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언제부터 옷을 만들어 입었는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관련 학과 학생이나 연구자가 아니라면 그 역사와 기원을 알 필요는 없다.

 

다만, ‘의식주’라는 말에도 포함될 정도로 옷은 먹는 것 만큼이나 삶에 필수적인 부분임이 분명하다.

 

옷은 여러 가지 기능을 담당한다. 추위와 더위, 외부의 온갖 위험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주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부분을 감춰주기도 하고, 실제 보다 예쁘거나 멋있게 보이는 역할도 한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옷은 사람의 마음가짐과 태도도 바꾼다. 예비군 훈련을 위해 군복을 입으면 이상하게 피곤해지고, 자꾸 눕고 싶어진다.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찾는 사람들은 자신이 수백년 전 이곳에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동기 중 한 명은 육군 장교 임관식 때 입은 예복을 한달 내내 외출할 때마다 입기도 했다.

 

옷은 그 자체로 사람에게 권위를 부여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왕은 신분상 중국 황제의 신하였기 때문에 황금색을 사용할 수 없었다. 종교마다 제사장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의복은 철저한 원칙에 따라 제작된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율법에 따라 제사장의 옷을 만든다.

 

중세 귀족들은 거추장스럽기까지 한 크고 화려한 장식의 옷을 입었다. 자신들은 천한 농민들과 다르다는 표현이었다. 요즘 사람들이 명품 의류를 입는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옷은 격식과 예를 표현하는 기능도 한다. 하얀 드레스를 보면 결혼식을 떠올리고, 검은 양복을 보면 장례식이 생각난다. 심지어 직업도 연상시킨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은 의사아니면 약사가 분명하다. 어떤 사람이 정장을 입고 지하철을 타면 ‘출근을 하나보다’ 싶고, 청바지에 반팔티를 입고 타면 ‘학원 가나보다’ 생각이 든다.

 

이처럼 옷이 가지는 의미와 기능은 수천년 동안 인류의 DNA에 축적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합의한 일종의 ‘선’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래서 90년대 인기가수는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여름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 노래 덕분인지 요즘은 여름 교복이 반바지인 학교가 대부분이고, 청바지를 입고 일하는 직장도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직장인들에게 출근룩은 자유로운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최근 직장인 1200명을 대상으로 반바지나 샌들 등을 허용하는 복장 자율화에 대한 생각을 조사한 결과 76.4%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유연한 조직문화가 조성될 것 같아서’(53.5%), ‘업무 효율이 높아질 것 같아서’(48.3%),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것이어서’(45.3%), ‘냉방비를 줄이고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어서’(30.3%), ‘열사병 예방 등 건강을 지킬수 있어서’(20.4%)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실제로 자율 복장이 가능한 직장인들은 전체 응답자의 34.5%에 그쳤다. 그나마 중소기업(38.5%)은 수치가 높았지만, 대기업은 22.7%에 불과했다. 대기업일수록 여전히 복장 규칙이 엄격하다는 의미.

 

복장자율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상호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52.3%), ‘부적절한 복장 착용자가 생길 수 있어서’(37.1%), ‘복장에 격식이 필요한 직무, 업종이어서’(27.9%), ‘긴장감 결여 등 업무효율이 낮아질 것 같아서’(25.1%), ‘조직기강이 해이해질 것 같아서’(15.2%) 등을 이유로 들었다.

 

직종이나 업무 특성상 어떤 복장이 적절한지는 기업 구성원들이 적절히 결정하면 될 일이다. 외부에서 감놔라 배놔라 할 필요는 없는 것.

 

그러나, 공인은 다르다. 공인이라는 말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담겨져 있다.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자연인에 비해 신중해야 한다.

 

한 여성 국회의원이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본회의에 참석했다. 국회의원에게 특정 옷이 적절한가, 외국의 사례는 어떤가를 따지고 싶지 않다.

 

먼저 따지고 싶은 것은 해당 의원의 입장이다. 해당 의원은 “옷이 뭐가 중요하냐, 나는 일을 잘 하기 위해 가장 적당한 옷을 입었다”라고 항변했다.

 

그 항변은 다 잘못됐다. 옷은 중요하다. 공인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가벼워 보이는 것을 굳이 선택하는 것은 아주 노련한 정치인에게는 적절하다. 단점을 보완해 주니까. 하지만, 최연소 국회의원이 원피스를 입고 본회의장에 앉아 있으면 ‘와우, 권위와 엄숙주의를 깨뜨리기 위한 과감한 시도’라는 의견보다 ‘쟤는 뭐하는 애냐, 어려서 생각이 없나’라는 의견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본인의 의도와 다른 역효과를 불러 온다는 점에서 잘못된 판단이다.

 

“옷이 아닌 일로 평가해달라”라는 것이 본인의 바람이라면, 쓸데없는 논란은 피하는 것이 좋다. 앞으로 어떤 의정활동을 펼칠지 모르지만, 이미 해당 의원은 ‘롤대리녀’에 이어 ‘8만원짜리 국산 핑크(사실은 레드) 원피스 완판녀’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다.

 

일반적으로 국회의원은 ‘일 안하고 돈 받는’ 세금 도둑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업무 강도가 엄청 나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하늘거리는 원피스는 일을 잘 하는데도 도움이 안된다. 차라리 그런 의도라면 츄리닝을 입는게 가장 적당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따져 볼 것은 언론의 태도다. 보수 언론을 비롯해 대다수의 언론이 해당 의원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스스로 ‘나는 꼰대가 아니야’라는 입장을 가지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아닌건 아니라고 왜 말하지 않나?

 

혹시, 해당 의원의 복장을 문제 삼기 시작한 곳이 친 정부 성향의 커뮤니티라서 인가? 친 정부 지지자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마치 자신들도 권위와 엄숙주의에 맞서 싸우는 존재들이라고 이제 와서 포지셔닝을 해봐야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일관성은 보여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