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기 전까지 나는 갖가지 열등감에 시달렸다. 학창 시절엔 평균 이상의 성적을 받는 편이었는데도 공부에 자신만만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물론 성적이 좋은 것공부를 잘 하는 것은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평균 90점을 받으면 옆 반엔 95점을 받는 친구가 있었고 96점을 받으면 전 과목 만점을 받는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내내 4번의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반 1등을 했는데도 자존감이 높지 않았다. 우리 반의 평균 성적이 가장 낮아서, 다른 반 1등은 전교 10등 안팎이었는데 나는 겨우 20등 언저리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가장 즐겨 했던 스포츠인 축구에서도 마찬가지다. PC 게임을 하지 않았던 나의 학창 시절은 그야말로 공부와 축구뿐이었다. 새벽 축구, 야간 축구, 시험 날에도 축구, 주말에도 명절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축구, 축구, 축구였다. 그저 즐기려고 하는 취미인데도 늘 친구들의 실력을 부러워하며 주눅 들곤 했다. 저 친구는 드리블을 잘하고 이 친구는 헤딩을 잘하는구나, 나는 참 어중간하구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냈다.

축구 다음으로 좋아했던 노래. 중학생 땐 가수가 되고 싶다며 부모님께 치기 어린 반항을 할 정도로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고 교내 노래 동아리에도 들어갔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는 동안 꾸준히 노래를 듣고 또 불렀는데 늘 내 목소리에 불만이 많았다. 어떤 날엔 나얼이 부러워서 이상한 비음을 섞고, 또 어떤 날엔 박효신이 부러워서 더 이상한 소 울음소리를 냈다. 내 목소리와 옥타브에 잘 맞는 곡들이 있는데도 굳이 내가 범접할 수 없는 곡들만 고집하며 열등감을 키웠다.

군대 제대 직후에 시 부문으로 동아대 대학문학상을 받으며 글쓰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어쭙잖은 예술가의 고뇌를 느끼며 비장하고 거창한 언어로 시를 써댔지만 늘 자신이 없었다. 메이저 신인문학상이나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돈을 받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약간의 자부심도 생겼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의 문장이 부러웠고 나의 문장은 부끄러웠다.

다행히 서른을 넘기며 앞서 언급한 나의 열등감들은 거의 다 사라졌다. 서른이라는 나이 덕분은 아니었다. 하루쯤 시간이 흘렀다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과거에 나는 의심의 여지없는 1등, 최고가 되어야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간단히 말해 모든 시험에서 매번 만점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나마 시험 성적처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일이면 수월하다. 하지만 축구 실력이나 가창력처럼 수치화할 수 없는 분야는 영 곤란하다. 내가 가장 축구를 잘하고, 가장 노래를 잘한다 하더라도 그걸 어떻게 확인하고 증명한단 말인가? 글쓰기는 또 어떻고? 신춘문예에 당선되면 내가 최고가 되는 건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노벨문학상 정도는 받아야 마음이 편해지려나.

서른둘인 지금, 나는 확언할 수 있다. 그 어떤 방법으로 1등이나 최고라는 걸 확인하더라도 그 시절의 내 열등감은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를 증명하는 기준이 타인과 외부에 있었으니까. 그 시절 나는 온전히 스스로를 판단하고 평가하고 확신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방법을 모르는 인간이었다.

서른 즈음부터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3가지 원칙을 정했다.

  •  계속 성장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아도 될 일을 구분할 것.
  •  비교의 기준은 자신이 될 것.
  •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을 것.

 첫 번째 원칙 ‘계속 성장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아도 될 일을 구분할 것.’ 에 대해 말해보자. 나에게 축구나 노래는 성장이 필수적인 일이 아니다. 부상 없이 즐겁게 땀을 흘릴 수 있는 정도의 축구 실력이면 족하다.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 중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속 시원히 부르는 것이면 충분하다. 축구 선수나 가수가 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축구와 노래는 나의 취미이고, 취미의 목적과 미덕은 즐거움이다. 다시 말해 즐거우면 된 것이다. 성장이 필수가 아닌 일에 대해 더 잘하지 못하는 자신을 타박하며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오히려 즐기지 못하는 자신을 달래고 보듬는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 나에게 글쓰기는 계속 성장해야 할 일이다. 나는 글쓰기로 생계를 꾸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원고를 청탁받고 책을 출간하고, 조만간 에세이 클래스를 통해 글쓰기 강연도 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가 돈을 받느냐 마느냐라던데, 그런 점에선 나도 프로의 세계에 속해 있다. 프로는 마땅히 제 실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성장을 위해 글쓰기 관련 책을 읽고 초고가 얼추 외워질 만큼 여러 번 다시 읽으며 퇴고를 한다. 이처럼 성장이 필수적인 일은 수시로 자문자답과 평가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평가는 두 번째 원칙 ‘비교의 기준은 자신이 될 것.’을 따른다. 나는 비교의 기준을 과거의 내 글로 정했다. 물론 다른 작가들의 좋은 문장을 읽고 배우고 참고하는 일도 게을리하진 않는다. 그들의 문장에 마음껏 감탄하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내 글이 그에 못 미친다고 부끄러워하진 않는다. 과거의 내 글보다 오늘 내 글이 더 나아졌다면 그걸로 됐다. 앞으로도 계속 더 나아지면 된다. 부러움과 부끄러움은 결코 동시에 느껴야 할 감정이 아니다.

마지막 세 번째 원칙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을 것.’은 축구와 노래, 글쓰기 모두에 적용된다. 화려한 드리블과 속 시원한 골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다치지 않고 실수를 줄여 안정적으로 경기를 뛰는 것이 내 스타일이고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만족스럽다. 노래에서 경이로운 고음과 화려한 기교는 가창력의 기준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망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나는 말하듯이 담백하게 노래하는 것을 나의 스타일로 정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노래들을 듣지만 나는 주로 강산에나 김현식, 들국화나 윤도현, 윤종신의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들이 내 스타일에 잘 맞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신춘문예 당선 시집을 들춰 읽으며 그들처럼 쓰지 못하는 내가, 그들의 시를 읽고도 감명받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고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쓰는 일에 집중한다.

실력도 없이 스타일을 고집하는 아마추어가 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가치 있다고 믿는 방식, 그 스타일의 수준을 고도화하고 싶을 뿐이다. 연결되는 서사 대신 각각의 장면들을, 감정어 대신 상황과 표정과 눈빛을, 낯선 시어 대신 일상어를 활용해 시를 쓰는 것이 나의 스타일이다. 나는 내 스타일을 찾았고, 정했고, 믿기로 했다.

모두의 최고가 아니라, 각자의 최선으로 살아가는 것이 결국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경쟁 속 1등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 1순위를 확신하고 챙기는 일이다. 혹시 이유 모를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하고 있는 일이 별 탈 없이 순항 중인데도 자존감이 떨어진다면 위의  3가지 원칙을 적용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