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의 양심을 믿지 않는다. 사람 맘은 간사해서 때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일생을 올곧게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살아내는 분들도 계시지만, 모든 인류에게 성인군자가 되길 바랄 순 없다. 지극히 보통의 대다수는 수시로 흔들리며 살아간다.

 

때문에 내가 믿는 건 상식이다. 양심이 개인의 영역이라면 상식은 사회적 영역이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공공의 이익에 위배되지 않는 행동. 이해할 것 없이 당연히 그래야 하며, 응당 약속처럼 이행하는 규칙. 타인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되고 경우에 맞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 것.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상식적인 일에는 무어라 꼬투리 잡을 부분도 없어서 모두가 상시로 취해야 할 태도.

 

요즈음 주기적으로 인터넷에 올라오는 이슈 중 하나가 소위 진상짓에 대한 고발이다. 개중에는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소수다. 대부분은 상식 결여로부터 비롯된 안하무인격 모습이다. 무리한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점원을 폭행하는 손놈, 배달중계 앱 평점 때문에 손님에게 폭언과 협박을 하는 점주, 응급환자의 길을 막은 택시기사,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손님, 만취해 거리에 서 있는 자동차를 부수고 행인에게 시비를 거는 취객, 이외 카페나 음식점, 심지어 중고거래에까지 말도 되지 않는 요구와 폭언, 협박들. 나아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보복, 앙심 범죄들.

 

아무리 양심에 호소해도 이런 사람들에겐 조금도 먹혀들지 않는다.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겠지. 양심은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것이다. 상식이 양심보다 조금 더 믿음직한 이유는 이후 상황에 대한 고려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누가 생각해도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을 했을 때 아무도 그 편을 들지 않는다. 비난이 폭주하고 갈수록 불리해질 것이란 사실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상식적인 사람은 화를 다스리려 노력하고 한 번 더 생각한다.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는 선행 역시 상식 있는 이로부터 활발하다. 상식적으로 좋은 일을 반복하면 그 사람의 평판이 높아진다. 상식적인 사람은 정직하고 양심적이란 인상을 준다. 호감 역시 상식으로부터 나온다.

 

양심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양심과 상식은 함께 갖추어야 할 요소다. 상식에 위배되는 행동임을 알면서도 행하는 이유는 양심이 없어서니까. 다만 상식의 범위에서 양심을 포함해야 한다. 양심 역시 상식적으로 지켜야 하는 일이다. 양심으로만 양심을 지키는 건 어렵다. 양심에 크게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그 후 벌어지는 일에 대한 파급과 절차까지 상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순간 양심을 저버리고 싶은 유혹에도 이후 상황을 고려해 신중하게 행동할 수 있는 상식이 필요하다. 마음보다 생각에 가까운 것.

 

비상식적 행동으로 도마 위에 오른 사람들은 한결같이 ‘잘 몰랐다’고 말한다. 해당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지 정말 몰랐을 수도 있다. 이 정도라면 정신적 문제다. 재사회화를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알면서 그랬다. 딱 그 상황만 생각하고 순간의 감정에만 몰입되어 다음일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양심적으로 안 되는 것을 알지만 저지르는 것은 상식적으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 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양심의 기로에 서는 순간이 잦다. 그때마다 우리는 당장의 행동보다 행동 이후 벌어질 상황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 사람이 늘 양심적으로 살 수는 없다. 한적한 도로에서 운전 중 속도위반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CCTV 구간을 네비가 알려주었을 때 속도를 줄이는 이유는 딱지를 뗄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양심 때문에 모든 구간 제 속도를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괜히 벌금 맞을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 상식적인 일일 뿐.

 

보통 아는 지식을 보통대로 판단하는 것도 생각보다 보통일이 아니다. 그래도 상식적인 생각을 바로 견지하려는 노력이 동반되는 한 인생을 망칠만한 바보짓에 다다르지 않는다. 상식적인 사람은 사회의 눈치를 볼 줄 알아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다. 양심에 따르는 것도 상식에 의한 일이다.

 

나부터 양심을 지키는 삶에 자신이 없어서 누가 속으로 어떤 생각을 지녔는지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설령 소시오패스라도 제대로 상식을 갖추고 있다면 사회적으로 문제없이 잘 살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그런 사람도 많을 테고. 속 맘이 어떤지도 중요하지만 공동사회에 위해되지 않는 행동규범을 잘 지키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집에 가서 혼자 누구 욕을 하든, 무슨 상상을 하든 자기 마음이다. 딱 거기까지다. 사회로, 사람들 속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이상행동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늘 생각하고 조심하자. 민주사회의 자유는 분명한 규범을 전제한다. 자기 마음대로 뭐든 하려는 천둥벌거숭이를 받아들일 사회는 없다. 많이 배웠다고 무조건 지성인이 아니다. 지극히 사회적인 상식을 지키며 사는 사람이 바로 이 시대의 지성인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