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이 부활해 세계 정복을 꿈꾸고 용사들은 그를 저지하기 위해 나선다. 마왕의 영향으로 곳곳에 마물이 만연해 각 마을마다 길드가 창설되고 괴물 퇴치를 위한 의뢰를 관리한다. 길드는 모험가들의 집결소다. 전사, 주술사, 마법사 등 다양한 직업군의 모험가들이 모여 파티를 결성하고 의뢰를 해결해 보수를 받는다. 모험가는 활약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데 등급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의뢰의 난이도가 달라진다. 위험도가 높은 의뢰일수록 보수가 높고 명성도 올라간다. 때문에 많은 모험가들이 상위 등급 괴물 퇴치 업무를 맡고자 혈안이다. 모험가의 등급은 총 10단계로 나뉜다. 최상위와 바로 아래인 백금과 금 등급은 선택받은 특정 용사만이 도달할 수 있는 레벨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은 등급이 실질적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 하위 마물인 고블린만 집중적으로 퇴치해 은 등급에 도달한 모험가가 있다. 사람들은 그를 ‘고블린 슬레이어’라고 부른다.

최근 애니메이션 ‘고블린 슬레이어’를 정주행 했다. 정통 판타지 세계관이지만 다크하고 현실적인 요소들이 많은 작품이라 참신했다. 주인공에겐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이나 운명 따위는 없다. 몬스터에게 한 방 맞으면 죽음에 가까운 피해를 받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마법과 주술에는 회수 한계가 있어 전략적으로 아껴 써야 한다. 각성한 용사 혼자 적을 쓸어버린다거나 엄청난 마법 한 방으로 전세를 역전하는 경우는 없다. 모든 전투는 전략과 전술을 동반한다. 세상을 구하는 마왕과의 전투는 마을 밖 용사의 몫이다. 고블린 슬레이어는 오로지 고블린만을 퇴치하며 작은 마을들을 지킨다. 오로지 그것 하나로 은 등급까지 올랐지만 전투는 늘 쉽지 않다.

고블린 슬레이어는 사람들의 평가가 어찌 되었든 묵묵히 자신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일을 한다. 그 세월이 쌓여 고블린 퇴치에서는 그를 능가할 용사가 없다.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을 꾸준히 하여 그 분야 최고 전문가로 우뚝 선 고블린 슬레이어를 보며 적잖은 자극을 받았다. 그의 일상과 일에 대한 태도는 본받을 점이 많다. 일상에서도 비즈니스에서도 유효한 부분들이다. 그래서 한 번 정리해 보았다. 일명 ‘고블린 슬레이어로부터 배우는 성공 비법!’

(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1. 틈새시장 진입으로 차별화 구축

고블린은 하급으로 취급받는 몬스터다. 때문에 초급 모험가 전용 퀘스트 정도로 여겨진다. 약간이나마 등급이 있는 모험가라면 상급 몬스터를 토벌해 명성을 떨치길 원한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에겐 고블린도 충분히 무서운 재앙이다. 다른 모험가들이 고블린 퇴치에 소홀한 탓에 많은 마을이 고블린의 습격을 받는다. 집단행동을 하는 고블린들은 잔꾀가 좋다. 초보 모험가들이 고블린을 무시하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블린 슬레이어는 오로지 고블린만 잡음으로써 자신만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고블린 퇴치를 부탁하고자 다른 마을에서까지 찾아올 정도다. 먼 도시에도 고블린 슬레이어의 이름이 알려져 있다. 마왕과 싸우는 전설의 용사는 아니지만 작은 마을들을 지키는 것은 고블린 슬레이어의 몫이다. 당장의 이익이나 명성을 쫒지 않는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을 함으로써 그만의 차별성을 구축했다.

2. 업계 표준을 제시하는 전문성

고블린 한 개체는 약하기 때문에 무리를 이룬다. 그들은 놀라운 번식력으로 순식간에 세를 불린다. 게다가 고블린을 처리하려는 모험가 수가 적어서 출몰이 잦다. 고블린 슬레이어의 일이 끊길 염려는 없다. 고블린 슬레이어 입장에서는 세상 모든 고블린이 사라져 자신이 할 일이 없어지길 바라겠지만.

