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타 뮐러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소설은 2차 세계 대전에 패배한 후, 루마니아에 남겨진 독일인 망명 대기자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대인을 이야기한 작품은 많았어도 전후 독일인에 대한 작품은 드물어 관심이 갔다.  책이 얇아 금세 읽어 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착오였다.  문장의 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여느 소설의 한 페이지가 한 문장에 담긴 느낌.  빨리 읽히지 않는다. 어서 끝을 보기 위해 후다닥 넘긴다면 한두 시간 안에도 다 읽겠지만 그렇게 소화할만한 작품이 아니다. 모든 문장, 모든 챕터마다 멈칫하게 된다. 짧지만 깊고, 담백해서 절절하다.

전후 루마니아 마을에 남겨진 독일인들의 소원은 여권을 손에 넣어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권 허가를 관장하는 경찰과 신부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 독일인들의 조국에 대한 여지없이 이용한다. 뇌물과 성상납이 만연하여 남자들은 물질을 바치고 여자들은 몸을 바쳐야만 빠져나갈 수 있다. 죽음을 옮기는 올빼미가 지붕을 오간다.

처절하고 무겁고 음습하고 슬프고 아린 이야기를 작가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저 머리 한 번 긁적이듯.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로만. 이런 방식은 되려 서글픔을 극대화한다.  한 편 무섭기까지 하다. 고작 150페이지짜리 소설이 49개의 챕터로 나 위어 져있다. 분량 짧은 챕터들을 탁탁 끊어지는 느낌으로 읽으며 그 사이의 연속성을 파악해 나간다.  단번에 전체 그림이 잘 그려지지는 않지만, 또 그런 불편함이 이 소설의 백미다. 함축과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한 번 읽어 될 작품이 아니다. 작품 한 부분을 옮겨 적어본다.

 [밤이 점점 높이 자라났다. 밤은 마을에서 하늘을 밀어냈다. 자정이었다. 여름밤 위원회는 마을에서 반쯤 쫓겨난 하늘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교사는 포대 아래서 회중시계를 보았다. 자정이 지났다. 성당의 시계는 울리지 않았다. 신부가 시곗바늘을 멈춰 놓은 것이었다. 성당 톱니바퀴의 시간을 재다니, 안 될 말이었다. 침묵이 마을을 고발해야 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 하나 잠들지 않았다. 개들은 거리에 서 있었다. 개들은 짖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고양이들은 등불처럼 빛나는 눈으로 앞을 응시했다.]

곧고 단단한 문장의 밀도.  번역가 김인순 씨의 솜씨도 놀랍다. 이 책을 다 읽고 한동안 먹먹했다. 암담했다. 글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그야말로 압도당했다. 헤르타 뮐러를 읽고 나니 내 글들이 여느 때보다 더 초라해 보였다. 조금 위축되었다. 바로 한번 더 읽을까 하다가 왠지 모르게 피로해져서 작가의 다른 작품인 ‘숨그네’를 집었다. 몇 줄 읽다가 바로 덮었다. 연달아 읽기에는 좋지 않은 작가다. 숨 막힌다.

제목인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는 루마니아의 속담이다. 날개가 퇴화된 꿩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해 쉽게 먹잇감이 되는데, 이를 어설프고 무력하게 살아가는 인간에 비유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