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5 / 2018.2.10 디지털 프레임에 담는 아날로그 – 세로 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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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4’와 같은 날 메모다. 어지간히 아날로그 감성에 집착했나 보다. 디지털은 또 포기 못하고. 무슨 의중으로 적은 메모인지 기억이 가물하다. USB 일회용 카메라와 같은 날 기록이니 비슷한 생각이었겠지. 구태여 언급 안 해도 되겠지만, 모든 메모를 한 번씩 짚고 넘어려는지라 대략이나마 유추해본다.

오로지 세로 프레임으로만 촬영할 수 있는 필름 카메라를 떠올렸던 모양이다. 모바일 영상 시대에 스마트폰을 뉘이지 않아도 볼 수 있는 세로 영상 콘텐츠가 많아졌고, 나는 이 프레임 비율이 디지털 시대에 나타난 특징이라 여겼다. 근데, 프레임 자체는 늘 있던 것이다. 세로 비율이 어디 새 시대의 발견이던가? 원래부터 존재했고 그 프레임이 스마트폰에 적합하여 이를 활용한 다양한 연출 기법들이 연구된 것일 뿐. 세로 카메라 따위가 따로 필요할 일 없다. 카메라를 세로로 돌리면 되는데.  필카일 이유는 더더욱 없고.

프레임은 한정된 틀이라서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세로든 가로든, 담고자 하는 것, 담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세로 프레임은 그저 스타일의 하나일 뿐, 그것 자체로 어떤 목적이 되긴 어렵다. 프레임으로 보는 세상은 파편이니 프레임 너머에서 테두리 없는 세상을 목도해야 한다. 프레임은 선택이다. 전체의 한 부분을 보여주는 표현 수단이다. 프레임의 형태와 크기를 우선하면 식견은 더 좁아진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다른 방식이지만 같은 프레임을 가질 수 있다. 프레임을 먼저 정해두는 건 한계라는 칼을 제 머리에 차는 일이다. 주제의 목적을 두고 표현을 물색 중 마땅한 프레임을 찾는 것이 맞는 단계다.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과 세상을 통해 프레임을 선택하는 건 다른 결과를 불러오니까.

시계는 한정되어 있고 프레임은 더 좁다. 그래서 눈이 먼저다. 눈에 담는 세상과 이를 해석하는 생각이 선행이다. 카메라는 넓은 세상을 좁게 담는다. 제 아무리 초광각렌즈를 물려도 연속되는 모든 세상을 끊임없이 담을 수는 없다. 카메라 노동자인 나는 광범위를 범위에 담는 일을 한다. 광범위를 해석하고 나름의 철학으로 받아들인 뒤 적합한 부분을 찾아 잘라내어 보여주는 것이다. 세로 프레임이 저의에 적합하면 선택할 수 있다. 틀을 먼저 정해두면 저의의 정의가 사라진다.

때문에, 이번 메모는 순서부터 잘못된 생각을 끄적인 것에 미치고 만다. 나는 이 날 대체 무엇에 꽂혔는지, 실체도 없는 아이디어만 두 개를 적어놨네.

하긴, 아이디어 조각들에 실체를 가늠할 필요까지 없긴 하다. 떠돌이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건져내어 막막한 구체화를 고민하는 것이니까. 구상에서부터 기준을 두어 쳐내기 시작하면 적어둘 생각이란 거의 사라진다. 쓸모없는 메모들이 모여 꽤 괜찮은 다른 아이디어로 성장할지 모른다. 아예 버려지는 메모가 부지기수라도 그걸 생각해보았던 과정이 다음 생각의 양분이 된다. 마침 이번 메모를 통해 내 직업의 우선 윤리와 목적에 대해 고찰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프레임이란 것에 갇힐 수밖에 없는 결과를 만드는 사람이며 그럼에도 프레임 너머 진실을 늘 염두하고 작업할 것이다. 또 별생각 없이 생각을 적어나갈 테다. 앞으로도 많이 나올 텐데. 당장엔 쓸모없는 이런 메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