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관심사 중 하나는 스니커즈입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은 ‘스포츠’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친 제품을 마케팅하고, 한 가지 제품만으로도 국제적인 유행을 선도합니다. 한정판 스니커즈를 발매하면 온라인에선 10초 만에 품절되고, 오프라인에선 전날 밤부터 노숙해가며 매장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던 거죠. 관심 없는 분들은 이해하기 힘든, 어쩌면 어리석다고 여길 일입니다만 저는 스니커즈를 사랑하는 팬의 입장에서 그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합니다. 우스운 건 저 또한 제가 관심 없는 프라모델이나 피규어와 같은 분야에서 보이는 소비자의 열광적인 태도를 100%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이율배반적이지만 그 또한 합리성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인간의 특징이라고 퉁 치고 넘어가는 편입니다.

예전엔 선착순 경쟁에서 앞서기만 하면 한정판 스니커즈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미친 듯 마우스를 클릭하거나,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리거나, 노숙을 해서라도 말이죠. 그런 방식은 분명한 문제점이 존재했습니다. 경쟁이 필요 이상으로 과열되고, 편법이 난무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선 난투극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문제점들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판매자에게도 골치 아픈 일입니다. 편법을 잡아낼 프로세스를 개발해야 했고, 손님들의 난투극에 매장 직원들의 안전이 위협받았으니까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새로운 방식이 등장합니다.

바로 래플(Raffle),  추첨식 복권 방식입니다. 연락처와 이름, 생년월일, 아이디 정도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응모하고 무작위로 추첨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진짜 추첨식 복권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복권은 당첨되면 상금을 받지만, 한정판 제품의 래플에 당첨되면 제품이 아니라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자격’을 받습니다. 그것도 1인당 1제품씩만 구입할 수 있는 자격이며, 별도의 할인 혜택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래플 방식을 보다 정확히 풀어서 설명하자면 ‘제품이 아닌 자격을 부여받기 위한 추첨’인 셈입니다.

지지리 당첨 운이 없는 저도 딱 한 번, 한정판 스니커즈 래플에 당첨된 적이 있습니다. 아디다스의 ‘이지 부스트 350 v2’ 제품이었는데, 지정된 오프라인 매장에 들러 발매 정가를 지불하고 신발을 받았습니다. 묘했던 건, 뭔가 이득을 본 느낌이 들었다는 겁니다. 물론 아무나 살 수 없는 신발을 ‘운 좋게’ 샀다는 사실이 이득이라면 이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현장에 찾아가 제값을 다 주고 신발을 샀을 뿐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신발을 발매 정가보다 높은 리셀가로 판매해 실제로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긴 했습니다만, 그건 차후의 일입니다. 그 묘한 기분은 뭐였을까요. 오히려 예전처럼 선착순 경쟁을 이겨내고 신발을 구입한 거라면 이해가 갑니다만, 현장에서 그런 치열함은 전혀 없었습니다. 다들 ‘구입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차례로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흐르던 그 안온하고 당당한 뉘앙스는 도대체.

저는 그 기분의 정체가 ‘제품과 자격을 동시에 얻은 이중의 뿌듯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선착순 방식에 ‘제품 구입 비용’만 필요했다면, 지금의 래플 방식에는 ‘자격 비용’까지 필요합니다. 이때의 비용이란 돈과 시간, 노력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래플에 당첨되지 못하면 돈이 충분해도 발매 제품을 매장에서 구입할 수 없습니다. 물론 더 높은 리셀가의 개인 매물을 구입할 수는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리셀가 매물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건,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원리의 영향도 있겠지만 ‘내가 갖지 못한 자격 비용’을 얹어서 값을 치른다는 암묵적 동의가 큰 역할을 합니다. 한정판 스니커즈 발매일 당일에 매장에 줄을 선 사람들의 득의양양한 표정에는 ‘제품을 소유한다’는 자부심에 더해 ‘자격을 갖췄다’는 뿌듯함이 섞여 있는 거죠. 거창하게 말하자면 재물욕과 명예욕을 동시에 채워주는 것 같달까요.

요즘은 아디다스나 나이키, 뉴발란스 같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외에도 무신사, 29cm 등 다양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래플 방식을 활용합니다. 대부분은 앞서 설명한 대로 수량도 제한적이고 할인도 없는, 그야말로 ‘자격’을 얻기 위한 래플입니다. 간혹 파격적인 할인 가격으로 명품을 구입할 자격을 걸고 래플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편법이 적고(물론 없지는 않습니다만), 현장에서의 난투극도 없습니다. 물론 리셀을 목적으로 인해전술을 사용해 대량 구입하는 업자들이 늘어나는 부작용도 있죠. 하지만 현재 래플 방식은 가장 대중적이고 그나마 공정한 추첨 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스니커즈 외에도 다이어리, 썸머레디백 등이 화제였던 스타벅스의 e프리퀀시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커피를 17잔 마시면 제품 구입 자격을 얻습니다. 그마저도 재고가 소진되면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거나 원치 않는 색상을 구입해야 합니다. 17잔의 커피와 수령을 위한 모든 노력이 ‘자격 비용’입니다. 특히 어디에서나 살 수 있을 법한 평범한 디자인에 브랜드 로고만 박아놓은 한정판 제품의 래플은 ‘제품의 희소성’보다도 ‘자격의 희소성’이 더 큰 메리트로 작용합니다. 집 앞 다이소에서 산 돗자리나 래플 당첨으로 구입한 돗자리나 디자인, 품질 모두 한 끗 차이라고 해도 소비자는 래플 당첨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별 볼 일 없는 래플 당첨 돗자리에는 소비자가 쏟아부은 ‘자격 비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돗자리를 사용하는 자신은, 다이소 돗자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돌아가, 래플에 당첨되어 스니커즈를 구입하기 위해 매장에 줄을 섰던 저는 묘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 묘한 기분은 ‘제품을 소유한다’는 자부심에 더해 ‘자격을 갖췄다’는 뿌듯함이 섞여 있는 거였죠. 재물욕과 명예욕을 동시에 채워주는 것 같은 기분. 하지만 말입니다, 재물욕이든 명예욕이든 어떤 욕망도 절대로 다 채워질 수 없습니다. 뻔한 광고가 늘 먹히는 이유, 비슷한 디자인에 색상만 바꿔 출시해도 또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 자극적인 카피에 소비자가 혹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모두 욕망이 완전히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사실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면서 무분별하게 소비한다면 개인과 가계의 재정은 무너지고, 소비할수록 공허함만 쌓이게 될 겁니다. 미니멀리스트, 맥시멀리스트 뭐 그런 분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쇼핑으로 욕망을 다 채울 수 없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걸 다 알면서도 가끔은 한정판에 목매고 싶을 때가 있는 게 사람이죠. 미니멀리즘을 선언하고 이것저것 내버리자마자 후회하는 게 또 사람 아니겠습니까. 어떤 쇼핑 행태든 결국 쇼핑으로 내 욕망이 온전히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사물의 주체화’에만 빠지지 않는다면, 적당히 허술하고 어리석은 쇼핑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겁니다. 서두에 밝혔듯이 사람이란 합리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율배반적이고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개선하고 성찰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죠. 이 시대의 쇼핑은 더 섬세할 필요가 있습니다. 섬세하게 소비하고 섬세하게 만족하는 쇼핑, 구입 비용과 자격 비용까지 고려하는 쇼핑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