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삶의 부분일 따름이지만 유럽에서는 때로 축구가 삶의 모든 것이 되기도 한다. 특히, 맨체스터처럼 세계적인 연고팀을 두 개나 가진 도시에서는 삶이 축구의 일부분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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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2일 밤 10시 33분경. 또 하나의 비극적 테러 사건이 세계사에 새겨진다.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열린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 직후, 공연장 밖 출구 중 하나에서 폭탄이 터진 것. 56명이 죽고 700명가량 부상당했던 2005년 ‘런던 폭탄테러’ 이후 최악의 테러라고 한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관객들이 공연장을 빠져나가려 몰리는 시점에 매표소 인근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증언했다. 젊고 인기 있는 가수의 공연이었던 만큼 부모 없이 온 청소년도 많았다. ‘맨체스터 아레나 테러’의 사망자는 최소 22명, 부상자는 50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본문 작성 날짜 2017년 5월 29일 기준.) 사망자 가운데에는 고작 8살짜리 어린이도 있었다.

온 도시가 비탄에 잠겼다. 국가를 넘어 전 세계에서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죽은 이웃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거리의 표정은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그럼에도 날은 어김없이 흘렀고 살아남은 자들의 삶은 계속되기에, 시민들은 불안과 아픔을 안은 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만 했다.

참사 3일 후, 맨체스터의 정체성이라 해도 무방할 두 축구 구단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유로파 대회 결승에 나서야 했다. 퍼거슨 체제 이후 맨유가 유럽 대항전에서 첫 트로피를 들어 올릴 절호의 기회였다.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티켓이 걸린 중요한 경기였기에 테러 발생 전까지 맨체스터의 이목은 아약스와 맨유의 유로파 결승이 열릴 스웨덴의 ‘프렌즈 아레나’에 집중되어 있었다. 같은 연고 구단인 ‘맨체스터 시티’의 팬이라 해도 이 경기에 관심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경쟁심리 때문에 맨유의 패배를 바라는 이도 있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이왕이면 맨체스터의 이름을 단 라이벌이자 도시의 형제 맨유의 우승을 응원했을 것이다.

맨유는 실로 오랜만의 유럽 대항전 우승의 기쁨을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열망이 컸다. 그리고 참사 후, 열망은 가능성을 넘어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사명이 되었다. 조금이나마 도시에 위로를 가져다 줄 우승이 되어버렸기에.

대망의 결승전. 맨유 선수들은 검은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다. 경기 전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5분간의 묵념이 있었다. 맨유는 경기를 압도하지는 못했지만 집념으로 승리를 일구었다. 골 결정력 부족으로 시즌 내내 비판에 시달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리그에서는 마치 저주라도 걸린 듯 간발의 차로 자주 빗나가던 ‘폴 포그바’의 슈팅이 수비수 발을 맞고 굴절되어 골문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론, 잘 때린 슈팅이었지만 행운도 어느 정도 따른 골이었다. 이적 후 골 운이 잘 따르지 않았던 포그바에게 말이다. 마침, 그 골을 도운 건 펠라이니였다. 이번 시즌 부진을 면치 못해 공공연하게 방출설이 나도는 선수. 심지어 펠라이니는 이 경기에서 각성하여 평점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다. 결국, 맨유는 아약스에 2:0 승리를 거두며 유로파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구설수의 중심에 선 선수들이 경기를 승리로 이끈 것이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결승골의 주인공 포그바는 ‘이 승리는 맨체스터 전부를 위한 것’이라 말했다. 그는 골을 넣은 직후 하늘로 손 뻗는 세리머리를 통해 테러 희생자를 한 번 더 추모하기도 했다.

‘후안 마타’는 ‘당연히 인생에서는 축구보다 중요한 일이 많고 우리는 고통 받은 사람들을 위해 승리를 거두려 더욱 노력했다’며 ‘시의 분위기를 나아지도록 하기 위해 애썼으며 오늘 약간은 그걸 해 낸 것 같다’는 말을 통해 우승의 가치를 더했다.

‘크리스 스몰링’ 역시 ‘우승이 맨체스터를 다시 좋은 쪽으로 돌려놓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여느 때보다 간절히 경기에 임했음을 강조했다.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된 ‘안드레 에레라’는 선수 대표로 기자 인터뷰에 나서서 ‘트로피를 희생자들에게 바친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여기 더해 유로파리그 우승이 맨체스터에 어떤 위로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저 축구 선수일 뿐입니다. 축구 경기 중 하나였을 뿐이고 우승 트로피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1퍼센트만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와 함께 에레라는 감독인 ‘조제 무리뉴’를 언급했다. 테러 직후 훈련에 집중하기 어려워하는 선수들에게 무리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들을 위해 경기를 이기는 것’이라고.

감독 인터뷰에서 무리뉴는, 맨체스터 아레나 테러 직후 결승전에 임해야 했고 우승을 일군 후 기쁨조차 우선할 수 없는, 맨체스터 연고 구단 유나이티드의 일원으로서 입장을 이야기했다.

“당연히 우리의 일(결승전) 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계속 흘러가고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만 했고 저는 테러에 굴복하지 않고 경기를 치른다는 유에파의 결정에 동의합니다. 만약, 희생자들의 생명과 이 트로피를 바꿀 수 있다면 당연히 두말할 나위 없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 우승컵으로 맨체스터 시가 조금 더 행복 해졌느냐?”

마지막 자문에 무리뉴는 약간의 텀을 둔 후 답한다.

“어쩌면요. 하지만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일을 하기 위해 여기 있을 뿐입니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일을 하지 않았다면 끔찍한 테러 이후 도시의 우울증은 한층 심해졌을지 모른다. 단지 우승컵 하나가 모든 아픔을 씻어주진 못하겠지만 잠시 맘을 추스를 여유는 전할 수 있을지도.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늘 평화롭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모두가 평화를 위협하는 일들에 전면으로 맞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테러에 직접 대항하는 군인들이 있다면, 군인들이 먹을 음식과 입을 못, 싸울 무기를 만드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일을 해야만 삐걱거림 없이 세상이 돌아간다. 수십억의 누군가 중 축구를 하는 누군가는 컵 대회 우승을 통해 자그마한 위로를 전하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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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삶을 떼 놓고 말할 수 없는 유럽,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영국, 그 안에서도 가장 인기 있고 유명한 축구 구단을 보유한 맨체스터. 비록 축구가 삶의 모든 것이 될 순 없어도 그들의 모든 삶을 위로할 순 있을지 모른다.

꼭, 축구가 아니어도 좋다. 그것이 우리를 위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당신이 당신의 일을 하고, 내가 내 일을 할 때에,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위로할 수 있게 된다. 그저 일반인 한 명의 작은 성취라도 한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은가? 몇 명으로 구성되었든, 혈연이든 아니든, 어떤 형태든, 어쨌든 가족이 모여 지구를 이루니까. 그렇게 당신으로 인해 내가 조금은 행복해졌냐고?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