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파고 쇼크, 그 이후

바둑 천재 이세돌 9단과 알파고와의 대국이 치러진 지도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대국 전, 많은 사람들은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예측했습니다. 그 예측의 기저에는 이세돌이라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바둑이라는 종목이 갖는 무한대에 가까운 변수가 깔려있었죠. 올해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세돌 9단도 당시를 회상하며 “사실은 가볍게 임했어요. 이길 거라고 생각했고요. 제가 질 거라고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라고 말했을 정도이니, 4:1로 이세돌 9단이 패배한 대국 결과의 충격은 만인에게 엄청났습니다. ‘겨우 바둑’ 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마치 조만간 인간이 AI와 로봇에게 지배당할 것만 같은 암울한 예측이 공기 중에 떠다녔습니다. 소위 ‘알파고 쇼크’였죠.

세계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민권을 획득한 인공지능 로봇인 소피아는 2016년 미국 CNBC 방송에서 “인류를 파멸시킬 것”이라고 말해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AI, 로봇을 인류에 적대적인 존재로 여기는 분위기가 지속되었습니다. SF 영화의 극단적인 사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당장 일자리 시장에서 AI와 로봇의 입지는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소설을 쓰는 AI도 개발되었다고 하니 저와 같은 글쟁이들도 안심할 수는 없게 되었죠.

  • 합리와 효율이라는 무기

자, 다시 한 번 ‘바둑 천재 이세돌 9단과 알파고와의 대국이 치러진 지도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우리는 AI와 로봇에게 지배당했나요? 자리를 좀 뺏겼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글쎄요, 지배당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인간이 로봇의 명령대로 살아간다거나, 로봇에게 복종하지 않는다고 생계의 위협을 받는다거나 하진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결정적으로 AI, 로봇은 인간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입니다. 로봇 소피아에게 화재 현장에서 아이와 노인 중 한 명만 구할 수 있다면 누구를 구하겠느냐고 했더니 “출구 쪽에서 가까운 사람을 구할 것이다. 구출 확률이 더 높으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아이와 노인의 생명 가치를 판단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껴 쉽게 결정하지 못할 텐데, 로봇은 그렇지 않은 거죠. 로봇은 생명 가치를 윤리적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저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구출 확률을 계산할 뿐입니다.

실제로 인간이 로봇보다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기란 어려워 보입니다. 거의 모든 직업, 모든 상황에서 그렇습니다. 전력만 제대로 공급된다면 로봇은 지치지도 않고, 우울감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지기는커녕 반복될수록 효율과 안정성은 고도화되죠. 게다가 초기 자본금만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인건비보다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합니다. 인간은, 우리는 로봇을 이길 수 없을 겁니다. 슬프지만 예견된 사실입니다. 한 가지 위안은 그런 로봇을 인간이 만들고 조종한다는 건데, 그 위치마저 역전된다면 정말 로봇에게 지배당하게 될지도 모르죠.

  •  AI는 못하고 인간은 하는 것

미국의 월마트는 올해 전국 4700개 매장 중 1000개 매장에 재고 확인용 로봇인 보사노바를 배치할 예정이었습니다. 약 2m 높이의 보사노바는 상품이 진열된 선반을 빠르게 스캔하고 지나가며 재고를 확인하는 로봇인데, 그 속도와 정확성은 도저히 인간이 당해낼 수 없는 정도죠. 그런데 월마트는 보사노바 배치 계획을 전면 철수하고 재고 확인을 직원들에게 맡겼습니다. 사람 대신 로봇을 해고한 셈인데, 그 이유는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배송과 포장 주문이 늘어 단순 재고 스캔을 하는 보사노바가 사람보다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커다란 보사노바가 재고 파악을 위해 이동하는 방식이 고객에게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로봇보다 효율적인 상황이 생긴 덕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언제든 더 효율적인 로봇이 등장하면 대체될 수 있는 거겠죠.

그래서 제가 곰곰이 고민해보니, 인간이 로봇보다 잘 하는 게 하나 있더라고요. 아니죠, 로봇은 못하고 인간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바로 ‘졌지만 잘 싸웠다.’ 마인드입니다. 합리와 효율의 관점에서 패배는 무가치합니다. 패배의 원인을 분석해 개선할 수는 있지만, 로봇은 패배 자체에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만약 패배 자체가 가치 있다고 판단했다면 로봇은 일부러 패배하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결판이 나기 전에 패배가 확실해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1등 못할 것이 뻔한 레이스에서도 최선을 다해 달립니다. 심지어 꼴등이 확실한 상황에서도 설렁설렁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합리와 효율을 넘어서는, 신념의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념은 자아와 감정을 포괄합니다. 비록 지더라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겠다는 각오, 그 신념이 로봇과 비교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듭니다.

설령 로봇보다 비효율적이더라도, 그래서 패배할 게 뻔하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AI, 로봇 시대를 사는 인간의 덕목이자 존재 이유가 될 것입니다. 기어코 이기겠다는 마음보다, 기어코 ‘졌지만 잘 싸우겠다’는 마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런 마음, 인간의 영역만큼은 로봇이 침범하지 못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