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심보다 두려운 것

14년 전, 밀양 표충사 계곡에서 익사할 뻔했던 경험 이후로 나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에 대한 공포증을 달고 살아왔다. 일단 바닥이 보이지 않으면 가슴이 갑갑해지고 숨이 턱 막힌다. 블루홀 프리다이빙 영상 같은 건 너무 괴로워서 고개를 돌려야 할 정도다. 수심이 얕다는 걸 알아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심해공포증과는 조금 다르다. 수영장처럼 바닥이 훤히 비치면 수심이 깊더라도 어떻게든 살아서 나올 수 있겠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드는데, 미지의 검푸른 색이 한없이 일렁이는 곳만은 자신이 없다.

우울증을 심하게 겪는 이들에게 우울이란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에 빠진 상태와 비슷하지 않을까. 실제 우울의 정도, 그 수심은 중요치 않다. 아주 얕아 발목만 겨우 잠기는 수심에서도 사람은 죽을 만큼 괴로울 수 있으니까.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  우울에 빠져 지내던 날들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무난하게 학창 시절을 건너온 나는 스물을 넘겨 뒤늦은 사춘기를 겪었다. 흔히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데, 나의 사춘기는 우울의 시기였다. 취직 잘 된다는 담임 선생님 말 따라 선택한 대학 전공은 장학금을 받아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내 시는 인정받지 못했고, 뭐든 다 해주고 싶은 연인이 있었으나 돈은 없었다. 자존감의 원천인 시와 사랑 모두에 무능한 인간이 되고 나니 존재는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푸른 봄’이라 ‘靑春’이랬던가. 나의 靑春은 푸른 멍자국이 가시지 않는 시절이었다.

한창 활기가 넘쳐야 할 나이 스물. 고시원 쪽방의 서향으로 난 창에서 드는 볕을 오래 쳐다보는 것이 나의 습관이었다. 새벽녘까지 술에 취한 대학생들의 고성방가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나오코가 와타나베에게 말해주던 숲속 우물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도 하루키의 소설들을 두통약 대신 꺼내 읽던 시기여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청승맞게 혼자서 자주 울었고, 모두 열광하는 일들에는 냉소적이었다. 1학기는 모범생처럼, 2학기는 도강생처럼 학교를 다니다가 때가 되어 도망치듯 입대했다.

제대 직후 운 좋게 대학문학상을 받으면서 인생이 달라지나 싶었다. 나는 고민 없이 국어국문학과로 전과를 했고, 그야말로 대학생다운 시절을 보냈다. 돈은 여전히 없었지만 글을 마음껏 쓸 수 있었고 1년에 한두 번씩은 공모전에서 당선되기도 했다. 우울이라는 늪, 우물, 그 수심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그런대로 바닥이 조금 보이는 것도 같았다. 어떻게든 살아낼 수 있겠다는 막연한 자신감을 로또 용지처럼 품고 살던 시절이었다.

  •  뭍에서 한 착각

다시 생각해봐도 ‘로또 용지 같은 자신감’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확하다. 로또라는 게 열에 아홉은 1등 당첨을 전제로 한 행복한 상상을 얻는 것이고, 그나마 열에 하나 정도가 5등 당첨으로 겨우 본전이나 치는 것이 아닌가. 그 시절 내가 품었던 자신감의 결말도 딱 그 정도였다. 다행스러운 건 열에 아홉이 아니라 열에 하나인 쪽이었다는 것, 그나마 본전은 치면서 글밥을 벌어먹는다는 것이다. 매거진에 시와 에세이를 기고하고 몇몇 기업에 사보 칼럼을 쓴다. 수험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첨삭하고, 라디오 다큐멘터리 대본을 쓰고, 주제넘게 창업 교육 교재 작업에도 참여했다. 2권의 책을 출간하고 제품 스토리텔링이나 카피를 쓰며 돈을 벌어왔다.

그렇게 서른을 넘겼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우울에 빠져 살던 스물부터 옆에 있어 주었던 여자와 결혼도 했다. 가끔 맥주를 마시며 지난날들을 회상할 때면, 아내는 내가 참 많이 밝고 유연해졌다고 말한다. 나도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고 있다. 이제 우울이라는 수심에 빠져 살지 않는다. 양지바른 뭍으로 기어이 올라와 축축해진 몸과 마음이 까슬까슬해질 때까지, 꼬박 5년은 더 걸린 것 같다. 우울에 절여진 듯 푸르뎅뎅하던 낯짝에도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드디어 우울에서 벗어났다는 착각을 할 때쯤, 나는 등 뒤로 누운 내 우울을 발견했다.

  •  우울은 존재의 증거

당연한 소리지만 나는 여전히 우울을 느낀다. 타일작이 되어버린 내 책, 가끔 본전치기도 안 되는 나의 글밥, 연로해가는 부모님, N번방 사건이나 아동 학대 같은 끔찍한 소식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상에 스며든 코로나 블루까지. 심지어 아주 사소한 것들도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장마가 시작되면 아내와 배드민턴을 칠 수 없다는 것이 우울하다. 매번 실패하는 다이어트도 다이어트지만, 다이어트랍시고 야식을 참아야 하는 순간은 또 얼마나 우울한가. 그러고 보면 나는 수시로 푸르뎅뎅한 우울의 색을 뒤집어쓴다.

그러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람은 우울을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을뿐더러 벗어나려 해서도 안 된다고. 우울은 벗어나야 할 수심이나 늪, 우물 따위라기보다는 환한 빛 앞에 섰을 때 등 뒤로 눕는 그림자 같은 것이라고. 빛을 앞에 두고도 뒤를 돌아보면 누구나 우울을 마주하게 되는 거라고 말이다. 결국 우울은, 그림자처럼 존재의 증거이기도 하다고.

우울을 완전히 부정적인 것, 반드시 벗어나야 하는 것으로 여기면 행복이나 평안은 결국 ‘우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투쟁의 결과’가 되어버린다. 행복을 강요받는 것만큼이나 나를 괴롭게 만든 건 우울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나에게 우울은 좋은 글감이며, 다른 사람의 우울을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의 통로다. 우울의 시간은 마음의 가장자리로 밀쳐두었던 것들을 살갑게 보듬는 시간이었고, 우울의 온도는 일출이나 정오의 볕이 아니라 일몰의 볕처럼 쓸쓸하지만 다정했다.

우울의 색이 가끔 블루홀처럼 검푸른 탓에 숨 막히는 날도 있었으나, 어떤 날에는 비 내린 뒤의 밤하늘 같아서 속에 묵은 한숨을 내뱉을 수도 있었다. 그런 날엔 가만가만 우울을 살피다가 옅은 별빛을 닮은 희망의 부스러기를 줍기도 했다. 앞으로도 나는 수시로 우울하겠지만 함부로 벗어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푸른 감정 속에서 나를 찬찬히 살필 것이다. 우울과 함께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