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음식엔 그 맛을 최대로 살릴 수 있는 최적의 온도가 있다고 한다. 커피의 경우 아메리카노를 기준으로 80도~85도가 가장 맛있는 온도라고 알려져 있다. 즉 커피는 뜨겁게 먹을 때 그 풍미가 더 살아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날이 더운 여름엔 어쩔수 없이 라떼든 아메리카노든 아이스 커피류가 인기가 많다. 그럼 여름엔 맛이나 시원함 어느 쪽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걸까? 여기에 매력적인 해답이 되는 한가지 예외가 존재한다. 바로, 더치커피다.
더치커피는 콜드 브류 커피를 이르는 다른 말로, 분쇄한 커피에 찬물을 한방울씩 떨어뜨려 추출하는 방식으로 만든 커피다. 애초에 차가운 물로 추출하는 만큼, 더치커피는 시원하게 먹는 것이 일반적이며 낮은 온도에서도 맛과 향이 풍성하게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여름에 어울리는 커피로 제일로 꼽는 것이 더치커피다. 그냥 물과 얼음에 희석해서 먹어도 맛있고 찬 우유를 넣어 더치 라떼로 만들어 먹어도 정말 맛있다.
특별한 기계가 없어도 물과 커피만 있으면 비교적 손쉽게 만들수 있는데다 장기간 보관도 가능해서 집에서도 상대적으로 즐기기 쉬운 커피다. 그래도 추출기구 자체는 있어야하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더치 원액을 사서 그때그때 타 먹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나는 지독한 커피광이라 여름엔 아이스커피를 물처럼 마시는데, 집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매번 까페에 가는 것도 귀찮고 금전적으로도 부담이 되곤 했다. 블랙으로 나오는 인스턴트 커피는 아무래도 까페에서 먹는 추출 커피랑 맛에 차이가 있어 눈물을 머금고 저렴하면서 맛있는 까페를 찾아다니는 것이 여름의 일상이었는데, 우연히 행사하는 더치 원액을 샀다가 여름의 신세계가 열리게 되었다.
사둔 더치 원액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마시고 싶을 때 찬물에 희석하여 얼음을 동동 띄워 먹었더니 커피 전문점에서 먹던 바로 그 맛이 났다. 설마 라떼는 맛이 안나겠지 했는데 아이스라떼도 사먹는 그대로 맛이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처음 먹어본 날의 기쁨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놀랍고 행복했으니 말이다. 그 후로는 여름엔 항상 떨어질때마다 더치 원액을 사서 쟁여두고 먹는다. 훨씬 경제적일뿐 아니라 먹고 싶을 때마다 까페를 찾아갈 필요가 없으니 정말 편하다. 뿐만 아니라 맥주 주스 등에도 잘 어울려서 더치 원액 하나만으로도 즐길수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그야말로 만능이랄까. 한동안은 커피를 좋아하는 주변 친구들에게 만날때마다 추천하고 다녔는데 이제 차츰 주변인들도 그 매력에 눈을 뜨는 중이고 더치원액을 판매하는 까페나 프랜차이즈도 늘고 있어 반갑다.
고온 고압에서 추출한 에스프레소보다 카페인도 적고 쓴맛보다는 고소한 맛이 극대화되어 있기 때문에 평소에 커피의 쓴맛이나 카페인 때문에 멀리했던 사람에게도 추천할만 하다. 무엇보다 차가울 수록 향미를 담아두기 좋다는 점에서 여름 아이스 커피로는 꼭 더치를 권해보고 싶다.
추출 과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마치 눈물 같다고 하여 ‘커피의 눈물’이라고도 불리고 숙성 시간이나 과정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하여 ‘커피의 와인’이라고도 불린단다. 어느쪽이든 더치커피와 매우 잘 어울리는 별명인 듯하다. 그런 우아하고 섬세한 느낌이 분명 담겨있다.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사치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경제적이고 맛있으면서 운치까지 있다니, 이 정도면 반칙이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난 텀블러에 담은 더치 커피를 마시고 있다. 매일 만들어 먹다 보니 내 입맛에 맞는 레시피가 점점 생겨나서 이젠 오히려 까페에서 사먹는 것보다 내가 만든 게 더 맛있는 것 같다. 이런 기쁨을 나만 누리기엔 아쉽다. 80도가 맛있는 뜨거운 커피에 부러 얼음을 타서 다시 식히지 말고 이제 애초에 시원하게 더치로 즐겨보면 어떨까? 아마 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