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4 / 2018.2.10 USB로 연결하는 일회용 카메라

가끔 일회용 카메라를 구입한다. 디지털카메라, 수동과 자동 필름 카메라 모두 가지고 있지만 일회용 카메라 몇 개를 제습함에 쟁여놓는다. 딱히 희귀하거나 비싼 걸 어렵게 구하고 그런 건 아니다. 코닥이나 후지의 기본 일회용 카메라나 일포드 흑백을 주로 사는데 1만 원 초반대다. 여행이나 나들이 갈 때 한 번씩 챙겨간다. 사진밖에 남는 게 없다는 말들 하지만 촬영보다 추억이 생성되는 순간 그 자체에 집중하고 싶을 때가 있어서.

필름 카메라 감성을 좋아하는데, 수동 필름 카메라는 노출계를 예민하게 보는 동시에 초점까지 맞춰야 한다. 그러다 보면 기계에 더 많이 신경 쓰게 된다. 디지털카메라는 아무래도 컷 수가 많아져서, 후에 남길 사진을 고르며 삭제하는 파일이 많아진다. 모든 순간을 모을 수는 없지만 그렇게 휴지통으로 사라지는 흔적들이 못내 아쉬워 서운할 때가 있다. 자동 필름 카메라가 있다지만 필름을 갈아 끼울 수 있으니 신중함이 덜하다. 세 경우 모두 평소 기준은 아니다. 수동 필카는 까다로운 만큼 재미있고, 후작업이 가능한 디카는 실패하지 않는 사진을 찍게 해 준다. 자동 필카는 가볍게 스트릿 스냅 찍기 좋다. 이에 반해 일회용 카메라는 장점이 딱히 없다. 고작 1만 원 돈에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 이외엔.

그런데 나는 도리어 특별한 날에만 일회용 카메라를 찾는다. 소중한 사람, 설레는 장소, 흔치 않은 경험, 두 번 없을 순간, 가끔은 이유 없이 끌릴 때도 있지만. 일회용 카메라는 한 번 밖에 쓸 수 없어서 그렇다. 오직 그때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제한된 컷 수를 소진하면 분해될 운명을 앞둔다. 나는 하루 딱 한 대씩만 사용하기 때문에 꼭 찍어야 할 찰나들을 포착하려 벌어지는 현실 순간에 집중한다. 그러다 놓치는 어떤 순간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때론 놓친 순간들이 더 깊게 기억에 남기도 한다. 반드시 필름에 새겨야 할 순간을 고르고 고르다 보면 지금 있는 장소, 함께 있는 사람, 느껴지는 기분에 온 몸이 반응한다. 마침내 어떤 장면에서 확신이 들면 겨우 셔터를 누른다. 옥석처럼 가려낸 순간만이 필름에 아로 새겨진다. 일회용 카메라는 그런 식으로 순간마다 집중하게 만든다. 순수하게 순간 만을 관찰하고 찾아내게 만든다. 순도 높은 순간에 순수하게 순응하고 싶어지는 어떤 날이면 일회용 카메라를 찾는 이유다.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일회용 카메라 바디를 온전히 보관하고 싶은 맘이다. 어떤 하루를 함께한 오직 하나의 바디에 그날의 날짜를 적은 견출지를 붙여 보관하는 것이다. 사실 사진관에 부탁하면 분해한 뒤 바디를 다시 돌려받을 수 있어 가끔 그렇게 하고 있지만, 뜯지 않은 채로 간직하고 싶은 바람도 한편에 있어서.

그렇게 생각해 본 것이 USB 같은 포트 연결로 사진을 옮길 수 있는 일회용 카메라다. 기술적으로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아이디어다. PC와 다이렉트로 파일을 옮길 수 있다면 실상 디지털카메라인 것이라서. 그럼 메모리를 별도 삽일 할 수 없고 딱 24장 사진만 찍을 수 있는 내장 메모리를 탑재한 후, 포맷이 불가능하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대안도 생각했지만 세상 허튼짓임은 매한가지. 한정성이라는 일회용의 매력은 가질 수 있어도 필름 카메라만의 질감은 포기해야 한다. 다시 그럼, 아예 내장 필터로 필카 감성을 입히고 제한된 메모리에 포맷 불가로 설정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해괴한 짓이다. 감성적인 부분도 기술적 효용도 모두 버리는 결과니까.

일회용 카메라만의 매력은 좋아하지만 인화 과정 기다리는 게 귀찮아 생긴 망상이겠지. 소위 ‘갬성’ 놀이는 하고 싶은데 몸은 편한 기술에 길들여져 있으니까. 하긴, 분해했다 재조립한 바디래도 무슨 상관인가? 순간에 몰입하고 싶어 일회용 카메라를 쓴다면서 결국 물건 자체의 수집에 관심을 둔 꼴 밖에 안된다. 카메라로 밥 벌어먹는 사람이 뇌에서 나왔다기엔 기가 찬 생각이지. 헛웃음이나 한 번 치고, 오랜만에 쇼핑몰에 들어가 일회용 카메라 네댓 개 주문했다. 그러다 집에서 필름 인화를 할 수 있는 기계를 발견하고 3초의 민망한 망설임 후 같이 구매.

결국, 물건 수집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