어쨌든 고블린은 끊임없이 출몰하고 고블린 슬레이어는 항상 바쁘다. 스스로도 일이 많다고 이야기할 만큼. 몰려드는 일감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기 위해 다른 분야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오로지 고블린만 끊임없이 연구해 전문성을 강화한다.  고블린에 대한 지식수준은 업계 탑이라 할 수 있다. 고블린의 특성을 고려해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이행한다. 고블린도 모이면 위험하다는 점을 파악하고 동굴 밖으로부터 각개격파해 나간다. 나중에는 명성이 자자한 거물로부터 지정되어 고블린 퇴치를 부탁받는 경지까지 이른다.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하고 스스로 업계 표준으로 우뚝 선 좋은 사례다.

3. 동료의 능력 숙지 및 노하우 공유

처음에 고블린 슬레이어는 1인 기업 운영이었다. 그건 그가 외골수 성향이거나 고독한 주인공이라서가 아니다. 나름 3D 업종으로 분류되는 듯한 고블린 퇴치 전문 업체에 취직하려는 모험가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함께 하고자 하는 모험가들이 나타났을 때 별 다른 면접 없이 동행한 것을 보면 그도 평소 인력난에 시달렸음을 알 수 있다.

마법사나 주술사는 한 번 움직일 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의 횟수 제한이 있다. 고블린 슬레이어는 퇴치작전에 앞서 늘 동료들의 기술을 체크한다. 어느 시점에서 어떤 기술의 회수를 어떻게 사용할지 사전에 계획한다.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동료의 기술과 장점, 보유 도구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대처가 빠르다.

나아가 동료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한다. 업계 선배가 없어 그 나름 핍박과 설움 속에 홀로 깨우친 지식들이다. 직원 개인의 성향과 능력을 파악하여 공동 업무의 시너지를 일으키고 매 경험마다 발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니 더할 나위 없는 수장이다.

4. 실용적인 장비

잘 될 때 투자를 통해 더 큰 성장을 도모하는 건 좋다. 반면, 무리한 투자로 인해 폐업 절차를 밟는 기업도 많다. 일의 양이나 처리 솜씨를 보았을 때 고블린 슬레이어의 자산은 제법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들이 왜 저런 장비를 쓰냐고 할 정도로 그의 장비는 볼품없다.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고블린들이 살고 있는 동굴 통로는 좁고 길다. 이곳에서 크고 묵직한 장검을 휘두르면 벽에 닿아 튕겨져 나가 버린다. 짧고 반경이 작은 검이 유리하다. 게다가 고블린의 피는 잘 엉겨 붙어서 칼 한 자루를 오래 쓰지 못한다. 때문에 한 두 마리 정도 베고 난 후 고블린의 칼을 빼앗아 쓰는 것이 좋다. 비싸고 큰 검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고블린은 완력이 약한 대신 민첩하고 여러 명이 한 번에 달려든다. 튼튼하고 방어력 높은 갑옷보다 중요 부위만 보호하되 기동성 높은 갑옷이 효율적이다. 경량화와 활동성에 초점을 맞춘 고블린 슬레이어의 갑옷은 자주 입어 길이 들어있다. 고블린의 피 냄새가 배어 기척을 지우는데도 일품이다. 그래서 그는 장비가 손상되면 바꾸기보다 수선하는 쪽을 택한다. 여유 비용으로는 마법이 깃든 스크롤을 구입한다.

비싸고 좋은 최신 설비에 무리한 투자를 하기보다 현재 업무에 적합한 장비를 수시로 정비하여 운용하는 것이다.

5. 한계를 인정

이 작품은 세계를 구하는 용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변 사람과 작은 마을 하나 지키는 것도 버거워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고블린 슬레이어는 자신이 결코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수련을 통해 일반인보다는 강하지만 세상을 구할 정도의 힘은 없다. 고블린 무리에게도 얼마든지 죽을 수 있다. 그래서 못하는 일은 못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혼자서 버거우면 버겁다고 인정한다. 반드시 하겠다는 다짐보다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한다. 스스로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다.

때문에 무리해서 나서거나 욕심내지 않는다. 고블린 사냥은 항상 신중하게 이루어진다. 상급 고블린을 상대할 때, 자신이 베테랑이라고 해서 호기를 부리거나 공을 세우려 하지 않는다. 동료들과 합의된 사전 작전에 의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더욱 세밀하고 빈틈없는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오랜 세월 혼자 수많은 고블린을 상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지방 거점 기업의 역할이 다르듯, 용사가 마왕과 싸우는 동안 고블린 슬레이어는 변방의 작은 마을을 여럿 구해냈다.

