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보내는 메시지: 잘 살지?

 

전에 어떤 사람아마 김광석을 잘 모르는 학생이이 네이버에 김광석이 왜 유명한지에 대한 질문을 올렸다.
나 역시 그 이유를 궁금해하며 스크롤을 내린 순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이 사람 노래가 내 마음을 읽습니다.”더 이상의 말이 필요하지도, 더 이상의 말을 붙일 수도 없는 답변이다. 우리는 김광석의 노래에 울고 또 웃는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내가 군대에 갈 때쯤엔 통일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어린 시절의 일이다. 추석에 사촌 형이 군대에 간다며 머리를 빡빡 밀고는 친척들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기타 반주에 웬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인지도 몰랐지만 형이 불렀던 잔잔한 멜로디는 이후에도 문득문득 떠올라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했다.

 

김광석은 그런 가수다. 노래로 기억되는 가수.
그를 생각하면 으레 떠오르는 세 가지 단어가 있다.첫 번째는 ‘그리움’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김광석을 그리워하며 그를 듣는다. 동료와 후배 가수들은 ‘김광석 다시부르기’를 통해 그를 우리 곁으로 데려온다. 그에 대한 그리움은 해가 갈수록 더 깊어져 간다. 다시 만날 수 없기에 더 그리운 이름 김광석.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인생의 길목마다 김광석의 노래가 있었다고. 그랬기에 버텨낼 수 있었다고.

두 번째는 ‘위로’다.
2016년이 작년이 되어 버렸다. 2016년 KBS는 방송 <감성과학프로젝트 – 환생>을 통해 김광석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왔다. 과학기술을 통해 재현된 그의 목소리는 그가 떠난 지 20년 만에 우리를 또 한 번 위로했다.유난히 힘들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던 2016년이었다. 김광석은 한 청년의 꿈이 스러졌던 구의역 사고 현장에서, 여전히 온 국민이 슬퍼하는 진도 팽목항에서 “지금 이 슬픔을 기억하고 있겠다”며 우리를 위로했다. 김광석이 아직 살아있었다면 어떤 마음으로, 어떤 목소리로 노래했을까. 그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아프고 지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노래했을 것이다.

세 번째는 ‘공감’이다.
김광석의 노래를 듣다 보면, 마치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사실 김광석은 공감을 가장 큰 가치로 두었다고 한다. 그는 조금 더 된장국 냄새가 나는 노래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노래는 그저 듣기 좋은 사랑 노래뿐만이 아닌 일상 깊숙한 곳에서도 된장국 냄새를 풍기고 있다.
부르기도 쉽다. 나는 지독하게 노래를 못하는 음치지만 어째 김광석의 노래는 가끔 혼자 코인노래방에 가서 몇 곡을 부르고 오곤 한다. 남아있는 라이브 영상처럼 내 멋대로 기교를 넣고 음을 바꾸고 박자를 바꾸다 보면, ‘김광석 다시부르기’는 멀지 않은 이야기가 된다.

좌절했을 때는 <일어나>,
짝사랑할 때는 <사랑했지만>,
이별에 아파할 때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애써 잊으려 할 때는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여행을 떠날 때는 <바람이 불어 오는 곳>,
그리고 지금은 내 곁에서 천진하게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부르고 있는 김광석.

훗날 나는 아내와 함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듣겠지.

 

그의 환한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오랜만에 만난 형이 “잘 살지?”라며 인사를 건네는 것만 같다.
알면 알수록 더 보고싶고 마음이 아린 김광석. 첼로를 하고 싶었으나 손이 작아 바이올린을 배웠던 김광석. 영원한 이등병 김광석.신년 목표는 대구의 김광석 거리에 다녀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워하면 오직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길이 만들어졌을까? 가서 그의 향기에 홀딱 취해 원없이 노래를 듣고 싶다.김광석이 떠난 1월 6일, 한 해가 가면 한 해가 오듯 그에 대한 그리움이 한 층 더 쌓였다.
나는 김광석과 같은 시대를 살지 못했음에도 김광석이 그립다.

 

글. 박장식. 서른즈음은 한참 남은 소년
메인 사진. Craig Ro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