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난 서른살이 되도록 커피를 입에 대지 않았다. 남들이 좋다고 먹는 ‘쓴맛’을 굳이 돈을 뿌려가며 마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거니와 커피 특유의 고약한 향은 마치 어린 시절 먹기 싫은 한약의 맛을 떠올리게 했다. 한약과 커피는 원산지만 다를 뿐 그 색과 맛, 향이 내게는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 커피를 직접적으로 입에 대기 시작했던 건 내 나이 서른 두해쯤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맛’ 이나 ‘향’ 때문이 아니었다. 사회생활이 많아지고 누군가와의 약속이 술약속 보다는 카페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누군가를 대접해야하는 일종의 사회적 약자(?)였기에 나는 항상 상대적으로 값싼 아메리카노만 줄창 마셔댔다. 나의 상대방은 휘핑크림 가득한 값비싼 음료를 마시고 있을 때 말이다.

하다보면 는다고, 커피도 마시다 보니 ‘맛’과 ‘향’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이전의 한약느낌과는 점차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고 어느 집 커피는 ‘산미’ 가 너무 강하다거나 저쪽 집 커피는 ‘스모키한’ 향이 강하다는둥, 내 미식의 범주에 커피라는 것을 끼워넣기 시작했다.

그러다 서른 중반의 지금에 이르렀을때, 맛과 향을 느끼기 보다 커피의 효능에 집착하게 되었다. 커피가 없으면 하루를 버텨내기 힘들고 근근히 커피 한 사발(?)을 들이킨 후에야 정상적인 하루 일과가 가능할 정도로 온 몸의 피로를 커피로 뒤덮어버린다. 미식적 커피에서 필요성에 의한 커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요즘 TV에 자주 등장하는 어느 한 과학자가 커피소비량의 증가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피로사회인지를 잘 반영해주는 지표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동의한다. 내 주변을 둘러봐도 커피를 취미생활이나 자신의 기호나 취향에 따라 먹는 사람 대신에 지금의 나처럼 필요에 의해 섭취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마치 건강보조제를 온 입안에 털어넣듯 자신의 피로감을 덮어버리기 위해 쓰디쓴 커피를 들이킨다. 어떨땐 샷추가 까지 해가며 말이다. 이런면에서 본다면 한약과 커피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신체적 컨디션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조치로써 말이다.

앞서 말한 그 과학자가 말하길, 우리의 뇌는 평균 1.4Kg 정도다. 우리 몸의 약 2% 정도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뇌는 인간이 소비하는 에너지의 약 23% 정도를 쓴다고 한다. 뇌를 쓴다는 것은 인체의 4할을 차지할만큼 굉장히 인체에 무리를 많이 주는 행위다. 그래서 몸 전체의 에너지가 떨어지면 인간은 뇌부터 그 기능을 저하시킨다. 그래서 신체에 걸려있는 전체적인 에너지 과부하를 줄여주는데, 커피의 카페인은 바로 이 인간의 뇌가 기능을 저하시키는 작용을 막아버린다. 즉, 에너지를 생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없음에도 카페인의 섭취를 통해 인간의 뇌를 속인다는 것이다.

이런 과학자의 볼멘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상 커피를 끼고 산다. 커피의 각성효과가 너무나도 강력하기 때문이다. 각성, 즉 깨운다는 의미다. 과학자에 의하면 실지로 깨우는 건지는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뇌의 기능이 줄어들지 않고 다시 뇌에 부하를 걸어 잘 작동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카페인의 두뇌의 깨워버림은 한 개개인의 뇌를 깨워버리기도 하지만 집단의 총합적 두뇌를 깨우기도 한다. 바로 시민의식을 키우고 깨운 커피처럼 말이다.

14세기 이슬람교도들에게 커피는 일종의 종교생활이었다. 하루 여섯번의 기도와 라마단 단식기간 중에는 커피가 일종의 생명수였다. 오스만 제국의 번창과 함께 커피는 급속도로 퍼져나갔지만 1543년 오스만 제국 황제가 커피 금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실패했다. 미국의 금주령처럼 인간의 미식적 욕망을 제한하는 제도는 언제나 실패하기 마련이다. 어쨌든 커피의 인기는 터키의 문화가 되었다. 이런 와중 이스탄불에 커피하우스가 세워졌다. 그 후 이슬람의 성지 메카뿐만 아니라 오스만 제국의 영향 아래 있는 국가들에 커피하우스가 등장했다.

커피하우스는 커피만 마시는 곳이 아니었다. 지금의 카페처럼, 사람들간의 사교공간이었다. 당시 커피하우스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오고가던 곳이었는데, 우리나라 일제시대부터 광복 이후 초기 수많은 지식인들이 다방에서 교류를 했던 것 처럼 초기의 커피문화도 그와 같았다. 날마다 토론이 벌어졌고 사회, 정치, 종교 등 각종의 사회이슈가 그 도마위에 올랐다. 마치 그리스의 아고라 광장의 문화가 커피 하우스에 편입된 것 같았다. 인터넷 댓글창 만큼이나 핫한 논쟁들이 오고 갔다.

당연히 정치권력자들은 이 장소가 달갑지 않았다. 정신작용을 흥분시킨다는 핑계와 종교적인 이유로 술이나 담배와 같은 이유로 금지했다. 하지만 커피하우스는 정치적 불온장소였고, 지금으로 치면 국가 보안사범들이 작당을 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십자군 원정 이후, 커피에 대한 인식은 점차 관대해졌다. 르네상스의 근대정신이 한 몫하기도 했지만, 인간의 욕망을 국가가 통제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부 기독교인들에게는 악마의 음료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유럽의 예술가와 철학자들에게는 영원한 동반자가 되었다. 하지만 유럽의 기독교 문화 아래에서 이슬람에서 건너온 커피는 마치 원죄의 사과처럼 여겨졌다. 교황이 커피금지령을 고려했으나, 그 교황마저도 커피에 반해 커피에 세례까지 내렸다.

16세기, 음주로 인한 문제가 유럽에 대두되고 유럽은 음주관습 대신 커피를 장려했다. 음주로 인한 시끄러움과 혼란스러움 대신에 커피가 주는 낭만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슬람의 커피하우스처럼 유럽 전역의 커피하우스에서도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오죽하면 영국에서는 커피하우스에 ‘페니 유니버시티(Penny University) 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였다. 페니는 영국의 최저화폐 단위로써 1페니로 대학에서 처럼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유럽 전역에서 아고라 광장을 대신한 공간이, 현대의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토론이 가능한 서비스를 대신한 공간이 곳곳에 퍼져나간 것이다.

시민은 커피를 마시며 토론했고 시민 의식을 함양시켰다. 정치권력은 언제나 그랬듯 시민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렇지만 음식과 관련된 그들의 욕망이 만들어낸 모임은 한 개인의 두뇌만 깨운 것이 아니라 시민 자체를 깨워버렸다. 시민혁명을 상징하는 프랑스 혁명 또한 이 커피가 아니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커피가 시민의식의 상징에서 피로사회를 상징하는 아이템이 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커피를 마시며 나누던 대화는 인터넷의 익명공간으로 숨어들어갔고, 커피 그 자체는 내리기가 무섭게 사무실로 도망친다. 커피를 앞에 두고 인간의 삶을 노래하고 그려보는 장면을 다시 상상해본다.