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위선양은 집어치우고

미국 여자 프로골프, 그러니까 모든 여자 골퍼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LPGA 투어를 뛰던 선수가 최근 국내 무대로 복귀했다. 바로 장하나의 이야기다. 장하나는 국내무대에 복귀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유는 하나, 가족 때문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1년에 340일을 혼자 지내고, 아버지는 미국 현지에서 딸을 뒷바라지하는데다가, 장하나 본은 휴식이 거의 없는 LPGA 투어의 살인적인 스케쥴 때문에 미국에서도 거의 호텔방을 전전하는 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선수 본인의 스트레스는 물론이거니와 어머니와의 시간을 거의 보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장하나는 고민 끝에 국내 무대 복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장하나의 선택이 더 이목을 끈 것은 실력에서 밀려난 게 아니라 3차례 톱10에 진입해 상금랭킹 11위(35만 9천달러)에다 세계랭킹 10위를 달릴 정도로 현재 ‘탑’급 선수였다는 데 있다. 그런 선수조차도 이제 ‘행복해지려고’ 최고의 무대를 접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한국 여자 프로골퍼들의 롤모델은 지금까지 너나 할거없이 ‘박세리’ 였다. 아주 어렸을때부터 골프채를 손에 쥐고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인생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골프’에만 매달린 인생. 그런 박세리조차 ‘인생에 골프말곤 할줄 아는 게 없더라’ 라며 자신의 인생의 헛헛함을 토로했고, 현직 LPGA 탑 프로골퍼인 장하나는 ‘행복’을 위해서 극한의 경쟁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이것이 어쩌면 바람직한 한국 골프문화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골프란 무엇인가. 골프의 매력은 무엇인가. 골알못인 나도 골프에서 발견한 매력과 아름다움은 바로 스스로의 기품과 정신력, 매너, 가치를 필드위에서 증명하려는 노력들이다. 심판이 없기에 철저히 스스로 정직을 지키며 상대방을 감시해야 하고, 상대방의 스윙을 어떤 식으로든 방해해서는 안되는 매너를 지켜야 한다. 이런 골프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나 혼자 잘 치고 접대받으려는 스윙이 아닌, 상대방 그리고 자기자신과의 엄격한 경쟁을 통한 자기 함양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골프는 결국 아주 엄격한 룰과 경쟁을 통해 스스로 행복해지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느정도 경지에 이른 프로 골프 선수를 보면서 멋지다고 느끼는 것 아닐까. 나는 장하나 선수의 국내복귀 결정을 보고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스포츠는 ‘국위선양’ 같은 있지도 존재하지도 않는 가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박세리 선수가 맨발 투혼으로 LPGA 투어에서 우승했을 때, 우리는 그 박세리 선수의 멋짐, 포기하지 않는 투혼을 보고 감동받고 암울한 시기의 힘을 얻었다. 그러나 그 선수 개인을 보고 감동받고 위로를 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그 선수가 나라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를 대표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일단 까놓고 말해서 선양할 국위가 도대체 어디있는가 이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박세리 선수가 우승하는 거랑 나라의 국위 선양이랑 도대체 뭔 상관이 있는가. 그리고 국위를 도대체 왜 선양해야 하는가? 애초에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개인들이 모여서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아주 ‘관념적’인 개념인데 그것을 왜 선양해야 하는건가? 그것도 스포츠 선수가?

스포츠 선수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스포츠를 해야 한다.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타깝지만 공부도 포기하고 연애도 포기한채 오직 골프에만 10년 20년을 바치는 그런 행복하지 않은 탑 골퍼는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그런 골프 선수가 나와 LPGA 투어에서 우승을 하더라도 우리는 더 이상 그 골퍼를 ‘멋지다’고 해서도 ‘국위선양’이라고 해서도 안된다. 그건 북한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수령님의 은총과 사랑을 목놓아 외치는 것만큼이나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난 더 이상 불행한 골퍼들을 보고 싶지 않다. 난 행복하고 멋진 골퍼들을 보고 싶다. 장하나 선수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