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있었다. 농부에겐 황금으로 된 알을 낳는 거위가 있었다. 거위는 하루에 한 개의 황금알을 낳았는데, 이것은 농부의 생계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어느 날 농부는 생각했다. 하루에 한 개 이상의 황금알을 얻을 순 없을까, 지금보다 더 큰 부를 누릴 순 없을까 하는 자연스러운 생각을 했다. 그는 알을 낳는 거위의 뱃속에 무수히 많은 황금알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 많은 황금알을 얻기 위해 거위의 배를 칼로 짼다. 그러나 거위의 뱃속은 다른 평범한 거위들의 뱃속과 다를 게 없었고 피를 많이 흘린 거위는 죽고 만다. 농부는 더 이상 하나의 황금알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원칙(principle)이라는 단어가 있다. 굳건한 하나의 명제로 작용해 지켜지고 또 이행되는 게 바로 원칙인데, 원칙은 규칙과 엄연히 다르다. 규칙은 약속이다. 다수의 동의에 기반해 어떤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정해 놓은 약속이 규칙인 반면 원칙은 다수의 동의에 기반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규칙은 집단별로, 조직별로, 문화별로, 국가별로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만 작용하는 명제로서의 원칙은 어디에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가령, 꾸준한 노력은 성취를 낳는다는 하나의 원칙은 이 세상에 있는 어느 사람에게나 작용한다(그것이 불평등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반면 교통 안전을 위한 규칙은 국가별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운전석은 좌측에 있지만 미국의 운전석은 우측에 있다.

거위를 죽인 농부는 대가(기다림) 없인 얻는 것도 없다는 하나의 원칙을 어겼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하루에 한 개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원하는 결과를 지속적으로 얻는 상태, 즉 성공을 상징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우화를 통해 원칙을 거스르는 생각과 행동은 성공을 나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요행을 바라지 말자. 행운도 바라지 말자. 내가 노력한 만큼만 얻겠다는 배짱이 마인드를 가지자. 사실 운이라는 것도 원칙의 작용이다. 1을 넣으면 1.5가 나오는 원칙도 당연히 있는 법이다. 그게 인생 사는 맛이니까.

“성공을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우리의 통제를 받지만, 성공의 결과는 원칙의 통제를 받는다.”라는 격언이 있다. 이 말을 다섯 번 읽어 보자. 마치 하나의 주문 같다. 원칙이라는 거대한 틀을 채우기 위해 우리의 노력을 더하는 하나의 그림이 그려진다. 운명론이 하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우리의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게 아니라, 수천 수만 가지가 넘는 다양한 노력이 각자 자신의 색깔로 원칙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를 움직인다는 뜻이다.

기억하자.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에 영향을 주지만 그 존재는 느껴지지 않는, 마치 공기와 같은 원칙이 있다는 것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픽션이 아니라 원칙을 의식하는 우리의 꾸준한 노력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