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을 갔다. 생경한 기분이다. 군복이 주는 기분은 둘째치고,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져있지 않은 탓이다. 가끔 통신망 오류가 나서 스마트폰 상태창에 ‘서비스 안 됨’이라고 뜰 때 느끼는 기분과 같다. 예비군에서 만큼은  ‘서비스 안 됨’상태다.

우리는 언제 스마트폰을 꺼둘까? 5초만 생각해보면 질문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끄지 않는다. 다만 충전할 뿐이다. 배터리가 30%이하로 내려가면 불안감을 느낀다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배터리가 몇 %이상을 유지하는지는 이슈가 될 수 있지만, 스마트폰을 끄는 것 자체는 이슈가 되지 못한다. 그럴 일은 없기 때문이다.

‘서비스 안 됨’의 공포는 이렇게 일상에 스며들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늘 연결된 시대에 살게 됐을까. 그런데 정말 ‘서비스 안 됨’은 연결의 단절을 의미하는 게 맞을까? 연결의 단절이 아니라 어쩌면 내적인 불안감일지도 모르겠다. 연결과 단절에 대한 물음들이 두서없이 떠오르는 지금도 스마트폰의 알림이 온 건 아닌지 시선이 두어 번 정도 스마트폰으로 향한다.

공포는 이렇게 완성된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시대에 나는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

아이들에게도 단절의 공포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캐리언니가 떠나갔다.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을 즐겨보던 아이들은 캐리언니와의 단절을 믿기가 어렵다.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부모들은 이 일을 어떻게 아이에게 설명할지 가닥이 잡히지 않는다. 캐리언니가 처음 나왔을 때는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지 않을까 노심초사였지만 누구보다 아이들과 교감을 잘하는 캐리언니에게 아이를 믿고 맡겼다. 그런데 이제 막상 떠나간다니. 이 단절은 또한 급작스러울 뿐이다. 2대 캐리언니는 아이들이 가진 단절의 공포를 잠재워줄까.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세상이 늘 변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없다. 그리고 그 변화를 완전히 거스르고 살 수도, 살아서도 안 되는 건 동감이 된다. 유수의 글로벌 기업에서 재직하다가 ‘변화경영연구소’를 만들어 ‘자기경영’이라는 화두를 던졌었던 공병호 대표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이렇게 말했다.

“변화는 당신의 적이 아니다. 두려운 것일수록 친구가 되면 힘이 된다. 변화를 이해하고 동지로 삼아라. 강력한 기술력의 충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것들이 당신의 일을 상당량 대신해줄 것이다. 당신이 가장 하기 싫어하던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사무적인 모든 일을 대신할 것이다. 만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모두 이런 것들이라면 당신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

맞다. 충분히 일리있는 말이다. 세상에 끌려가지 말고 변화를 잘 활용해서 우리가 세상을 이끌어가야한다. 그런데 가끔은 어질어질하다. 변화가 있어왔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변화의 세계는 인류 최고의 속도가 아닐까. 사실 하나하나 따라갈 수가 없다. 기존에 몇 세기를 동안 세상을 호령하며 융성했던 산업군 자체가 몰락하기도 하고, 공교육의 현장이 기술변화로 뒤집어지기도 한다. 향후 몇 년 뒤에는 MOOC가 공교육을 침략할지도 모른다. 기술에 아무리 친화적인 젊은 층도 한 번 꼬리를 놓치면 변화는 이미 두 세 발자국 앞서 있다. 순간적으로 변화를 놓쳐버리고서 시대착오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에 미치니 지하철에서 나를 밀치고 가던 노인이 생각난다. 그 노인은 예비군의 나와 마찬가지로 머리에 군모를 쓰고 있었고 하얀색 정장을 차려입었다.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내가 문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내 어깨를 강하게 밀치면서 앞서가던 노인. 이런 에피소드는 모아보면 방대한 기록물이 될 것 같다. 변화와 관련해서 생각해보면 노인들이 단순히 대중교통 예절을 몰라서 그런 거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이듦을 배우다>는 책은 노인이 이 세상에 적응하는데 겪는 어려움을 보여준다. 책에는 80세 이상의 여성이 신호등이 초록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뀔 동안에 횡단보도의 절반밖에 건너지 못했다는 연구를 인용한다. 이 책을 접하고 나니, 노인들이 세상에 변화에 적응하는 일은 버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젊은 세대가 이용하는 다양한 웹과 앱 서비스의 몇 프로를 사용하고 있을까? 세상은 노인을 위해 ‘서비스 됨’상태일까?

한 번은 음악을 들으며 스마트폰을 보면서 길을 걷다가 누군가 불쑥 말을 건네는 통에 깜짝 놀랐던 일이 있다. 다짜고짜 ‘이거 어떻게 하냐’며 어떤 어플을 켜서 보여주던 노인 분이었다. ‘서비스 안 됨’의 공포는 예비군이나 어린아이, 그리고 노인 모두에게 찾아온다. 그나마 변화를 이해하고 따라가는 젊은 세대가 변화를 따라가기 어려운 노인 세대를 이해해보면 어떨까. 이 세상이 그들에게 서비스 되고있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