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코치이자 프리랜서 작가인 어느 한 지인의 SNS에 글이 올라왔다.

“자신이 어른이라고 느낄 때는 언제입니까?”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그 중 압도적으로 많은 류의 댓글들이 가족과 얽힌 이야기였다.

“부모님의 간섭이 관심으로 느껴질 때”

“부모님이 내 눈치를 보실 때”

“천하무적 같던 아빠에게 연민이 느껴질 때”

“어린이날 선물요구를 엄마에게 거부당했을 때”

“용돈이 끊겼을 때”

“동생을 돌보느라 놀 수가 없을 때”

가족과 얽힌 많은 댓글을 보며, 결국 한 개인의 성장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식만큼 이야깃거리가 꽃피는 소재도 이 세상에 찾기 힘들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연예인과 이성 이야기 만큼이나 우리의 말귀를 사로잡는 것이 음식 이야기고, 연인과의 만남에서도 어느 식당, 어느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그들의 사랑에 조미료처럼 쓰인다. 그러면서 음식 이야기를 할 때면 습관처럼 가족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음식은 가족과 동의어다. 조인성이 어느 영화에서 ‘식구(食口)’라는 말에는 ‘밥을 함께 먹는 입구녕’ 이라 말했듯, 가족을 빼놓고 음식을 이야기할 수 없고, 음식을 이야기하면서 가족을 빼놓을 수 없다. 엄마의 입맛을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후천적으로 심어진 DNA와 같다. 그래서 똑같은 음식을 쭉 나열해놓고 엄마가 만든 음식을 맞혀보라한다면, 아무리 미각에 젬병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거의 대부분 알아 맞힌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입맛은 피보다 더 정확하달까.

지인의 글에 나도 댓글을 달아야겠다 싶었다. 그리고선 이런 말을 썼다.

“아버지가 즐겨먹던 음식이 나도 좋아질 때”

어린 시절, 미나리를 참 싫어했다. 이것이 먹는 것인가 할 정도로 그 첫 맛에 경악했다. 아삭하며 씹힐 때 코를 타고 올라오는 향은 뇌세포를 죽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참 잘도 드셨다. 미나리가 제철인 봄에는 어머니가 거의 미나리를 재놓고 요리하셨다. 재수없게 그런 날이 걸리면 온 밥상은 거의 미나리 밭과 다름 없었다. 생미나리 한 단이 소쿠리에 척하니 들어가 있었고, 미나리 무침, 미나리 부침개, 미나리 김치에 삼겹살에도 미나리를 넣고 향을 입혔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어김 없이 나는 조용히 주방 선반을 열어 참치캔을 꺼내왔다.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지만, 내게도 기적처럼 미나리가 좋아지는 날이 왔다. 그 무렵은 우연히도 세상의 풍파에 찌든 때였고 말도 안되는 또다른 사춘기를 겪을 때였다. 그리고 그날부터 미나리가 상에 올라오면, 미나리 수경재배지의 거머리 마냥 미나리를 쭉쭉 흡입하기 시작했다. 엄마도 아버지도 놀라는 광경, 그제서야 식구로서의 한 가족이 된 기분, 성인식을 치른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가족의 일원으로서 나도 어엿한 성인으로서의 공식적 밥상데뷔였다.

그 밥상 앞의 성인식을 마친 후에서야, 나는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 보이기 시작했고, 아버지의 소울푸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의 입맛을 공유하게 되었고, 동생의 입맛을 더 이상 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음식을 통한 그들의 삶을 살펴보게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수많은 댓글들 처럼 ‘가족’ 안에서의 자신이 우뚝 섰을때가 아닐까. 사회에서의 어른은 고단함을 주지만 가족 안에서의 어른은 행복한 책임감을 준다. 타인의 것을 조금씩 받아들일 때 건강한 어른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먼 이웃보다 가까운 가족의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때가 더 많다. 하지만 가족 내에서도 서로 다른 맛의 취향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 첫 계단에 발을 올린 셈이다. 어른이라는 꼭대기의 첫 계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