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신발 산업의 메카 부산. 부산진구 부암동 진양사거리에는 신발 동상이 있다. 전형적인 스니커즈 형태인데, 한 켤레는 신발끈이 야무지게 매듭지어져 있고 나머지 한 켤레는 끈을 묶기 전이다. 상황으로만 보면 끈을 마저 묶고 나설 참이거나, 잘 걷다가 끈이 풀어져 다시 묶어야 할 것만 같다. 일제강점기 고무신 공장에서 시작해 1980년대까지 한국 신발산업을 이끌었던 부산진구 일대를 상징하는 동상이다. 안타깝게도 ‘과거의 한때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는 건, 이미 그 시절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동상의 풀려 있는 신발끈을 묶을 수 없는 것처럼, 이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신발에서 made in Korea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나는 나름 신발에 애정이 깊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일상이던 중고교 시절,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유명 브랜드 신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곤 해도 10만원이 훌쩍 넘는 신발을 마음 편히 살 형편은 아니었는데, 아버지 덕에 관심만은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다.

태광실업에 근무하시던 아버지는 명절마다 신발 공장에서 샘플 나이키 신발을 몇 켤레씩 챙겨오셨다. 자세히 보면 좌우 디자인이 조금 다르거나, 밑창에 색이 덜 칠해져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신발 안쪽에는 SAMPLE – Not for Sale이라는 글자와 함께 made in Korea가 적혀 있었다. 어찌 보면 불완전한 제품, 불량품인 셈인데 그때의 나는 오히려 묘한 자부심을 느꼈다. 남들은 아무도 신지 않는 신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신발을 신는다는 생각에서였다. 다행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시절이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이 생기면서 신발에 대한 관심도 서서히 줄었다. 여전히 좋아하긴 하지만 예전처럼 브랜드별로 신제품을 리뷰하고 새롭게 적용된 기술을 공부하는 학구열은 없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소비를 추구하다보니 자연스레 개인의 취향이 조금씩 무뎌지는 탓도 있다. 그래도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통해 간간이 눈요기는 하는 편인데, 최근 빈티지 스니커즈를 수집하고 판매하는 ‘Kicks Montana’를 통해 새삼 1980년대 한국산 신발의 유려함에 감탄하며 지낸다.

합성 섬유나 고품질의 인조 가죽이 없던 시절, 그야말로 진짜 가죽만 사용해 수작업으로 만든 신발들. 3,40년의 세월에도 멀쩡한 자태를 보면 그 꼼꼼한 만듦새를 가늠해볼 수 있다. 특히 부산진구 일대를 비롯한 부산 신발 장인들의 손길이 닿았음을 떠올리면 더욱 그 의미가 각별해진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가격. 신발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며칠 전 봤던 1973년에 출시된 빈티지 나이키 트랙 슈즈는 300만원이었다. 웬만한 명품 브랜드 스니커즈가 100만원대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가격인데, 그마저도 부르는 게 값이라 저렴한 편이란다.

1980년대, 경제발전이라는 대의 아래 신발산업에 종사했던 이들의 삶에도 넉넉한 몫이 돌아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생활을 깎아 신발을 만든 그 시절 공원들의 급여를 생각해보면, 현재 빈티지 스니커즈의 높은 가격은 살아생전 인정받지 못하고 곤궁하게 살던 예술가의 유작이 고가에 팔리는 현상을 떠오르게 한다. 부산진구 신발 이야기를 담은 책 <고무신에서 나이키까지>에는 현대 한국 신발사와 더불어 신발산업을 이끌었던 공원들의 삶과 애환도 담겨 있다. 특히 동길산 시인의 시 <어떤 일>의 내용처럼 아버지 또는 어머니였을 공원들의 삶은 치열하고 팍팍했다.

 ‘신발회사에 취직했다/신발회사에서는/신발 만드는 게 밥이고 생활이고/…/때로는/생활에 무심한데도/신발이 다고/신발에 무심해서는 안 되고/너도 신발로 보이고/제길/나도 신발로 되어가고…
동길산 시인의 시 <어떤 일> 中

그러나 그 공원의 자식들은 아버지 또는 어머니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알지 못할 것이다. 내 아버지의 삶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가 모두 알지 못하듯이. 세상에는 ‘어떤 일’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는 것 같다. 부모의 애환을 잘 모르고도 나는 대형견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때로는 투견처럼 부모에게 짖고, 부모를 물고 또 울기도 했다. 이제 겨우 사람이 되었나 싶은데, 이미 부모는 훌쩍 늙어 있다.

기술적으로도 뛰어나지 않고, 잘 보존되었다고 해도 결국 낡은 것일뿐인 빈티지 스니커즈가 40년 후에야 고평가받는 모습을 보면 문득 못난 자식의 뒤늦은 효심이 떠오른다. 그 시절엔 모르다가 40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세월이 지나서야 부모의 사랑과 정성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지금 몇백만 원을 호가하는 빈티지 스니커즈를 기꺼이 사들이는 마음으로,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기꺼이 되갚으려는 자식은 몇이나 될까. 나 또한 경제적인 이유를 들먹이며 청산을 뒤로 미루는 못난 자식일 뿐이지만.

빈티지 스니커즈와 부모의 사랑의 비유법의 핵심은 가치있는 것을 당대에 가치있게 만드는 일(또는 그 가치를 알아보는 일)의 중요성이다. 단순히 비즈니스의 영역으로만 말하기엔 너무나 중요한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누구나 고흐의 유작을 칭송하고 지금은 없는 존재들을 레전드라 부르지만, 누구도 현생이 아닌 사후에 인정받으려 애쓰지는 않는다. 다음 생의 일은 다음 생에 맡기고, 미래의 일은 미래에 맡기자. 지금도 가치있고 미래에 더 많은 가치를 얻는다면 그거야말로 금상첨화 아닌가.  중요한 건 가치있는 무엇인가를 바로 지금 가치있게 만드는 일이다. 하나의 삶이건, 하나의 비즈니건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