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독일 차를 타면서, 이탈리아 여자와 결혼하고, 프랑스 음식만 먹는 남자입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남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프랑스 차를 타면서, 독일 여자와 결혼하고, 영국 음식만 먹는 남자입니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 괴식의 나라 영국. 유럽인들에게 수십년간 각인된 이미지다. 오죽하면 버지니아 울프가 자신의 소설 “To the Lighthouse”에서 이런 말을 대사로 썼을까.

“영국에서 요리라고 하는 것은 혐오스러운 것들이에요. 물안에 양배추를 넣은 것, 가죽처럼 될 때까지 익힌 고기, 맛있는 부분들을 벗겨낸 야채 같은 것들이죠.”

물론 영국에는 유명한 음식이 있긴 하다. 대표적으로 세가지 정도가 알려져 있는데,

1. 피쉬

2. 칩스

3. 피쉬 앤 칩스

우스갯소리다.

영국인의 음식은 전세계인의 조롱꺼리다. 모든 요리를 15분 만에 끝내버리는 제이미 올리버나 방송분량의 절반을 삐- 소리로 장식하는 성격 고약한 고든 램지 같은 이름 굵직한 셰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영국 출신의 요리사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영국요리라는 것이 별거 없다. 떠올렸을 때 특별한 콘텐츠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중식하면 베이징 덕이 떠오르고, 프랑스 하면 푸아그라가 떠오르며 일본하면 스시나 사시미가 떠오른다. 이탈리아 하면 파스타, 태국하면 똠양꿍, 베트남 하면 쌀국수, 한국하면 불고기, 이렇게 기계적으로 떠오르는 요리가 영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국은 미식세계에 있어 아수라 지옥같은 느낌을 준다. 그저 펍에서 맥주나 퍼 마시며 축구나 즐길 즐 아는 나라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사연을 이야기하며, 영국음식에 대한 변호를 하고자 한다.

앞서 우리는 영국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때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다. 사람들이 영국이라 했을 때, 브리튼섬 전체를 막연하게 떠올리기 일쑤인데, 사실 그렇지 않다. 영국의 정식 명칭은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이다. 우리말로는 흔히 대영제국이라고 일컫지만, 굳이 직역하자면 ‘위대한 브리튼섬과 북아일랜드의 통합된 왕국’ 에 가깝다.

이에 우리는 브리튼섬에 대한 이해를 할 필요가 있는데 이 섬안에만 나라가 세개다. 북쪽으로 스코틀랜드, 서쪽으로 웨일즈, 그리고 우리가 아는 영국(잉글랜드)이다. 그래서 우리가 영국이라 호칭할 땐 브리튼 섬 전체의 극히 일부분, 즉 동남쪽 런던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인에게 “Are you from England” 라고 하면 굉장한 실례다. 그들은 연방으로 묶여있지만 각 나라를 구성하는 민족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실제로 2014년에 스코틀랜드는 독립국가로서 지위를 획득하고 영연방에서 탈퇴하기 위한 노력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허나 여러가지 정치, 사회적 이유로 부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짖는 국민투표 이슈에 이런 주제가 오르내린다는 것이 스코틀랜드인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영국과의 구별을 원하는지를 반증하는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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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스코틀랜드는 유명한 음식이 있다. 이것이 그들의 문화적 자부심(?)으로 이어져 독립을 원하는 것이었던 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해기스’ 라는 육류의 내장으로 만든 우리의 순대와 비슷한 개념의 음식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자랑, 스카치 위스키와 함께 먹는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인에게 영국사람이라고 말하면 실례듯이, 해기스를 영국음식이라 부르는 것도 스코틀랜드인에 대한 엄청난 모독이다.

이에 반해 영국은 그들을 떠올릴 만한 요리가 없다. 베어 그릴스가 온갖 극혐 음식을 씹어먹을 수 있는 것은 아마 영국 음식으로 이미 단련되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국 요리가 전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된 불쌍한 이유가 몇가지 있다.

첫째, 브리튼 섬 자체가 워낙 척박한 땅이었다. 스코틀랜드나 웨일즈의 토양처럼 비옥하지도 않았고, 지중해 연안의 따뜻한 기후처럼 날씨가 음식 문화를 꽃피울 만큼 좋았던 것도 아니다. 또한 당시의 영국은 유럽 변방의 외딴 섬나라였는데다 대륙국가들처럼 교통사정이나 항로사정도 좋지도 않아 식자재의 유입이 힘들었다. 토양, 기후, 문화의 낙후성으로 인해 바다 건너 한뼘 밖에 차이 안나는 프랑스나 스페인에 비하면 아주 열등한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정을 듣다보니 지금쯤 버지니아 울프의 대사가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키우던 소나 양을, 양배추 따위의 값싼 재료를 냄비에 넣고 끓여대는 그저 그런 식문화 정도만 가지고 있었다.

