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아침에 뒤바뀐 상황

지난 2주 동안 세간을 뜨겁게 달군 인물 중 한 명으로 혜민 스님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11월 7일 채널 tvN의 <온앤오프>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혜민 스님은 특유의 온화하고 느긋한 어투로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건넸죠. 오프라인에서 여러 행사를 진행하고, 명상 어플을 개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었지만 예능 프로그램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든 인물이라 저도 관심을 갖고 시청했습니다.

그 이후의 여론과 혜민 스님에 대한 현각 스님의 비난, 혜민 스님의 거취까지 일련의 과정은 우리가 모두 익히 알고 있는 대로입니다. 과거 혜민 스님의 발언들까지 소환되어 비판과 비난의 불씨가 되었죠.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태도가 바뀐 현각 스님에게도 서로 다른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중입니다. 혜민 스님은 “이번 일로 상처받고 실망하신 모든 분들께 참회한다.”며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대중 선원으로 돌아가 수행 기도에 정진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미 여론을 통해 갑론을박이 진행 중인 사안들은 언급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무소유를 추구해야 할 스님이 현대적인 방식으로 가르침을 설파한다는 명분으로 경제적 이득을 추구해도 되는 것인지, 본인이 경제적으로 풍족한 상황에서 타인의 고난이나 어려움을 속단하며 교조적인 가르침을 설파해도 되는 것인지 등에 대한 이야기말이죠. 저는 종교인으로서의 역할이나 가르침을 설파하는 방식보다는 사람의 공감 능력과 인지 능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어졌습니다.

  •  정말 몰랐을까? 왜 몰랐을까?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는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출연을 결정한 혜민 스님은 이런 후폭풍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걸까? 제작진들이야 하는 일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혜민 스님 본인은 여론이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을까? 몰랐다면 왜 몰랐을까?

사실 저는 혜민 스님에 대해 큰 애정이나 신뢰도 없었고, 딱히 비난하거나 의심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냥 별 관심이 없었어요. 그의 책도 서점에서 훑어본 적은 있어도 구입해 제대로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감히 오만하게도, 일개 중생인 제게 혜민 스님의 말씀들이 너무나 뻔해 보였거든요. 그러나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혜민 스님의 말과 문장에 위로받고 힘을 내고 있으니 굳이 따지자면 긍정적인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저조차도 방송을 보면서 조금 의아해지더군요. 보기 싫다거나 화가 난다기보다도 ‘굳이 방송에 출연해서 저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 남산이 보이는 2층 집이라든가, 딱 봐도 허술한 방식으로 음원들을 편집해 명상용 음악을 만드는 모습이라든가, 금욕 가운데 물욕을 초월한 모습이 아니라 이미 풍족해서 굳이 물욕을 내지 않아도 될 법한 여러 모습들 말입니다. 오히려 약간 걱정스러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혜민 스님 본인에게 전혀 도움되지 않을 것만 같은 장면들이 연이어 등장했고, 아니나 다를까 그 결과는 지금과 같죠.

저는 최대한 혜민 스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노력했습니다. 남산이 보이는 정갈한 2층 집에서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몸단장을 하고 다락에서 경전을 읽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비록 속세에 있지만 수행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공유 오피스로 출근하는 모습, 명상 어플 개발의 대의명분을 되새기는 모습, 속세와 문명의 이기를 잘 활용하는 모습을 통해 현대인을 더욱 잘 이해하는 멘토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그래요, 그렇다 치더라도 말이죠, 혜민 스님은 어느 순간 공감 능력과 인지 능력의 어느 통로가 막혀버린 것이 분명하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  거울이 아니라 창을 볼 때

우리는 메시지보다 메신저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곤 합니다. 똑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무게와 의미가 달라지니까요. 그런데 이 말은 곧 메신저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똑같은 말이라도 명언이었던 것이 공허한 허장성세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즉, 말에 무게를 실을 수 있는 메신저라면 처세에 더욱 신경 써야 하는 셈입니다.

혜민 스님은 실로 오랜 기간 대중에게 위로와 가르침을 전하는 멘토 역할을 해왔습니다. 속세와 연을 끊다시피하고 수행 정진하며 무소유를 강조했던 故 법정 스님과는 상반되게 현대인의 생활 속에 친숙하게 다가왔습니다. 직설적이고 시원시원한 법륜 스님과도 그 결이 달라 차분하고 따듯하게 다독이는 방식으로 나름의 입지를 견고히 다져왔죠. 혜민 스님을 좋아하는 대중에게는 이제 그의 말들은 꽤 그럴듯한 무게감을 지녔을 겁니다. 뻔한 말이어도 더 새겨듣게 되고,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은 SNS 등을 통해 즉각적으로 혜민 스님에게 전달되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이 보는 자신의 모습’보다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을 만드는 데에 더 집중하게 된 건 아닐까. 그리하여 결국에는 타인도, 세상도 본인이 예상하는 대로 자신을 바라볼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 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도대체가 <온앤오프>에 출연해 그런 모습을 보여준 이유가 설명이 되질 않았습니다. 일부러 비난받으려고 나왔을 리는 없으니까요. 분명 본인은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더 이득(본인의 이미지, 명상 어플 홍보, 어느 쪽으로든)이라고 생각해서 출연했을 텐데, 주변에서 직언해주는 사람도 하나 없었던 걸까.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균형을 잃었을 때, 사람은 스스로를 오해하거나 좁은 시야로 속단하게 됩니다. 지나치게 자기비하를 하는 것도 균형을 잃은 상태이지만, 지나친 확신을 갖는 것도 균형을 잃은 상태라고 봐야겠죠. 일개 중생인 저는 혜민 스님의 큰 뜻은 다 알 수 없겠지만, 그를 반면교사 삼아 이런 교훈을 얻을 수는 있었습니다. 거울 보듯 세상을 바라보면 아무리 열심히 들여다봐도 결국 자기 자신밖에 보지 못합니다. 창을 내다보는 태도를 늘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세상이 바라보는 나를 부단히 쫓으면서요. 그리고 창을 바라봐도 자신의 모습이 설핏 비칩니다. 그 정도의 선명함과 투명함으로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