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소시지
소시지를 어떻게 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저마다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시지 요리가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옳다. 소시지는 요리법이 달라진다고 자신의 개성을 잃는 그런 나약한 친구가 아니니까. 어디에서나 소시지의 맛은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내 경우엔 핫도그 속 소시지를 특히 좋아한다. 빵 사이에 소시지를 끼워 먹는 아메리칸 핫도그는 물론이요, 어릴 때 길거리에서 주로 사먹던 밀가루 반죽에 싸서 튀긴 핫도그도 말이다.
초등학생에게 방과후 군것질 메뉴는 중요한 사안이다. 하루 용돈이 500원이었던 나는, 그날 집에 가는 길에 뭘 사먹을지 수업이 끝나기전부터 고민했다. 떡볶이 한 컵에 300원, 아폴로 하나에 100원… 싼 걸 여러개 사야하나, 핫도그 하나를 사야하나, 이틀치를 모아서 치킨 팝콘을 사야하나. 고심끝에 핫도그로 결정이 나면 이제 얼굴만한 방망이를 들고 집으로의 걸음을 시작한다.
핫도그는 케첩파와 설탕파로 나뉘던데, 난 설탕과 케첩을 모두 뿌린다. 그 좋은 걸 왜 하나라도 안 뿌린단 말인가! 설탕과 케첩을 입가에 묻혀가며 우선 밀가루 부분을 먹는다. 이 단계에서의 철칙은 절대 소시지를 먹지 않는 것이었다. 소시지는 핫도그의 가장 에센스이자, 핵심이자, 중요한 부분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원래 가장 마지막에 오는 법. 핫도그를 돌돌 돌려가며 밀가루를 떼어먹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분홍 소시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때 결코 흥분해서 소시지를 베어물어선 안 된다. 참고 기다려서 온전한 모습의 소시지를 만나야 하니까. 원래 핫도그를 만들땐 분명 부드러운 빵부분과 짭쪼름한 소시지를 같이 먹는 것이 의도였을텐데, 아이들은 왜 그렇게 분해해서 먹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오레오도 쿠키부분 떼서 먹고 크림 먹는다든가, 급식도 이것저것 섞어먹지 않고 제일 맛있는 순서대로 정해놓고 먹는다든가.
어쨌든 오도독 씹히는 설탕과 새콤달콤한 케첩을 빵과 함께 살살 발라먹으며 소시지의 분홍 빛깔이 나오길 기다리는 그 순간의 입 속 즐거움은 그야말로 소풍과 같았다. 기다림과 두근거림이니까. 조그마한 손에 쥔 핫도그는 집으로 가는 길 중간쯤 이르렀을 때 드디어 소시지의 윤곽을 드러낸다. 아직 약간 붙어있는 밀가루 옷을 이로 조심스럽게 뜯어먹고 온전한 모양의 소시지를 마주하면 뭔가 뿌듯했다. 야호! 드디어 소시지다! 나무젓가락 하나에 꽂힌 단순한 소시지가 그때는 왜 그렇게도 위대했는지.
소시지를 먹기 시작하면 핫도그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포슬포슬한 껍데기와 부드러운 밀가루 빵을 지나 짭짤하게 쫀득거리는 소시지는 이제까지의 맛과는 또다른 기쁨을 선사하면서 궁극으로 내달린다. 줄어드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조금씩 베어물고 입안에서 굴려가며 먹다보면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한손엔 신발주머니, 한 손엔 빈 나무젓가락 한 개를 든 아이는 입가에 설탕을 잔뜩 묻히고 행복한 얼굴을 한 채 큰 소리로 외친다.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핫도그를 먹을때 크게 입을 벌려 여러 층을 한번에 먹는 걸 좋아한다. 케첩, 빵, 소시지가 같이 조화되면서 어우러지는 맛을 느껴보면, 역시 이것이 핫도그가 만들어진 최초의 의도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먹을 때의 재미까지 맛의 일부라고 한다면 아이들의 방식은 또 그것대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소시지나 핫도그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보통 알려져 있지만 실은 지금 먹어도 맛있다. 특히 소시지는 어린아이용 반찬이라고들 하는데 아직도 난 왜 이렇게 소시지가 맛있는 걸까? 아니,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소시지를 아이들 입맛이라고 고정관념을 만들어놓은 것부터가 그 누군가의 실수였을 것이다.
소시지는 나이와 취향을 초월한다. 그 자체로 식감도 좋고 다른 음식과의 조화 면에서도 양식은 물론 한식에도 잘 어울려서 활용하기 정말 좋다. 어린 시절 익숙하던, 밀가루가 가득한 일명 ‘분홍소시지’부터 첨가물 없이 그대로 생고기를 재고 숙성해서 만든 수제 소시지까지. 그 맛의 스펙트럼과 가치도 다양하다. 일전에 여행지에서 진짜 손수 만든 수제 소시지를 시식한 다음 또 새로운 소시지의 맛에 눈을 뜨게 됐다. 고기가 긴 시간 농축되고 깊어지면서 만들어 낸 그 맛과 향은 정말 일품이었다. ‘소시지? 그거 애들이나 좋아하는 거 아니야?’라는 편견을 갖고 있던 사람도 말이 쏙 들어갈 것이다. 소시지의 매력은 이미 국경도 연령도 초월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