둘째, 산업혁명 때문이었다. 물론 산업혁명이 영국에 물질적 번영을 안겨다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인해 급격하게 도시화가 이루어졌고, 양을 치거나 농작물을 생산하던 대다수 농민들이 도시의 근로자로써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농작물이나 축산물의 발달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시점에 이 엄청난 도시의 열기로 인해 오히려 쇠약해져 버린 결과를 낳았다. 자고로 재료가 좋아야 음식 문화도 꽃피우는 법, 그들은 우리나라처럼 산천초목에 온 나물이 지천에 널려 있고, 각 고을의 특산품들이 궁중으로 진상되던 나라도 아니었다. 이렇게 식자재 생산에도 타격을 받다보니 그들의 음식문화는 점점 더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 물론, 당시 노동자들의 시름을 달래주던 술은 인기 있어서 양조문화를 발달시켰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에 걸맞는 식문화의 발전을 보긴 힘들었다.

출처 – Freeqration.com

셋째, 국가 자체적으로 음식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환경적 요인이 이렇다보니 국가적으로 음식이나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영국을 지배했던 왕조들은 사실 대부분 자국문화보다 외국문화에 더 익숙해있었다. 영국은 태생부터 로마의 속주로 시작해, 프랑스의 식민지시절을 거친 그들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복잡하던 나라였다. 오죽했으면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시절, 관공서에서는 프랑스어를 쓸 정도로 자문화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던 나라였다. 그래서 왕실은 대륙국가들의 문화를 수입해왔지만, 그것이 서민문화까지 퍼지지 못하고 오히려 그 간격을 더 벌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이 술로 달래는 동안 서민이 보기엔 사치스러운 왕족과 귀족들만의 티문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넷째, 영국은 보기보다 꽤나 종교적 신념이 강한 나라였다. 신대륙으로 첫 이주민을 수송하던 메이플라워 호에 탑승했던 승객들은 사실 정치적인 이유도, 경제적인 이유도 아닌 종교적 자유를 원했기에 신대륙에서의 새로운 삶을 선택했다. 그만큼 종교성에 짙은 나라, 대영제국을 만든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 헨리8세가 교황청과 인연을 끊고 자신의 국교를 만들어버릴 만큼 종교의 영향력이 매우 큰 나라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호화로운 요리는 당연히 배척되고 금기시되기 시작했다. 그런 전통과 문화가 요리사라는 직업에 대한 윤리의식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좋은 평가를 듣지 못했다.

마지막 이유는, 2차 대전때문이었다. 전쟁은 물자의 이동으로 인해 다양한 식문화가 상호작용하는 결과를 가져다 준다. 하지만 당시 영국은 섬나라의 고립된 지역이었고 2차 대전의 주무대는 영국 섬이 아니라 사실 프랑스와 독일 같은 대륙국가들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운송과 교통의 마비는 당연히 식재료 부족으로 이어졌고 그 후 국가를 재건하는 과정에서도 그들은 식문화에 별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우리나라처럼 원래 있던 식문화를 복원할 것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든 전승하고 살려낼 수 있지만, 원래 그런 것이 전무하던 나라가 굳이 국가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식문화에 대한 가치를 높게 살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영국요리에 대한 조롱은 그 나름의 아픈 역사와 사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사실들을 영국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맛보기> 라는 책을 지은 김보연 작가는 그의 저서에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영국 공항에 입국해서 세관원이 영국에 왜 왔냐고 묻기에, 영국 요리를 즐기러 왔습니다, 라고 말하자 말도 안된다는 얼굴로 ‘그럼 대체 왜 영국을 오신겁니까’ 라고 따져 물었다. 다른 세관원들도 피식 웃으면서 농담 말라고 대꾸했다.”

허나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영국민들의 소울푸드, 파이가 있다. 우리나라 만두와 비슷한 형태인데 속을 둘러싼 피의 형태가 빵처럼 되어있고, 그 안에 각종 고기와 채소가 들어간다. 또한 사실 우리가 익히 먹고 있는 카레의 원형이 사실은 영국이 그 원조다. 우리나라에서 엄마들이 한솥 끓여주는 카레의 원형이 일본카레라면, 일본카레의 원형이 영국에서 건너왔다. 하지만, 이들이 요리로써의 지위를 얻기에는 파이는 우리나라의 라면처럼 편의점 한 구석에 너무나 잘 쳐박혀 있을 수 있고, 영국카레 역시 그 원조가 인도 식민지 시절에 인도로부터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한다면 그 진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대학시절 영문학도로서 영국문화를 공부하면서 학기 말, 교수님께서 한 학기동안 배운 영국문화에 대해 영어로 한줄평을 써보라 하셨을 때 내가 쓴 글귀가 있었다.

“Oh God, Why Shakespeare, not couisine?

“신이시여, 셰익스피어는 되고, 요리는 안됩니까?”

그 때 이 말을 쓸때의 생각이나 지금의 생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한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들이 들어왔던 조롱에 대한 잠깐의 연민의 공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영국음식도 그 나름의 사연이 있다. 그들을 놀리더라도 조금이라도 이해하면서 놀린다면 훗날 더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