씨는 늦지 않았다. 얼마던 재기할 수 있지만 이젠 늙었다는 생각에 의지가 꺾였을 뿐. L 씨는 가능성이 남아있었다. 그래도 아직 젊으니까.

의사는 L 씨 이전에 사랑에 빠진 칠십 대 후반 할아버지를 상담한 참이었다. 30여 년 전 젊은 아내가 병으로 죽고 여자라고는 통 모르고 오로지 새끼들 건사하는데만 힘을 썼는데 이 나이에 뭔 주책인 지 웬 할멈 하나가 눈에 들어오더라. 아 근데 이 할멈만 보면 가슴이 뛰고 그냥 어쩔 줄 모르겠으니 나이 먹어 어디 말 하긴 남사스럽고 미친 게 아닐까 싶어 이렇게 병원을 다 왔다고.

의사는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전혀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내가 아직 젊은 가 봐. 늙었는 줄 알았는데 아직도 맘이 뛰어.”

라고 말씀하셨다. 의사에겐 그와 비교해 L 씨가 한층 안쓰러웠던 거다. 여든이 다 되신 할아버지도 젊다고 하시는데 겨우 사십 대밖에 안된 사람이 생을 그리 쉽게 놓으려 하나.

L 씨와 상담을 마치고 의사는 핸드폰을 열어 자신의 얼굴을 촬영했다. 그리곤  주름이 빽빽하고 흰머리가 그득한 오십육 살 자신의 얼굴을 핸드폰 배경으로 설정한 뒤

“나는 아직 청춘이다.”

라는 문구를 띄워 본다.

가령 이런 이야기가 있다면 우리는 언제쯤 늙었다고 해야 할까?

위의 이야기는 모두 허구지만 말들은 어느 정도 진짜다. 삼십 대 후반의 삼촌은 언젠가 술에 위에 나는 너무 젊다고 소리 지른 적이 있고 오십 중반의 아버지 핸드폰엔 나는 아직 청춘이다 라고 또렷이 적혀 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선 처음 중풍으로 쓰러지셨을 때  그래도 아직 젊은 줄 알았는데 라고 말끝을 흐리셨다.

그때그때 사람들은 자신이 아직 젊다고 생각하나 보다. 하긴 나도 마냥 젊을 것만 같은데 아내와 어머니는 스스로 이젠 너무 늙었다고 하신다.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도 하루하루 죽을 날만 기다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지.

어쩌면 젊은에 대한 주관화는 남녀 성향 차이인 건가? 그건 너무 편협한 결론이잖아.

오늘따라 그냥 괜한 망상이 든다. 모르겠다. 몰라야 젊은 거지. 뭐가 됐든 난 마냥 젊을 것 같다. 아직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