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봄.

함께 숨 쉬던 늙은이가 떠나고, 내 몫의 공기분이 늘었지만 숨구멍은 되려 좁아진 기분이었다.

나는 통곡으로 숨을 토했다.

 

할아비는 홀연하지 못했다.

내 온몸, 몸 안의 맘, 맘 담긴 삶, 사방 다닥다닥 정만 늘어놓고 정리조차 안 하고 갔다.

어질러진 나를 대체 언제 다 치우라고.

 

괘씸한 할아비를 매일 기다렸다. 꿈에 나오면 되바라지게 따질 요량이었다.

할아비도 염치는 아는지 콧잔등도 안 비추었다.

기다리던 매일이 사나흘이 되고, 일주가 되고 한 달이 되었다.

 

그 사이 맘으로 여럿 타인이 드나들었다.

드나들 때마다 타인들은 할아비가 어지르고 간 맘 조각들을 조금씩 가지고 갔다.

어느새 할아비는 내 유년 그저 있던 사람에 다름 아니었다.

 

대학교 2학년 가을, 어쩌다 관련 주제로 가족 대화가 펼쳐졌더랬다.

삼촌은 가끔 꿈에 할아비를 뵌다 했다. 와서 별 것 하진 않으신다고. 보다 간다 그냥.

삼촌 말에 엄마는, 눈에 밟히는 새끼 꿈에 많이들 나오시는 거다, 답했다.

그러니까, 빙빙 돌리던 말이 결국 우회로를 못 찾고 직진으로 들이받는다

젤 칠칠맞지 못한 자식 걱정돼서 오는 거라고요, 도련님.

헛헛하는 기침으로 배고프지 않아요? 묻는 삼촌.

배가 좀 헛헛한 거 같기도 해. 뭐 시켜먹을까 삼촌? 분위기 전환을 시도하는 눈치 빠른 나.

아니, 하고 답하는 마흔 중반 노총각 삼촌 얼굴이 그야말로 헛헛했다.

 

여하튼, 나는 그럼 칠칠한 손자였던 게야!

쓸데없는 뿌듯함과 안도감이 들어

할아비에게 사람 잘 보았다 잘난 체 좀 해보렸더니

글쎄 할아비 얼굴 목소리 웃음 손짓 발짓 버릇 입냄새

쓰다듬음 장난기 너그러움 걸음걸이 뜀 모습

땀냄새 이부자리냄새 말투 말장난 그만의단어

같은 게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근데 그 마저도 별로 안 서운하더라.

뭐랄까 유치원 때 읽은 위인전 표지 기억하는 느낌이랄까?

웃음 비어지는 추억 정도.

 

것보다 ‘칠칠치 못하다’가 욕이면 ‘칠칠하다’는 칭찬이어야 하는데

왜 둘 다 욕처럼 들리는 걸까, 하는 의문이 더 깊었다.

 

집에 사진이 걸려 있음에도 제사 때나 그 눈 한 번 제대로 보는 사이.

할아비와 나는 그렇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대학교 2학년 가을, 약간 더 깊은.

축제기간이었다.

우리과는 주점을 열었는데 나는 쓸데없이 집행부 같은 걸 해서 축제 내내 파전만 부쳤다.

장사가 잘 돼서 어마어마하게 부쳐댔다. 후문 잔디밭 풀을 죄다 뜯었대도 믿을 양이었다.

마지막 날 뒤풀이에 겨우 술을 입에 댔고,

며칠간 일한 보상심리로 술에게 나를 맡겼다.

 

언제쯤 어떤 경로로 거기까지 갔는지 그래서 기억에 없다.

어쨌든,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기 싫었던 나는 마셔라 마셔라 말 참 잘 들었고, 그 사이 비가 왔나 보다.

나는 강물이 범람하는 둑을 걷고 있었다. 물이 올라 어깨까지 잠겨가는데 추운 줄도 몰랐다.

머리 꼭대기까지 물이 찼을 때 비로소 숨이 막혀옴을 느꼈지만, 묘하게 편안했다.

그대로 눈 감고 엄마 자궁 속을 유영하던 태아처럼 웅크려 잠들고자 했다.

그때, 억센 손이 머리채를 붙잡았다. 그대로 단번에 육중한 내 몸이 뭍으로 끌어올려졌다.

거대 참치를 운반하는 어선의 크레인처럼 손아귀 힘이 엄청났다. 내팽개쳐진 나는 억울해 올려다보았다.

 

거기, 할아비가 있었다.

 

그리 성난 얼굴은 난생 첨이었다. 할아비는 생전 내게 골 한번 낸 적 없었다.

나는 서운해서 울기 시작했다. 할아비는 아랑곳없이 다 큰 내 볼기를 힘껏 쳤다.

다 큰 내가 할아비 한 손에 가볍게 들려 엉덩이가 터질 때까지 볼기를 맞았다.

아팠다. 너무 아팠다. 울며 소리쳐도 할아비는 나를 팼다.

이어 분이 안 풀렸는지 회초리를 끊어와 온 몸을 쳤다.

아팠다. 죽을 만큼 아팠다. 나 죽어요. 소리치는데 할아비가 첫마디를 뗐다.

 

그르다 진짜 죽어 이눔아!

회초리 쥔 할아비 손바닥 살이 터져나가도록 내리쳤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아파서 억 소리로 발딱 일어났다.

발딱, 일어나 보니 사방이 컴컴했다. 온몸이 으슬거렸다. 어딘지 모르겠더라.

곧 눈이 어둠에 적응해 사방이 구분되자 내가 논두렁에 나자빠져 자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비가 많이와 도랑 가득 철철 물살이 거셌다.

거기 코 박고, 얇은 바람막이 하나 입은 채, 물에 몸 반 담그고 자던 꼴이었나 보다.

일어나 논을 빠져나왔다. 흙탕에 발이 푹푹 잠겼다.

 

지방대인지라 그 밤에 다니는 차도 없어 기숙사까지 오랜 시간 비를 맞으며 걸었다.

며칠을 독감으로 호되게 앓아누웠다.

 

집행부원들 말로는 마시다 갑자기 화장실 간다 하고는 안 왔다 한다.

원래 취기가 오르면 말없이 집에 가는 버릇이 있어서 별 걱정 안 했다고.

내가 일어났던 논은 학교에서 걸어 한 시간 좀 안되게 걸린다.

취한 놈에게 뭔 논리가 적용되랴 싶어 거기까지 간 이유를 생각해보는 건 관뒀다.

 

다만 할아버지가 처음 내 꿈에 나와

평생 꿀밤 한대 안 먹인 손주를 미친 듯 후려 패던 모습이 자꾸 선명했다.

아팠다. 꿈인데 아파서 깼다.

칠칠치 못한 자식 꿈에 나오는 거라던 엄마 말이 떠올랐다.

 

그 일 이후 나는 철들지 않고 살기를 결심했다.

칠칠치 못해야 할아비가 언젠가 또 나를 뵈러 와줄 터이니.

 

아 그렇다고 죽을 고비 또 넘기겠단 말은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