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간만에 비가 내렸다. 가뭄이 심한 요즈음 특히나 더 귀중한 비였다. 연일 뉴스에서 올해의 심각한 가뭄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도시의 사람들에겐 뉴스 속의 먼 이야기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피부로 와닿는 걱정스러운 문제일 수도 있다. 나도 직업이 농부는 아니지만 나날이 이어지는 가뭄을 아주 근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쪽에 가깝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흔히 그랬겠지만, 우리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사셨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금도 그 땅에서 가족들이 농사를 짓고 있다. 자연스레 나도 어릴 때부터 농사일을 도우며 자랐다. 우리집에서 주말이란 할아버지 집에서 논일이나 밭일을 하는 날이었다. 모내기철이 되면 논둑에서 새참을 먹고, 추수철이 되면 지푸라기 먼지로 콧속이 그득해지면서, 그렇게 사계절 내내 작물의 주기와 리듬을 함께 했다. 내 하찮은 인력이 가업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 시간들이 내 인생에서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요즘같은 시대엔 거의 모든 음식을 사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아파트라도 간혹 상추나 방울토마토같은 작은 채소는 베란다에서 직접 키워먹기도 한다. 소소한 작물이지만 내 손으로 싹을 틔워 재배해서 먹어보면 그 음식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대번에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언가가 자라나고 익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나면 내가 먹는 것의 무게를 조금은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일을 돕고 있으면 그것이 ‘자연의 일부’라는 체감이 된다. 작은 씨앗에서 시작되어 넓은 들판에서 바람을 맞고 태양을 머금으며 자라난다. 뜨거운 날에 광합성을 하고 비 오는 날엔 수분을 흡수하며 익어가는 그 속엔 대지의 시간이 묻어있다. 작고 사소한 것은 어느새 스스로 자연이 되고, 인간은 다시 그걸 거두어 제 생명의 에너지로 삼는다. 이 순환을 느끼는 순간 음식은 단순한 열량을 넘어 생명력이 된다. 손바닥에 올려둘 수 있는 작은 열매 하나에도 그 무게에 깊은 시간과 가치가 실려있는 것이다.
우리 밥상에 올라가는 것 중 저절로 나고 저절로 자란 음식은 거의 없다. 어떤 땅에선가 어떤 햇살 가득한 날들을 지나며 누군가의 정성 아래 그렇게 커 왔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사람이 키운 건지 아는 일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단순히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 정도를 구분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나의 일부가 될 시간과 무게를 가늠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아무 음식이나 고르는 일이 적어진다.
자연물의 가치에 더해 키운 사람의 마음까지 함께 느끼면서 뭔가를 먹을 수 있다면 식사가 훨씬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비가 내리긴 했지만 아직 가뭄을 해소하기엔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어서 이 여름을 적실 단비가 찾아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