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남자가 있다. 여자가 남자에게 섭섭한 것을 이야기한다. 남자는 여자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변명을 한다. 여자는 또 섭섭해서 덧붙인다. 남자는 여자의 그 말이 그냥 짜증스럽다. 남자는 여자의 말이 끝난 뒤 ‘내가 대체 어디까지 맞춰야 돼?’라며 짜증을 낸다. 여자는 남자에게 ‘꼭 그렇게 말해야 돼?’라고 말 한다. 남자는 ‘내가 뭘 어쨌는데?’라 말 한다. 도돌이표다. 여자는 섭섭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자괴감에 빠지며 섭섭했던 것들 이상으로 화가 난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남자가 잘못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저런 식의 다툼의 주체가 남자든 여자든 관계 없이 쉽게 일어나는 장면이다. 만약 저기서 남자가 여자의 말을 천천히 듣고, 여자의 입장에 관해 생각한 뒤 그에 따라 결론을 도출해냈다면, 짜증 대신에 좋은 대답이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언뜻 보기에는 오롯이 남자가 잘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남자의 잘못이 100%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여자와 남자가 평소에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며 양보하고 잘못한 것에 대해 먼저 인정할 줄 알았다면, 애초에 이런 다툼이 시작되기는 했을까.

아마도 필자를 포함하여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의 대부분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고, 이미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크거나 작은 섭섭함이나 다툼이 생기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양보와 인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양보와 인정이라는 것이 부족한 데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만한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유가 시간적인 여유를 말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다. 마음의 여유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각만 달리 하면 된다.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사소한 일에 욕심이 없다. 이를테면 지하철에 자리가 났을 때, 달려가서 사람들을 밀어낸 뒤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생각 대신 ‘가까운 데 자리 나면 앉지 뭐’하는 생각이 그렇다.

인간사의 거의 모든 문제가, 양보나 인정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면 양보하거나 인정하는 것은 별일이 아닌데 사람들은 할 생각이 없는 건지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사실은 하기 싫은 건지 잘 하지 않는다.

세상한국에 국한 되겠지만의 거의 모든 상황에 양보와 인정을 생각하면, 사실 분쟁이 일어날 일이 없다. 커플 간의 다툼에도 양보가 우선이 되면, 섭섭할 일도 거의 없다. 나의 섭섭함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자신에게 대입해서 보면, 사실 대부분이 그럴 수도 있는 일들이다. 커플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회사 등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기 전에, 자신 위주로 생각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다스 베이더에게 여유가 있었다면, 잘 사는 아들에게 그런 충격은 주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C) JD Hancock in Flickr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가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했던 그 유명한 ‘사실은 내가 네 애비다’라는 대사가 나온 이유도 마찬가지다. 굳이 그 충격적인 말을 내뱉게 된 것도 양보와 인정이 부족했던 탓임에 틀림없다. 다스 베이더가 우주 정복이 아니라 강한 제다이로서 만족했다면, 루크 만의 인생을 인정하고 내버려 뒀다면, 부자가 서로의 팔을 광선검으로 내리치는 비극 따위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여기서 결국 ‘내가 잘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인정의 과정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인정으로 가는 과정에는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 소위 ‘내로남불’, 즉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같은 생각을 지양한 인정하는 자세다. 사실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지적하거나, 섭섭함을 말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이미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가 되어있다면 아마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아마 또 많은 이들은 ‘당연한 거 아냐?’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당연한 것들이 작용하지 않아서 계속 불편한 것들이 생기는 것이다. 알고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쁘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아직 우리는 모두 나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양보와 인정을 늘 마음속에 지니고 습관처럼 떠올리면, 정말로 원하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꼭 상대방에게 물질적인 혜택을 베풀고, 좋은 말만 하는 것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 많다. 그러나 최소한의 상황에서라도 양보와 인정을 습관화 한다면,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팀이 하루를 다시 살면서 깨닫듯이 별 것 아닌 순간에도 아름답게 보이고, 누군가처럼 자괴감에 빠질 일도 사라지 않을까. 좋은 사람, 좋은 인생을 사는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글. 성문경. 좋은사람을 위해 노력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