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아내와 연애초창기 시절부터 데이트하러 자주 찾는 곳이다. 부산에서 한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리면 도착해서 접근성도 좋고 볼거리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도심지는 어디를 가더라도 대부분 비슷비슷한 건물들과 아파트들로 천편일률적인 풍경들 뿐이라서 지역색을 느끼기 어려운데 경주는 고층 아파트가 적어 시야가 확 트여있을 뿐만아니라 기와건물을 비롯한 옛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경주만의 정취가 있어 좋다. 경주에 많은 관광지가 있지만 가장 즐겨찾는 곳은 경주시 탑동 67번지에 있는 오릉이다. 평소에는 그냥 경주 IC 빠져나와서 황리단길 가는 길에 있는 곳으로 대충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

오릉을 처음 간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주말에 드라이브삼아 경주를 다녀오기로 했다. 대릉원 쪽으로 가는 길에 큰 길가 옆 보도를 따라서 담벼락이 쭉 세워져 있는게 보였다. 담벼락 안 쪽으로 소나무 숲이 꽤 울창했다. 그럴듯한 공원같았다. 운전이 조금 피곤하기도 했고 잠깐 쉬었다 갈까 하며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주말인데도 주차장은 한산했다. 정문에는 입장권을 담는 투명한 아크릴 통만이 있을 뿐 입장권을 확인하는 직원은 없는 것 같았다. 그냥 모르는체 하고 들어가버려도 아무도 모를 듯 했다. 잠깐 못된 생각을 했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매표소로 가서 표를 사서 들어가기로 했다. 대학생 쯤으로 보이는 젊은 매표원은 좁은 공간에서 의자를 살짝 뒤로 젖힌 채 아주 무료한 표정을 하고 스마트폰을 만지며 앉아있다가 우리가 표를 사려고 다가가자 의자를 고쳐앉았다. 4,000원을 지불하고 입장권 두 장을 샀다.

오릉은 말 그대로 다섯 개의 커다란 무덤이 있는 곳인데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를 비롯하여 신라 초기의 왕들이 묻혀 있는 곳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신라 시조의 무덤이 있는 곳이면 역사적으로 가치가 큰 곳이 아닌가? 그런 것 치고는 찾는 사람이 적은게 아닌가 싶었다. 신라 시조가 묻힌 곳 치고는 너무나 수수하긴 하지만 그래도 관리는 매우 잘 되고 있는 것 같았다. 길은 아주 깨끗했고 잔디도 균일한 길이로 아주 가지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넓은 평지에 소나무를 비롯해서 다양한 수종들이 빼곡히 심어져 있고 그것들은 꽤 나이가 있어 보였다. 유명 관광지처럼 유난스럽게 꾸미지 않은 덕에 오릉은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차분했고 비밀정원 같은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우산을 들고 담벼락을 따라 오릉을 한바퀴 돌았다. 조용히 사색하며 산책하기에는 제격이었다. 제사를 올리기 위한 사당같은 기와집 건물 돌계단에 대충 앉아서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아도 좋았고 사당 안의 쿰쿰하고 습습한 오래된 나무 냄새도 향기로웠다.

요즘도 경주를 가면 황리단길 쪽으로 가는 길에 늘 오릉을 지나치기 때문에 오릉을 잠시 들러서 산책을 하면서 여유를 부리다 다시 갈 길을 가곤 한다. 오릉 주차장은 처음 갔을 때 부터 그랬듯이 늘 한산한 모습이다. 대릉원처럼 관광지로 조성되서 특별한 매력이 있는 곳도 아니고 주변에는 그럴듯한 음식점이나 카페도, 아무것도 없다. 들리는 소리는 새 소리와 담장 너머 먼 발치서 들리는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뿐이다. 옛 왕들 묻혀 있는 높고 봉긋한 무덤을 바라보면서 오릉을 크게 한바퀴 돌아 걷다보면 이 세상 말고 잠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