6. 사소한 일을 반복

고블린 슬레이어의 하루 일과는 목장의 수풀을 뒤지며 고블린의 발자국을 조사하고, 손상된 울타리를 고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야행성인 고블린은 한 밤중에 정찰을 나오기 때문에 그 흔적을 찾음으로써 공격을 대비하는 것이다.

그가 목장에 있을 때면 이 사소한 일과를 매일 반복한다. 지루하고 별 것 아닌 일을 계속해 나가기란 쉽지 않다. 이걸 잘하는 사람이 결국 큰 일을 해낸다. 그리고 고블린 슬레이어도 이런 행동의 반복 덕에 결국 대규모의 습격을 사전에 막아낼 수 있었다.

7. 즉각적인 실행력

고블린 슬레이어는 의뢰를 받는 그 순간 움직인다. 잠시도 지체하지 않는다. 즉, 언제든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다. 일을 미룬다는 건 그에게 있을 수 없다. 즉시 동향을 체크하고 채비를 마친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바로 실행에 옮긴다.

8. 주변에 대한 호기심

고블린 슬레이어는 뛰어난 관찰력을 지니고 있다. 관찰에서 멈추지 않고 연구하며, 적용한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상대가 누구든 적극적으로 묻는다. 덕분에 넓은 분야의 다양한 지식을 지니고 있다. 지식들은 전략을 위한 자산이 되어 전투에 창의성을 부여한다. 그 스스로도 상상력은 큰 무기가 된다 말한다. 상상은 백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상상의 요소들은 기반 지식으로부터 탄생한다.

언젠가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고블린 슬레이어는 아이크스림 판매인에게 제조법을 물었던 적이 있다. 대답을 들은 후 그 원리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고블린 슬레이어를 보고 동료인 여신관은 말한다. 어떻게 고블린 슬레이어 씨가 그렇게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지 이제 알 것 같다고.

주변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이를 탐구하려는 노력. 그 덕에 고블린 슬레이어는 풍성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이는 위기에서 그와 동료를 구하는 기지의 토대가 된다.

9. 어려울 때 도움 구하기

목장에서 대규모 발자국이 발견되었을 때, 고블린 슬레이어는 길드를 찾아가 실력자에게 도움을 구한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임을 인정하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괴짜 같은 고블린 슬레이어를 평소 맘에 썩 들어하지 않는 길드의 모험가들이었지만 그의 진심을 느끼고 모두가 돕기로 결정한다. 심지어 고블린 슬레이어의 전문성을 믿고 그가 수립한 작전에 전적으로 따른다.

그는 신에게 선택된 용사가 아니지만 자신의 역할을 차별화하고 꾸준히 성장해 온 덕에 고블린 퇴치에 있어서만큼은 모든 이의 신뢰를 획득한 것이다. 자신이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전문분야 업무에 있어 타인에게 도움을 구한다는 건 존경할만한 행동이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지 않고 현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여 인정한다. 필요할 땐 도움을 청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10. 끊임없이 생각하기

고블린 슬레이어는 철저하다. 사전 준비부터 실행단계는 물론이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해 대처한다. 자신의 물리적 힘에 기대지 않는다. 늘 작전을 짜고 생각해서 행동한다. 집요한 생각이 그를 평범한 모험가와 다른 존재로 만들었다. 인간은 어렵고 힘든 순간에 생각의 끈을 놓곤 한다. 멍해지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할 때도 있다. 고블린 슬레이어는 치명상을 입어 생사를 오가는 순간에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평소 나날의 생각이 기반이 되어 위기를 헤쳐나가는 기지가 된다.

살다 보면 어려운 순간이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이때,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보다 수월하게 이겨낼 수 있을지 모른다. 생각을 멈추는 순간 기회도 잃는 것이다. 고블린 슬레이어의 생각하는 습관은 그가 그의 능력 이상의 업적을 이루는 토대가 된다. 앞서 말했듯 선택받은 용사도 아니고 우월한 신체를 갖춘 것도 아니다. 현실에 빗대면 금수저나 타고난 재능이  아니었다. 생각을 통해 보완점을 찾고 생각에 따라 행동했다. 생각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다.

생각이야말로 고블린 슬레이어의 한계를 극복하는 날카로운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