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한 음식 이야기 – 권력의 감시자, 주식(主食)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 초유의 사태가 있기 몇 달 전, 청와대는 여당 지도부를 초청하여 오찬을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청와대에서 펼쳐진 식사의 재료가 크게 논란이 되었다. 그램 당 몇 만원씩 하는 송로버섯과  캐비어, 샥스핀, 그것이 문제였다. 서민은 평생 살면서도 한번 구경하기 힘든 음식이 국가 지도층 오찬장에 나타난 것이다.

각종 언론과 시민들은 앞다투어 청와대를 비난했다. 그것은 단순히 오찬 바로 며칠 전 제정한 김영란법의 위법여부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국가경제위기의 돌파구는 쉽게 보이지 않고 민생이 날로 피폐해가는 가운데서 들리는 국민들의 아우성이었다. 그 일이 청와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았지만, 민생과 거리가 멀었던 그들만의 잔치는 결국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라는 결말로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소재가 바로 음식이다. 인류에게 원죄를 뒤집어 씌운 ‘사과’가 그 대표적인 음식이라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 정권을 뒤집어 엎은 음식도 있다. 바로 프랑스 루이 16세의 부인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빵과 케익’ 이다.

출처 – FreeQration

“빵이 모자라면 케익을 먹으면 되지요.”

이 발언 하나로 앙투아네트는 희대의 무개념녀가 된다. 물론 앙투아네트가 이 발언을 실제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 루이 16세 정부가 얼마나 민생과 대조되는 식생활을 했는지 단적으로 비유하는 말일 것이다. 그의 남편이자 국가최고지도자였던 루이 16세는 별명이 ‘걸어다니는 위장’ 일 정도로 대단한 식탐을 자랑했다. 오죽하면 프랑스 대혁명 이후 사형 당하는 그날까지도 그는 커틀렛 6인분과 치킨, 달걀, 프랑스산 와인, 스페인산 와인을 실컷 먹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사실 이 빵이 유럽 역사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사건은 따로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시대적 흐름을 타지 못하고 국가경제가 궁핍해가고 있었다. 귀족들조차 예전과 같이 육류가 가득한 식생활을 쉽게 누릴 수 없을 정도로 국가재정이 피폐해져갔다. 그러던 와중, 파르망티에라는 의사가 감자를 보급하여 국민을 먹여 살리자고 왕과 왕비에게 건의한다. 이에 왕과 왕비는 제빵학교를 열어 서민들 배불리 먹이려 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빵의 색깔이 곧 사회계층을 상징했다. 요즘은 건강을 이유로 일부러 까끌까끌한 빵을 먹지만 당시의 프랑스에서는 부드러운 흰색빵을 선호했다. 마치 조선시대 다른 곡류가 섞인 빱과 쌀밥처럼 말이다. 하지만 당시 감자빵을 비롯한 다른 곡류가 섞인 갈색빵을 먹을 수 밖에 없었던 시민들의 분노가 점차 쌓이게 된다.

이때, 어느 날 빵가게 주인이 호밀빵을 흰빵값으로 속여 판 사건이 생겼다. 이 사건으로 빵집 주인은 살해당하고 이 빵사기사건은 일파만파 커져 온 국민의 분노가 파리 전체로 번져나간다. 시민들은 ‘우리에게도 빵을 달라’ 며 재정부 장관 사무실 앞까지 쳐들어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상류계층이 먹던 빵과 차별되지 않는 빵이었다. 바로 이 맘때쯤, 앙투아네트의 저 무개념 발언이 나왔으리라 추측된다.

그리고 이런 민중의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루이 16세는 결국 그의 아내 앙투아네트 함께 단두대 위에서 비극적 결말의 주인공이 된다. 물론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끼친 많은 변수가 있었지만, 빵 하나가 국가의 운명을 바꾸는데 큰 변수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봤을 때, ‘레 미제라블’ 에서 장발장이 빵을 훔치게 된 것도 이런 사태와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

우리나라의 쌀과 마찬가지로 빵은 유럽 식문화의 주식이다. 한 인류의 주식에는 가족, 친구들과 나눠먹는 기쁨도 있지만 그 기쁨을 쉽게 누리지 못하거나 차별받을 때, 그것은 분노로 변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누리지 못할 때 인간의 감정은 최고조로 폭발하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에 일어났던 임오군란, 신식군대를 양성하는 별기군에 비해 구식군대인 무위영, 장어영 등의 군인들이 받은 차별과 밀린 쌀배급, 그리고 그나마 배급받은 쌀에 모래가 섞여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한 군인들이 일으킨 사태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개화기 시기 가장 중요한 국제관계는 종잡을 수 없이 복잡해졌고, 조선의 외교 주도권은 점차 그 힘을 잃어갔다.

가장 가까운 먹거리에서 오는 분노, 그리고 그 이전에 느꼈을 슬픔과 애환. 역사에 등장하는 서민들의 주식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잘 챙기지 못했을 때 정치에 대한 음식의 간섭은 얼마나 참혹했는가.

이처럼 음식에는 단순히 미식이라 일컬어지는 미학적 즐거움만 존재 하는 것 아니다. 때론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때론 그 투쟁에 이르기까지 핍박받던 서러움과 슬픔이 서려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 세상을 만들어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에 묻은 서러움과 슬픔을 헤아려주지 않을 때, 그만한 노력의 대가가 적절치 않을 때, 그리고 그 대가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우리의 주식이 차별받거나 온전치 않을 때, 인간사에 대한 음식의 간섭은 언제든지 다시 반복될 수 있다.

출처 – FreeQration

 

 

빵 속에는 거대한 슬픔의 효소가 있다

빽빽한 살덩이에 펑펑 구멍을 내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의 이스트가 들어 있다

노릿한 공기 안온하게 들어앉히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그속에

구멍마다 사람들 꿈처럼 들어앉아

말랑하고 따스한 슬픔의 벽 뜯어먹는다

말할 수 없이 미세한 슬픔들도 노릿한 공기

흥건히 채우며 아메바 같은 아이들 키우는 힘

가지고 있다 슬픔은 자란다, 세포분열 한다

송송송 수없이 제 살 뚫으며 슬픔은 부풀어 오른다

캄캄한 빵의 밤, 슬픔들은 구멍마다 불을 밝힌다

갇힌 슬픔들, 반짝이며 자꾸 언저리 지운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들이

거대한 오븐 속에서 꿈틀꿈틀

부풀어오른다

오오 저 거대한 빵

– 거대한 빵, 이경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