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장애’라는 표현이 언제부턴가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도대체 이건 어디서 나오게 됐을까?

나이가 들면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진로 문제가 그렇다.

진로와 관련한 선택은 너무 중요한 사안이라서 많이 물어보고 짚어볼 문제다. 꼼꼼하게 적성과 업계의 분위기, 커리어를 따져 볼 일이다.  하지만 결정장애는 진로 결정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일상의 작은 결정에서도 발생한다. A메뉴가 좋은지 B메뉴가 좋은지를 놓고도 고민하고, 주말에 뭐 하고 놀지를 선택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놀 때도, 먹을 때도, 책을 고를 때도 뭘 선택해야 할 지 모르다보니 아예 콕 짚어서 골라주는 서비스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메뉴를 골라주고, 놀러갈 곳을 골라주고, 놀러가서는 무엇을 할 지 골라주고, 읽을 책을 골라주기도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몰라도, 선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보편적인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다.

사용하는 언어가 그 사람의 태도에 영향을 준다고 한 연구 기사를 보았다.  연구의 요지는 영어를 쓰면 좀 더 외향적인 사람으로, 불어를 쓰면 좀 더 지적인 사람이 된 것 같은 인식이 든다는 것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각 언어 문화권에 대한 특정한 인식을 갖게 하며, 그 언어를 쓸 때 그 문화권의 특성을 자신의 정체성에 투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흔히 알려져 있듯이 영어권에서는 친화성, 성취, 자기주장 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영어로 얘기할 때는 그런 가치를 자신의 정체성에 부여하게 되고 행동할 때도 반영된다는 것이다. 

일본인에게는 “스미마셍”이 피부처럼 일상과 붙어있는 표현이다. 또,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일본에서는 결례이기 때문에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시는게 어떠실지요?”와 같이 빙빙 돌려 묻는 언어 습관이 있다. 그 언어가 역시 매사에 조심스럽고 눈치를 살피는 일본인들의 태도에 배어있는게 아닐까?

언어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다. 운이 좋아서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경험을 갖지 않는 한, 우리는 주어진 언어를 한 평생 사용한다. 그리고 그 언어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의 태도와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언어야 우리가 결정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지만 우리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우리는 들을 노래를 선택하고, 볼 영화를 선택하고, 무얼 먹을지 선택한다. 또한 앞으로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선택한다. 

사용하는 언어가 그 사람의 태도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는 작은 선택들이 다시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그래서 어쩌면 어른들이 그랬나보다. ‘젊어서 경험을 많이 하라’고. ‘그 다양한 경험이 너를 만들어 줄 거’라고.

‘결정장애’가 화두가 된 이유는 여러가지일테다. 개인의 판단력이 약해졌을 수도 있고, 정말로 결정능력이 떨어진 탓도 있을 게다.

개인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정장애’가 하나의 흐름이 된 것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5지 선다’시험 문제를 풀면서 OMR카드에 마킹해 본 기억이 있는가? 우리의 선택지는 많아야 5개였다. 그 안에서 내게 맞는 걸 선택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 어떤 선택이 올바른지 모르겠을 땐 20%의 확률로 찍으면 그만이었다. 우리의 감각은 동시에 5개를 넘어서는 판단을 하기 어렵다. 아니, 그보다는 5개 이내의 선택지를 마주하는게 익숙했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졌다. ‘골드스타’에서 처음 흑백TV가 나왔을 때는 동네 사람이 한 집에 모여 같은 채널을 시청했다. 선택지 자체가 없었다. TV를 볼 건지, 말 건지를 정할 수는 있어도 채널 자체의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지금은 채널 자체가 너무 많아졌다. 심지어 MCN(Multi Channel Network)라 해서 개인이 방송을 만들어버린다. 옵션과 정보가 너무 많아졌고, 고를 수 있는 게 많아졌다. 내가 ‘결정장애’인 게 아니라 ‘무한선택지’의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밤 하늘의 은하수처럼 쏟아지는 선택지에서 혼란을 겪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때로는 결정을 도와주는 어플을 이용할 수도 있고, 큐레이션 서비스를 사용할 수도 있다. 우리가 비정상인 것이 아니라, 선택지가 비정상적으로 많아진 것이니까. 그래도 한 두 가지 만큼은 내가 스스로 선택하자.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일상에서 선택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소거법’을 기억하자. 선택지를 최소한 5개로 줄여보는 연습을 해보자. ‘5지 선다형’정도는 우리에게 친숙한 과제이니 말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자. “이거 결정장애 아니야. 선택지가 많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