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8월, 러시아는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다. 외국에서 들여 온 차관에 대한 상환을 일시 유예한다는 발표가 나자 심각한 후폭풍이 몰아쳤다.

 

당장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물가는 폭등했다.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 이탈리아 메를로니, 터키 베스텔, 독일의 보시ㆍ지멘스, 일본의 파나소닉, 도시바, 도요타 등 러시아에 있던 글로벌 기업들은 서둘러 이곳을 떠났다.

 

그런데 한국기업들은 그 자리를 지켰다. 미래를 내다 본 통찰, 러시아에 대한 의리 같은 큰 뜻은 없었을 것이다. 기업이 그런 것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니까.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기아차 등 기업들은 오히려 투자를 늘리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정도(定都) 30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도시 보수공사에도 가장 큰 후원을 했고, 현대차는 페테르부르크 근교에 외국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자동차 생산라인 전 공정을 갖춘 공장을 건설했다.

 

LG전자도 사업 규모 축소나 본국 철수 없이 해오던 그대로 러시아 바이어들과의 거래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보편적 진리가 말해주듯 한국기업의 선택은 러시아인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준 것 같다. 이후 러시아 국민들은 한국 제품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한국 기업들은 러시아에서 매년 눈부신 성과를 기록중이다.

 

삼성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러시아에서 8년 연속으로 ‘가장 사랑받는 글로벌 브랜드’에 선정됐다.

 

2018년 기준 선호도 조사에서 18.3%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2위인 아디다스(11.1%)를 비교적 큰 차이로 제쳤다. 나이키(9.6%)와 애플(9.6%), 소니(7.2%) 등이 ‘톱5’에 들었고, 코카콜라(6위)와 스페인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 자라(ZARA·9위), 러시아의 패션·액세서리 브랜드 O’STIN(10위) 등을 모두 앞지르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LG전자는 세탁기, 냉장고 부문에서 매출액 기준 현지 시장점유율 1, 2위를 다투고 있다.

 

2019년 현대차는 현지 토종 브랜드 아브토바즈 라다를 제치고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러시아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약 25% 정도이다. 양사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8% 대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준이다.

 

식음료는 더욱 압도적인 수준이다. 롯데칠성음료 밀키스, 레쓰비는 러시아 탄산음료와 캔커피 시장에서 90%의 점유율을 수년 째 지켜가고 있다.

 

팔도 도시락 사발면은 러시아 국민 라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8년 판매량이 3억 3000개라고 하니 러시아 국민 1억 5천 명이 1년에 최소 2개씩은 먹은 셈이다. 용기면 기준으로 러시아 시장 점유율은 약 60%다.

 

현재 미얀마에서는 군부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위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군부세력은 시민들에게 실탄사격을 하며 진압을 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시위는 지난 88년, 2007년에도 있었는데,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스마트폰 덕분에 현지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접하게 되자 지난 80년 5월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당시 국내 모든 언론이 광주의 진실을 외면한 상황에서, 독일 기자를 비롯한 해외의 뜨거운 관심과 응원이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게 해주었다. 앞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가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해외의 원조덕분이었다.

 

지금 미얀마 국민들에게는 그들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힘센 형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역할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발전된 민주주의를 선보이고 있고, 군부독재를 이겨낸 경험도 있고, 세계 경제 6~7위의 대국이기도 하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대통령과 국회, 시민단체에서 규탄성명을 내는 것이 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행동이다. 시민 차원에서는 미얀마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고, 시민단체를 통해 후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미얀마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아 목숨이 위태로운 경우가 있다면, 현지 대사관을 통해서 망명을 받아주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의 공감과 응원, 관심은 미얀마 국민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될 것이고, 힘과 위로가 될 것이다.

 

그 효과를 언급하는 것은 너무 유치하지만, ‘왜 우리 살기도 힘든데 다른 나라를 챙겨야 하냐’라고 묻는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말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한 나라가 다른 국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전쟁 당시 가장 강대국이었던 미국이 우리나라를 도왔기 때문에 7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국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우방이다.

 

지금의 미얀마는 과거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들이 가장 힘들 때 친구가 되어준다면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위상은 높아질 것이고, 이는 국익으로 이어진다.

 

70년 전에는 수많은 미국 군인들이 이땅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가 미얀마를 응원함으로써 치를 대가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