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더워서 땀이 많이 나고 기력이 떨어지고 입맛도 없을 때는 무 요리가 제격이다. 다아스타제같은 소화효소뿐 아니라 단백질분해효소도 가지고 있어 속이 더부룩 할 때 최고의 음식이 된다. 더운 날 졸도하거나 진이 빠질 때 무 즙 한 그릇에 생강 한 티컵을 섞어 마시면 곧 깨어난다는 말도 있다. 효능적인 이로움을 빼고라도, 어쨌거나 나는 무 요리를 무척 좋아한다. 무생채나 무말랭이나 무국 같은 것들 말이다.
특히 무국은 한솥을 끓여놔도 찬밥 더운밥 가릴 것 없이 말기만 하면 후루룩 한그릇 뚝딱 넘어 간다. 담백하고 고소하면서도 시원한 것이, 무로 만든 것을 먹고나면 속도 정말 편안해서 뒷맛이 개운하다. 자체로 자극적이지 않은 맛이기 때문에 다른 음식들과도 잘 어울리는 훌륭한 식재료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무 요리를 처음부터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 무에 얽힌 비극적 기억때문에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전까지 무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어린 시절 내가 다닌 유치원의 점심식사는 도시락을 싸오거나 식당이 따로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조금 특이하게도 밥은 각 반에서 커다란 전기밥솥에 하나로 짓고, 반찬은 한 아이마다 돌아가며 각 집에서 전체가 먹을 양을 만들어 오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그날 무슨 반찬이냐, 얼마나 맛있는 반찬이냐 하는 것은 당번 아이에게 명예와 인기가 걸린 중요한 사항이었다. 소세지나 장조림 같은 반찬이 단연 인기 메뉴였고 그런 반찬을 보낸 집의 아이는 어깨가 우쭐해지는 것이 우리 다섯살배기 사이의 작은 권력이었다.
하루, 하루가 가고 어느새 우리집이 당번인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여러 의미에서 두근거렸다. 최근에 왔던 반찬과 겹치지 않는 획기적이고 맛있는 반찬이 나타나기를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께서도 무척 부담스러우셨을 것이다. 초롱초롱 기대하는 아이들과 당신의 솜씨를 모두 충족하는 메뉴를 골라야 했으니까.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알림장을 읽은 어머니는 오래도록 고민하셨고 결국 당일의 점심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또 어떤 반찬일까 기대에 부푼 아이들이 반찬통과 냄비 앞으로 몰려들고 각각 추측을 펼쳤다. 무슨 반찬을 해오셨는지 나도 몰랐던 터라 너무너무 조마조마 했다. 뚜껑이 열리고, 음식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건 들깨를 넣고 무우를 잘게 채썰어 끓인 뽀얀 무국이었다. 게다가 밑반찬마저도 무생채였다. “에이 이게 뭐야!” 어떤 친구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너나없이 여기저기서 불평이 터져나왔다. “오늘 당번 누구야. 누구집이야.” 모두 범인을 색출하듯이 두리번거렸다.
선생님은 당황하시며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자자, 모두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지요. 무우는 몸에 아주 좋은 음식이에요. 차례차례 받도록 해요.” 아이들은 선생님이 나눠주시는대로 어쩔 수 없이 배식받은 다음 하나같이 이 형편없는 메뉴에 대해 놀리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엄마가 만든거야.’라고 밝히지도 못하고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모른 척 무국과 무생채를 받았다. 밥을 말아먹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이거 맛있는데! 이거 맛있어! 먹어봐.” 그렇게 친구들에게 말하면서 한가득 입에 물고 눈물과 함께 무를 꼭꼭 씹어 삼켰다.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로봇처럼 계속 “맛있어! 무우 맛있어!”하였다. 친구들은 물론 내 말을 따라주지 않았고 결국 무 반찬은 대부분 남아 버려졌다. 나는 버려진 무처럼 슬픈 기분이 되어 혼자 화장실에 가서 눈알이 빠지도록 눈물을 흘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에게 “왜 무 했어! 아무도 안 좋아했어!”하면서 엉엉 울었고 어머니는 “아유 나도 참… 내가 잘 하는 걸 하겠다구… 애들이 좋아할리가 없는데. 미안해.”하면서 얼굴이 빨개지셨다. 정성스럽게 요리해주신 어머니를 민망하게 만든것같아 더 서러워져서 꺼이꺼이 울었다. “아니야, 무는 맛있었어. 엉엉” 정말이지 모두에게 상처밖에 남지않은 급식당번 날이었다.
어머니에게 무 자체는 맛있었다고, 친구들에게도 맛있다고 주장했었지만 사실 그때 나는 맨정신이 아니었고 무의 맛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아주 비극적이고 처참한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에 꽤나 자랄때까지, 아마 고등학생이 될때까지도 무 요리를 전혀 먹지 않았던 것 같다. 무가 맛있다고 생각한 건 대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간만에 내려가서 집밥을 먹는데, 무국이 올라왔다. 내가 속이 안좋다고 해주신 음식이었다. 그런데 웬걸, 정말로 맛있는게 아닌가. 구수하게 우러난 국물과 부드러운 무의 질감이 입안에서 은은하게 감겼다. 내 주장은 거의 15년을 지나 진실이 되었다. 우리 어머니의 무 요리는 정말 맛있다.
지금도 무를 먹을 일이 생기면 꼭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물론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오히려 더 맛있게 무와의 식사를 장식하는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시간이 쌓이고 쌓여 울었던 일들도 따뜻한 기억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들을 사랑한다. 오늘의 힘든 일들도 그렇게 달라져 가겠지. 비극의 무우 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