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라도 학창시절 한 때는 호날두였고, 베컴이었다. 도저히 확인할 길이 없는 군대에서의 축구 실력을 논할 때는 상태가 더 심각해진다. ‘공 좀 찼다’고들 한 마디씩 얹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사실 나도 공을 좀 찼다. 베컴이나 호날두 정도는 아니고, 내가 빠지면 경기가 매끄럽지 않는 정도였다. 중학교 때는 하루에 3번을 차는 경우도 있었다. 학교 수업 시작 전에 모여서 한 게임을 차고, 점심 시간에, 그리고 하교 후에 또 차면 ‘하루 3번’이 깔끔하게 떨어진다. 몸이 녹초가 되긴 했지만 그 정도를 차야 ‘할 만큼’, ‘제대로’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축구공을 샀다.

중학교 친구의 결혼으로 다들 모여서 얘기하다보니까, 공으로 하나되던 그 때가 너무 생생했다. 그 시절이 많이 그리웠나보다. 사실, 말이 ‘동창’이지 중학교 때 발을 맞췄던 우리는 거의‘구단’이었다. 십 수년 만에 모여서 하는 얘기라고는 학창 시절의 추억담이나 사사로운 얘기들이 아니었다. 한 경기, 한 경기를 추억하고 논평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다 큰 남자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얘기라곤 하나도 없이 축구 얘기만 줄창해대니, 발이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축구공을 샀다. 문제는 같이 공을 찰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파블로프의 개’실험이 있다.

주인의 발소리만 들어도 먹이를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침이 고이는 개에 관한 실험이다. 어떤 조건이 주어지면 반사적으로 특정 행동을 취하는 것이 ‘파블로프의 개’라 부른다. ‘공’에 있어서는 ‘먹이’앞의 개처럼 우리가 그랬다. 그렇게나 공에 그렇게 미쳐있었다. 개가 주인의 발소리라는 아주 작은 신호만 받게 되도 침이 고이듯이 우리는 누군가 축구공을 운동장에 꺼내놓는 소리만 들어도 산책 나온 개처럼 발을 구르고 난리가 났다.

축구공을 사 놓고는 즐거운 시절을 추억하기만 하는게 답답했다. 그렇게 즐거웠다면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조금 생각해보니 어쩔 수 없고 당연한 일이다. 당시에 우리가 ‘구단’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건 멤버들간의 호흡도 컸겠지만, 당시에 같은 동네에 살며 11명이 모여야 할 수 있는 게임을 시작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싼 브랜드 축구공이 아니어도 어디든 공이 있었고, 뭘 신었든지 간에 공을 찰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군대에서는 또 어떤가. 어짜피 할 일도 없겠다, 주말이면 풋살에 축구에 시간을 쏟을 수 있었다. 같이 공 찰 사람은? 차고 넘쳤다. 병장이 되면 최전방 공격수가 될 수도 있었다.

말하자면 예전에는 환경이 있었다. 공 차고 싶을 때면 어렵지 않게 게임이 성사됐다. 내가 한 명만 부르면, 그 친구가 다른 애들을 다 모아주기도 했다. 병장이 되어 후임들을 집합시키면 바로 경기 시작이었다. 지금은 환경이 달라졌다. 같이 공을 찰 친구들이 서로 사는 지역도 다르고, 서로의 여유있는 시간도 각기 다르다. 모일 시간도 마땅히 정하기 어렵다.

마음이야 다들 한결같지만 환경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이쯤 되니, ‘조기축구 자연발생설’을 주장할 만 하다. 전과 다른 거스를 수 없는 환경 때문에 더 이상 축구를 못하게 된 ‘한 때 호날두’, ‘한 때 베컴’들이 축구가 너무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공을 찰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이어도 관계 없다. ‘이번 주 토요일 오전에 동네 운동장에 모일 수 있는 사람’이면 되는 거니까. 어렸을 때 무심코 조기축구는 마음이 안 갔다. 같이 차던 애들끼리 차면 되는 걸,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아마 조만간 동네의 어느 조기축구 판에서 ‘막내’로 공을 차고 있지 않을까. 이렇게 어른들의 세계가 가까워지나보다. 혹은 ‘한 때 호날두’들이 자신을 찾아가고 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