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필요 없어!”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

“없어져버려!”

남태평양 어느 부족의 주문이다. 그들은 길을 내거나 사냥을 할 때 성가신 나무가 있으면 온 부족민이 모여 그 나무에다 대고 이런 주문을 외운다고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나무가 죽어버린다고 한다.

“사랑해”

“넌 미워”

몇년 전, 음식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에서 밀봉된 쌀에다 대고 이런 말을 해주었다. 한쪽에는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했고, 다른 한쪽에는 미워, 싫어라는 증오의 말을 퍼부었다. 2주일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놀라운 것들이 관찰되었다.

애정의 말을 다정하게 해주었던 밥에는 흰곰팡이가 폈다. 흰곰팡이는 연성치즈나 막걸리를 띄울때 누룩에 피는 곰팡이로 발효작용을 하는 곰팡이로 알려져 있다. 페니실린의 원료로도 사용되는 인간에게 유익한 곰팡이다. 반면에 증오의 말을 내뱉었던 밥에는 검은 곰팡이가 피었다. 밥은 상했고, 검은색의 무시무시한 기운이 온 병을 휘감았다.

남동생이 하나 있다. 공부에 딱히 재미를 딱히 못붙이던 녀석이라 고등학교 시절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 온집안 식구가 매달려 함께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관심과 재능의 발휘할 수 있는 길을 찾았고 그것은 바로 ‘요리’ 였다. 동생이 ‘요리’의 길을 선택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많은 격려를 해주셨다. 그리고 덧붙여 말씀하시길,

“요리라는 것은 남을 위해서 직접적으로 바로 행하는 *보시다. 그것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 세상에서 남을 가장 이롭게 하는 행위란다. 항상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고 요리를 하거라. 그리고 요리할때 절대로 화가 난 상태에서, 욕하면서 하지 말거라. 그것은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독약을 만드는 것이다.”

* 보시 : 남에게 선행을 베푸는 행위

나이가 어렸던 당시의 내 동생은, 이 말을 모두 다 마음 속 깊이 헤아리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리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한번은 내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실습시간에 교수님께서 스프를 만드는데, 버터를 엄청 때려 넣는거야. 그래서 내가 왜 그렇게 많이 넣냐고 했더니 교수님이 ‘무조건 맛있으면 돼. 레스토랑 오는 사람들이 건강 생각하고 오는 게 아니야.’ 라고 했어”

동생은 꽤나 심각해보였다. 100% 아버지의 말씀을 다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요리사로서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자기덕목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동생에게는 요리사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릴 일이었는데 오죽했을까.

그때 나는,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의 진짜 의미를 한마디로 말해주었다.

“약식동원(藥食同原)”

동생은 그 의미를 물었다.

“약과 음식은 근본이 같다는 말이야.”

동생은 아무 말도 없이 그 말을 듣고 수도 없이 되새김질을 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약이거나 독, 둘 중 하나다. 그래서 일찍이 동양의학에서는 약초와 음식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우리가 잘 아는 동의보감 등의 약재목록에는 우리가 흔히 밥상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재료들이 잘 정리되어있다.

요리사는 아니지만 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난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요리의 즐거움을 찾는 미식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우리는 그 즐거움을 위해 가끔은 그 근본을 쉬이 잊어버린다. 집에서 요리하는 사람이든, 돈을 받고 요리해주는 사람이든 우리 모두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약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대접한다면 그 순간은 이미 한명의 뛰어난 의사보다도 나은 사람일 것이다.

‘소의치병(小醫治病), 중의치인(中醫治人), 대의치국(大醫治國)’

작은 의사는 병을 치료하고, 평범한 의사는 사람을 치료하며, 큰 의사는 나라를 치료한다. 음식이 주는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아무리 집안의 작은 요리사라 할지라도, 먹는 것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그런 음식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