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대한 키워드가 가장 많이 얽혀 있는 왕이 누굴까. 성군 세종대왕이나 대장금에 등장했던 중종을 떠올리기 쉽지만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야말로 음식 키워드의 주인이지 않을까.

세종대왕은 사실 성군을 뛰어넘어 성인의 반열에 오르내리는 임금이다보니 사람들이 그의 밥상도 으레 친서민적이고 모범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과는 정반대다. 세종대왕의 경우 육식을 거의 매일 즐겼고, 실제로 이 과도한 육식 덕분에 생긴 병고도 많았다. 반면 중종은 대장금 픽션의 영향 탓으로 화려한 밥상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조선의 임금은 유교 사대부의 전통을 따라야 했기에 그나마 드라마에 비해선 꽤나 소박한 편이었다.

영조는 태생자체가 콤플렉스 덩어리였다. 그의 독특한 성미는 익히 여러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소개된 적도 많다. 안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귀를 씻는 다거나, 안 좋은 말을 할때면 심하게 양치를 하는 등의 강박적 성향을 보이는 군주가 바로 영조다. 그래서일까, 영조는 먹는 것 하나하나 굉장히 신경쓰며 나라를 다스렸다. 자기 입으로 들어오는 먹을 거리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신경쓰이는 것은 그렇게 음식에 대한 강박증을 불러 일으킨 원인이 바로 자신의 콤플렉스와 관련있을 거라는 추측이 있다.

영조는 연잉군, 즉 왕자 시절이 그리 순탄치 않았다. 자신의 형 경종이 아버지 숙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몸이 허약해 정사를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정식 왕후도 아닌 무수리의 자식인 서자출신인데다가 그 출신성분을 둘러싼 정치세력의 음해로 인해 경종에 대한 충성심이 의심받던 찰나였다.

그 무렵, 연잉군은 자신의 형인 경종에게 간장게장을 진상한다. 경종은 당시 간장게장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이를 안 연잉군은 자신의 형을 위해 선의로 정성껏 간장게장을 올린다. 하지만 문제는 간장게장과 함께 올린 감이 문제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경종에 대한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어제 임금이 게장과 생감을 드셨는데 밤새도록 가슴과 배가 뒤틀리는 것처럼 아파했다.”

후대의 여러 기록에 보면 영조가 자주 간장게장과 생감을 올린 흔적이 보이는데, 우연인지 경종은 재위기간 4년 만에 승하한다. 경종은 병약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사람들이 쉽게 호리호리하고 유약한 몸매를 상상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으로 치면 뚱뚱하고 후덕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승정원일기> 기록을 살펴보면, ‘비만태조(肥滿太早)’ 라 쓰여있는데, 아주 어린 나이부터 비만이었다, 즉 아동비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재위 시절의 기록에도 ‘성체비만(成體肥滿)’, 즉 다 커서도 비만이었다는 기록으로 봐서 비만으로 인한 성인병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에 컸다.

성인병은 기본적으로 몸의 독소를 걸러내는 간과 신장에 큰 무리를 줄 수 밖에 없는데, 하필 영조가 갖다 바친 것이 간장게장과 생감은 굉장히 큰 문제였다. 16세기 명나라 이시진이 지은 <본초강목>에서는 ‘게를 감과 함께 먹으면 복통이 나고 설사가 난다’ 고 쓰여있다. 그만큼 게와 감은 상극으로 취급받던 때였고 상극의 음식은 어떤 식으로든 간과 신장에 무리를 줄 수 밖에 없어 연잉군이 영조로 즉위 후 끊임없이 경종독살설의 근거가 되었다.

이런 영조가 음식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자신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지금 알길은 없지만, 어쨌든 그 또한 언제나 독살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영조는 유별나게 소화가 잘되는 죽성애자였는데, 기록에 따르면 그가 즐겨먹었던 죽의 종류가 10여가지가 넘을 정도였다. 그 중 타락죽을 가장 즐겨먹었고, 율무죽은 싫어했다고 한다.

또한 영조가 직접적으로 음식을 거론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조가 사돈이자 원로대신인 홍봉한에게 차를 대접하려 했다. 도승지가 인삼차를 올리겠다 하니, 영조는 인삼차 대신 생강차를 지시했다. 영조가 경종에게 생강을 바친 사실을 보듯이 당시의 생강은 오히려 인삼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던 귀한 약재였다. 자신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가까이 하던 생강을 자신의 사돈댁에도 보낸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영조는 우리가 상상하는 음식의 수라를 거부하기로 유명한 임금이었다. 임금의 밥상과 백성의 밥상이 별반 다르지 않아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당시의 성군이었다. 한번은 신하들과 토론배틀을 뜨는 경연이라는 행사 자리에서 한 신하가 주상의 음식 가짓수가 너무 적다고 말하자, 영조는 이렇게 말한다.

“경들은 이것을 보고 어찌 적다고 하는가? 나는 덕이 얇아서 매번 밥상을 푸짐하게 대하면서도 선왕의 위패를 등 뒤에 모신 것을 바라보게 되면 오르락내리락하시는 영령이 굽어보시는 것과 같아 너무 지나치게 즐겨 하는 것을 경계한다네.”

이렇듯 왕이라 할지라도 밥송의 겸손함과 검소함을 손수 실천한 왕으로 후세왕들에게도 본보기가 되었다. 이런 영조의 밥상에 대한 철학, 그리고 자신의 콤플렉스와 강박적 성격이 그를 조선의 최장수 왕으로 만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