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 명 !

문과생이 말하는 명왕성 이야기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과학 시간에 태양계 행성은 아홉 개라고 배웠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 하지만 4학년이 시작됐을 때부터는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 지위를 박탈당해 ‘수금지화목토천해’ 여덟 행성만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어린 마음에 외워야 할 것이 줄었다는 생각에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수금지화목토천해’는 어쩐지 어색해서, 행성을 외울 때는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을 읊조리곤 했다. 그렇게 명왕성은 내 기억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잊고 살았다. 사실 알지도 못했다. 명왕성은 인류가 도달하지 못했던 천체였으니까.
명왕성은 그저 크기도 작고 공전궤도도 기울어진-행성도 아닌-왜소행성이었으니까.그러나 명왕성은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왜? 알지도 못하니까. 어린 시절에 나는 망원경도 없이 태양계의 끝에 있는 명왕성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어떻게 생겼을지, 누군가 살고 있을지를 궁금해하며 상상력을 키워왔다.

 

2015년, 오랜만에 명왕성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되던 2006년 발사된 탐사선 뉴 호라이즌스가 명왕성에 근접한다는 것이었다. 9년을 명왕성의 사진을 찍기 위해 날아갔다는 뉴 호라이즌스는 내게 천문학적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그렇게 촬영된 명왕성의 사진을 보고서, 인류의 과학 기술에 대한 경이와 감격 뒤에 측은함이 따라왔다.
인류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명왕성은, 인류에 의해 행성에서 ‘쫓겨난’ 명왕성은, 외롭고 차가운 행성으로 알고 있었던 명왕성은, 심지어 이름마저 어둠의 왕인 명왕성은, 하트를 품고 있었다.

 

우리는 약자에게 측은함을 느끼고, 어쩔 때는 미안한 마음까지 들곤 한다. 명왕성은 앞에 있는 행성들처럼 멋진 색을 띠지도 않고, 화려한 고리 또한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가장 작은 명왕성은 더 애틋하게 다가왔다.

뉴 호라이즌스는 말 그대로 명왕성을 스쳐지나갔지만, 명왕성은 마치 먼 여행을 격려하는 듯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명왕성을 발견한 클라이드 톰보는 1997년 사망했다. 그리고 뉴 호라이즌스에는 그의 유골이 실려 있다.
그 어떤 인류보다 먼 여행을 떠난 톰보는 명왕성을 보고 아마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여러 기준 탓에, 명왕성이 다시 행성의 지위를 찾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명왕성은 계속 달린다. 248년을 쉬지 않고 달려야 그릴 수 있는 궤도를 하나의 행성이기 위해 언제까지나 달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명왕성에게 미안하다. 수억 년을 외롭게 공전하던 명왕성을 인류가 만든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고 태양계 행성을 외울 때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명.”

글. 박장식. 떨어질 수 없는, 멀어질 수 없는 중력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