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한 음식 이야기 – 종교와 음식, 불교편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 경, 인도 북동부, 부다가야라는 곳에서 35세 나이의 청년 고타마 싯타르타는 ‘수자타’ 라는 여인으로부터 ‘우유죽’을 받아 먹는다. 우주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 약 6년간의 혹독한 고행으로 몰골이 상할대로 상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이 청년은 수자타가 끓여온 우유죽을 먹고서 육체적 고통을 통해서는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육체를 괴롭히며 육체에 관심을 가지기보다, 마음을 고요히 가누는 수행이 오히려 육체에 정화까지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우유죽 한 그릇은 싯다르타에게 진정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제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홀연히 새벽별을 보고서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 부처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불교를 이야기할 때, 늘 빠지지 않는 음식이 바로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이다. 싯다르타에게 성도(成道)의 길을 가르쳐준 고마운 음식이다. , 그래서일까, 싯다르타는 그 후 이런 음식도 수행의 한 방법으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제자들 또한 그의 음식먹는 방식을 따른다. 이는 음식의 의미와 신화성만 주로 주목하는 타종교들과는 지극히 대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불교와 여러가지 음식문화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아보기로 하자.

불교와 육식

불교에서는 우선 살생을 금하는 계율로 인해 육류섭취가 제한되어있다. 그래서 많은 불제자들이  고기를 먹지 않지만 사실 이는 실제 부처의 가르침과는 다소 다르다. 살생을 금지하는 규율로 인해 육식을 엄격하게 금지했다고 상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부처와 제자들간의 기록된 대화에서는 부처가 먹을 수 있는 고기에 대해 언급한 사실이 발견된다. 그것을 삼정육(三淨肉)이라 하는데, 이는 먹을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1. 나를 위해 죽이는 것을 목격하지 않은 고기
  2. 나를 위해 죽인 것이라는 말을 듣지 않은 고기
  3. 나를 위해 죽인 것이 아닌지 의심가지 않는 고기

보통은 삼정육에서 그치지만 계율을 조금 더 엄격하게 적용하면 오정육, 구정육까지로 확장되기도 한다.

4. 수명이 다하여 자연히 죽은 고기

5. 맹수와 까마귀가 먹다 남긴 고기

6. 나를 위하여 죽이지 않은 고기

7. 자연사하여 죽은지 여러 날이 지나 말라붙은 고기

8. 미리 약속함 없이 우연히 먹게 된 고기

9. 일부러 죽인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인 고기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살생으로 인한 불교원리에서 중요한 ‘카르마(업)’이라는 개념이 필요한데, 불교에서는 살생을 하게 되면 카르마(업)이 쌓이게 된다고 여긴다. 이 카르마(업)은 인간의 앞날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이런 카르마는 피하라고 가르친다. 고기를 먹더라도 본인이 직접 죽이지 않았다면 그 카르마가 적게 누적되니 그 영향이 적을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하는 것이다.

걸식과 울력

싯다르타와 그의 제자들은 걸식 혹은 탁발을 했다. 당시 불교는 민중불교이자 대중불교로 도심지 한 가운데 일종의 공원 같은 곳에서 수행공동체를 만들어 활동했다. 당시 인도는 카스트 제도가 극단적으로 작용하던 시절이었고, 각 신분계층에 따른 역할이 분명히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수행자들이 생산활동을 하게 되면 그에 따른 탐심이 생길 것을 염려했고, 수행자는 수행자 본분에 맞는 생활을 해야할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걸식을 하게 되면, 수행자들에게 음식을 주는 이들은 공덕을 지을 수 있고, 수행자에게는 세속적 욕망을 차단하려는 부처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부처는 본인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이 걸식에 있어서 엄격한 규율을 적용했다.

탁발공양은 하루에 한번만 하도록 했다. 음식에 대한 욕심을 경계해서였다. 또한 칠가식(七家食)이라 하여 오직 순서대로 일곱집만 돌도록 하였다. 그리고 어떤 음식을 주든 상관없이 받아오도록 했고 만약 일곱집 모두가 공양을 하지 않더라도 여덟번째 아홉번째 집으로 옮겨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양받은 음식의 양이 많든 적든 굶든, 무조건 딱 일곱집만 돌아야 한다. 이는 수행자들이 음식을 가려가며 받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음식을 주는 이에 대한 마음을 분별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걸식문화에도 그들의 수행을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그런데 이런 문화는 인도를 건너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으로 전파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도심 한복판 공원에서 수행공동체로서 생활하던 무리들이 동아시아권에서는 산중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도심지 대중과 뒤섞여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산중에 조용히 정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자연스럽게 민중들이 사는 마을과 멀어지게 되었고 걸식만으로는 수행정진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또한 민중과 멀어지게 되면서, 승려들에 대한 민중의 불신도 깊어지게 되었다. 예전처럼 걸식에 대한 좋은 시선이 있을리 만무했다. 승려들이 수행을 핑계로 그저 놀고 먹는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다. 이때 중국 당나라에서 백장이라는 선사가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 말한다. 즉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며 제자들에 앞장서 노동의 신성함을 알렸다. 이런 선사의 가르침이 이어져 내려와 동아시아 전체의 불교문화에 확산된다.

그래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은 원칙적으로 걸식 및 탁발을 금지하고 있다. 오늘날의 스리랑카, 베트남 등의 불교국가는 여전히 걸식탁발을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동아시아권의 불교에서는 ‘걸식’ 대신에 ‘울력’ 이라는 문화가 발달했다. 울력이란 승려들이 포함된 마을 공동체에서 대중들과 함께 힘을 기울여 노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리를 놓기도 하고, 허물어진 담장을 고치기도 한다. 때론 승려들마다 울력을 함에 있어 제각기 정해진 업무가 있어 전담하기도 한다. 이런 울력을 통한 노동 또한 동아시아권 불교만의 특별한 수행방식이다. 노동을 통해 몸을 단련시키고, 수행하면서 그것을 음식을 먹을만한 가치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이렇듯, 불교에서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신화적이지도 않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의 지역에 따라, 국가에 따라 그들의 수행목적에 따라 음식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씩 변화해왔을 뿐이다. 그래서 불교문화에서는 음식이 중요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와 에너지로 바뀌는 음식에도 자신들의 마음을 끊임없이 관찰하는 것 그것이 불교가 음식을 바라보는 방식이고, 불교의 음식문화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